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 마라톤보다 좋은 다섯가지 이유

2006.04.30 01:44

정현창 조회 수:120 추천:13

  수필이 마라톤보다 좋은 다섯가지 이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오늘도 방방곡곡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고장에서 열리는 진안홍삼산악마라톤대회, 진주남강마라톤대회, 장성홍길동마라톤대회 등 무려 8개나 되는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다. 예년 같았으면 오늘 같은 날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쯤은 어느 대회라도 완주하고 마라톤클럽 회원들과 얼큰히 취해서 마라톤찬가를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라톤대회를 나가서 42.195km나 하프코스를 뛰는 것보다 삼천천변을 한 시간 쯤 뛰고 와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좋아져 버렸으니 어찌하랴. 나를 이렇게 만든 수필이 마라톤보다 좋은 5가지 이유가 있다.

  마라톤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하지만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어 좋다. 물론 가끔은 장애자나 자폐아 중에도 42.195km를 완주하여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마라톤대회 때마다 무리하게 달리다가 큰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마라톤대회 참가신청을 할 때는 사고가 발생하면 본인이 책임을 지겠노라는 각서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수필은 다르다. 어느 장애인은 두 손을 쓸 수가 없어 막대기를 입에 물고 컴퓨터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는 걸 본 적이 있다. 수필은 많이 아파본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곤 한다.인생이란 즐겁고 행복한 곳에서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곳에서 그 진솔한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마라톤은 뛸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필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다. 오늘 진안에서는 산악마라톤이 열렸다. 산길을 달리는 대회다. 숲이 있고 산바람이 상쾌한 산길을 달리노라면 세상 시름은 어느덧 사라지고 그저 무한정 행복하기만 할 뿐이다. 대부분 잘 닦여진 포장도로를 달리기도 하지만, 새만금 방조제를 달리기도 한다. 한 여름엔 합천 황강마라톤이라고 해서 수중을 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마라톤은 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필은 어떠한가. 침대에 누워서도 할 수 있고 길을 걸으면서도 할 수 있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할 수 있고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수필을 쓸 수 있지 않은가. 수필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쓸 수 있어 좋다.

  마라톤은 달리는 사람이 혼자 만족을 느끼지만 수필은 쓰는 사람은 물론 읽는 독자들도 감동을 받아 좋아한다. 마라톤도 사하라마라톤이나 울트라마라톤에서 엄청난 고통을 극복하고 자랑스럽게 완주하는 마라토너들의 완주기를 읽으면서 감동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독자와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상을 엿보는 것 같은 감동일 뿐이다. 수필은 다르다. 독자가 수필을 쓰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같이 공감하고 감동을 공유한다. 작가가 울면 같이 울고 작가가 아파하면 같이 괴로워하지 않는가. 함께 행복하고 꿈을 꾸는 것이 수필이 아닐까 싶다.

  마라톤은 한 번 뛰고 나면 그 기록을 바꿀 수 없다. 수필은 쓰고 나서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퇴고를 하여 보다 나은 글을 쓸 수 있다. 마라톤을 할 때는 운동화에 칩을 달고 뛴다. 요즘엔 번호표에 붙이고 뛰는 것도 나왔다. 마라토너가 출발하면 자동적으로 컴퓨터에 기록이 된다. 중간지점도 체크가 되고 마지막 골인지점에서 기록이 되면 즉시  본인의 기록이 문자메시지로 핸드폰에 전달된다. 만일 만족한 기록이 되지 못했으면 다른 대회에서 다시 도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필은 평생을 두고 고쳐 쓸 수 있어 좋다. 원래 인생이란 완벽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지난 3월24일 김제 자택에서 축사를 손질하다 추락해 사망한 마라토너 정현모 옹은 7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200여 회의 마라톤을 완주 했었다. 가끔 함께 뛰었던 그분은 마라톤을 즐기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어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로에서 그분은 영원히 볼 수 없고 우리의 기억에서도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마라톤은 이렇게 유한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였다. 수필은 영원하여 대대손손 전해질 것이다. 몇 백 년 전 선조들이 써놓은 글들을 지금도 읽으며 감동을 받지 않은가.  


감씨를 땅에 심으면 고염나무가 된다. 그래서 좋은 감을 얻으려면 고염나무에 감나무를 접목을 한다. 마라톤을 좋아하던 나는 수필을 배우면서 마라톤과 수필이 많이 닮은 걸 알았다. 마라톤은 테니스나 축구와는 다르게 철저히 혼자 해야 하는 운동이다. 물론 마라톤클럽에서나 대회에서 많은 사람들과 같이 뛰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뛰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대신 뛰어주는 것은 물론 도움조차도 받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여야하는 아주 고독하고 단순한 운동이다. 그래서 마라톤은 시작되면 그때부터 완주할 때까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수필도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선 하기 곤란한 무척이나 고독한 작업이다. 난, 두 가지를 감나무처럼 접목을 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감나무를 접목시키려면 고염나무의 가지를 잘라내고 감나무 묘목을 접붙이는 것처럼 마라톤의 많은 걸 잘라냈다. 마라톤클럽을 탈퇴하고 각종 대회도 나가지 않으며 한 시간 정도 삼천천변만 뛰고 있다. 삼천천변 달리기는 단순하고 지루하지만 각종 차량 등 위험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뛰면서 수필에 몰두할 수 있어 참 좋다. 내가 쓴 140여 편의 글들은 거의 삼천천변을 달리면서 태동했고, 컴퓨터 앞에 앉아선 정리를 했을 뿐이다. 나의 마라톤과 수필의 접목은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담배를 끊은 사람이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것처럼 마라톤대회가 절정에 이른 요즘 나도 마라톤대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힘들어하고 있다. 오늘따라 지독한 금단현상을 이겨내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수필이 마라톤보다 좋은 5가지를 찾으면서  스스로 자위행위를 하고 있지 않나 싶다. (2006. 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