빗속의 춤꾼
2006.04.25 16:51
빗속의 춤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봄날 오후 소나기가 한여름의 폭우처럼 장대비로 내리고 있었다. 여의도 한강둔치엔 쏟아지는 빗소리만이 출렁이고 있었다. 주위엔 10여 개의 하얀 천막이 처져있고 그 속엔 소나기에게 운동장을 빼앗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추위에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갑작스런 비 때문에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그때, 정적을 깨고 쏟아지는 빗속으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운동장 한 가운데로 뛰어나온 친구와 나는 스피커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었다. 순식간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지만 퍼붓듯 내리는 소나기를 아랑곳 하지 않고 신들린 사람들처럼 껑충껑충 춤을 추었다. 갑자기 벌어진 광경에 천막 속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고 있었다. 빗속의 막춤은 계속 되었고 하나 둘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비를 맞으며 여럿이 덩실덩실 추는 춤은 평소와는 색다른 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었다. 비 내리는 운동장에서 시작된 흥은 점점 천막에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퍼졌고 마침내 쏟아지는 빗줄기들까지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지난 일요일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는 전주고등학교 동문 10개 기(45기~54기)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 친선체육대회가 열렸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체육대회는 절정으로 치닫고, 운동장은 선수들과 응원하는 사람들의 열기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하늘의 질투는 시작되었다.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 했었다. 순식간에 운동장은 꽁꽁 얼어버렸고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렸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 때문에 안타깝게 동문들의 축제가 끝나버릴 수도 있었던 위기를 엉뚱한 두 사람의 광란의 춤 때문에 잘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의 몸 속 어디에 그토록 강한 힘이 숨어있었을까. 모두들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쏟아지는 빗속에 뛰어들어 춤을 출만한 광기가 있었던가. 도저히 믿기지 않은 일이었으나 난 분명히 신들린 듯 광란의 춤을 추었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항상 뒷자리에서 맴돌던 내가 아니었던가. 강의실 한 구석만 차지하고 모든 모임에서 들러리만 서기를 좋아하던 나에게서 그런 괴력이 숨어 있었다니……. 어릴 적엔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누나의 소유인 회사에서만 근무하는 모범사원으로 지내왔다. 남들보다 결코 튀지 않은 나의 몸에서 그런 엉뚱한 행동이 나온 것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곤충들은 성충이 되기 전에 번데기의 시기를 거친다. 모든 곤충들이 번데기 시절엔 거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볼품없던 번데기가 변태(變態)를 한 뒤엔 화려한 호랑나비가 되기도 하고, 노래 잘하는 매미, 그저 평범한 배추 흰나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번데기 시절 내가 보기엔 어떤 성충이 들어 있는지 도저히 알 수없다.
젊었을 때 천재성이 일찍 발견되어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내가 좋아했던 천재시인 이상과 가수 배호처럼 요절(夭折)한 많은 예술가들도 있다. 또한 재능은 있으나 일찍 알지 못하고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 재능을 발휘 한 사람들도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태어날 때부터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천재성을 지닌 사람들 외에는 평생 그 재능을 찾지 못하고 살다가 가는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이 일찍 자기의 재능을 찾아 갈고 닦은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빛을 발휘하게 된다.
과연 나의 몸속에는 어떤 재능이 숨어 있을까. 이 나이까지 찾지 못한 걸 보면 그저 배추흰나비처럼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나에게서도 조그만 가능성을 보일 때가 있다. 마라톤을 완주할 만큼 강한 면이 있으며, 울트라마라톤과 철인삼종에 도전할 만큼의 끈기와 지구력도 보인다. 사진촬영과 수필을 쓸 수 있을 만큼의 감수성도 있고,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광란의 춤을 출 만큼의 광기도 있지 않는가. 분명 내 몸속에는 뜨겁게 끓고 있는 용암이 폭발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엔 어머니에 의해 살았고, 젊었을 때는 가족을 위해 살았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 때가 되고 있지 않는가. 그때가 되기 전에 나의 재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내 몸속에는 아직까지 찾지 못한 또 다른 내가 잠들어 있다. 잠든 또 다른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닐까 싶다.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다. 내 마음 속에서 빗속의 춤꾼은 그날처럼 춤을 추고 있다. ‘덩더쿵 덩더쿵’
(2006. 4. 26.)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봄날 오후 소나기가 한여름의 폭우처럼 장대비로 내리고 있었다. 여의도 한강둔치엔 쏟아지는 빗소리만이 출렁이고 있었다. 주위엔 10여 개의 하얀 천막이 처져있고 그 속엔 소나기에게 운동장을 빼앗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추위에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갑작스런 비 때문에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그때, 정적을 깨고 쏟아지는 빗속으로 뛰어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운동장 한 가운데로 뛰어나온 친구와 나는 스피커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었다. 순식간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지만 퍼붓듯 내리는 소나기를 아랑곳 하지 않고 신들린 사람들처럼 껑충껑충 춤을 추었다. 갑자기 벌어진 광경에 천막 속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고 있었다. 빗속의 막춤은 계속 되었고 하나 둘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비를 맞으며 여럿이 덩실덩실 추는 춤은 평소와는 색다른 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었다. 비 내리는 운동장에서 시작된 흥은 점점 천막에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퍼졌고 마침내 쏟아지는 빗줄기들까지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지난 일요일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는 전주고등학교 동문 10개 기(45기~54기)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 친선체육대회가 열렸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자 체육대회는 절정으로 치닫고, 운동장은 선수들과 응원하는 사람들의 열기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하늘의 질투는 시작되었다.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 했었다. 순식간에 운동장은 꽁꽁 얼어버렸고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렸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 때문에 안타깝게 동문들의 축제가 끝나버릴 수도 있었던 위기를 엉뚱한 두 사람의 광란의 춤 때문에 잘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의 몸 속 어디에 그토록 강한 힘이 숨어있었을까. 모두들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쏟아지는 빗속에 뛰어들어 춤을 출만한 광기가 있었던가. 도저히 믿기지 않은 일이었으나 난 분명히 신들린 듯 광란의 춤을 추었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항상 뒷자리에서 맴돌던 내가 아니었던가. 강의실 한 구석만 차지하고 모든 모임에서 들러리만 서기를 좋아하던 나에게서 그런 괴력이 숨어 있었다니……. 어릴 적엔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누나의 소유인 회사에서만 근무하는 모범사원으로 지내왔다. 남들보다 결코 튀지 않은 나의 몸에서 그런 엉뚱한 행동이 나온 것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곤충들은 성충이 되기 전에 번데기의 시기를 거친다. 모든 곤충들이 번데기 시절엔 거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볼품없던 번데기가 변태(變態)를 한 뒤엔 화려한 호랑나비가 되기도 하고, 노래 잘하는 매미, 그저 평범한 배추 흰나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번데기 시절 내가 보기엔 어떤 성충이 들어 있는지 도저히 알 수없다.
젊었을 때 천재성이 일찍 발견되어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내가 좋아했던 천재시인 이상과 가수 배호처럼 요절(夭折)한 많은 예술가들도 있다. 또한 재능은 있으나 일찍 알지 못하고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 재능을 발휘 한 사람들도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 태어날 때부터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천재성을 지닌 사람들 외에는 평생 그 재능을 찾지 못하고 살다가 가는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이 일찍 자기의 재능을 찾아 갈고 닦은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빛을 발휘하게 된다.
과연 나의 몸속에는 어떤 재능이 숨어 있을까. 이 나이까지 찾지 못한 걸 보면 그저 배추흰나비처럼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나에게서도 조그만 가능성을 보일 때가 있다. 마라톤을 완주할 만큼 강한 면이 있으며, 울트라마라톤과 철인삼종에 도전할 만큼의 끈기와 지구력도 보인다. 사진촬영과 수필을 쓸 수 있을 만큼의 감수성도 있고,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광란의 춤을 출 만큼의 광기도 있지 않는가. 분명 내 몸속에는 뜨겁게 끓고 있는 용암이 폭발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엔 어머니에 의해 살았고, 젊었을 때는 가족을 위해 살았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 때가 되고 있지 않는가. 그때가 되기 전에 나의 재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내 몸속에는 아직까지 찾지 못한 또 다른 내가 잠들어 있다. 잠든 또 다른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닐까 싶다.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다. 내 마음 속에서 빗속의 춤꾼은 그날처럼 춤을 추고 있다. ‘덩더쿵 덩더쿵’
(2006.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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