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은 초록잎이 있어서 더 붉다
2006.05.02 22:12
철쭉은 초록 잎이 있어서 더 붉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불이야! 불!”
아파트 화단에서 시작된 불은 골목길을 따라 번져나갔다. 큰길 쪽까지 붙은 불은 동네 소공원을 지나 순식간에 온 시내를 삼켜버리고 말았다. 봄만 되면 건조한 날씨에 많은 산들이 화재로 몸살을 앓는다. 지금은 봄비가 내렸는데도 또 다른 불 때문에 온 산이 시뻘겋게 불타고 있다. 그리고 그 불은 기어이 내 가슴까지도 불을 지르고 말았다.
온 천지에 불을 지른 철쭉은 벚꽃처럼 나약하지도 않고, 장미처럼 사치스럽지도 않다. 목련처럼 크지도 않고, 산수유처럼 작지도 않다. 아줌마처럼 강하고 억척스럽다. 봄꽃들은 연초록 잎들에게 쫓겨나지만 철쭉은 꽃보다 먼저 태어난 잎들을 빨간 커튼을 치듯 삼켜버린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핏빛 꽃잎이 하얗게 퇴색될 때가지 꿋꿋하게 살아간다. 철쭉은 뜨겁고 힘이 있다. 철쭉은 정열이 있고 카리스마가 있다. 목련화, 개나리, 벚꽃 같은 봄꽃이 바람에 시달려 사라진 틈을 타 순식간에 대지를 점령한 철쭉은 다른 꽃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라일락, 유채꽃들이 피어있지만 한쪽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철쭉은 피었다하면 혼자는 피질 않는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어마어마한 군락을 이루어 그 힘을 나타낸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철쭉은 아마 여름의 선봉장인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2002년 월드컵 축구 때의 붉은 악마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여름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기전에 철쭉을 보내어 마음부터 미리 달구려는가보다.
다른 봄꽃과는 달리 철쭉은 초록 잎새와 다정하게 어울려 피어있다. 초록 잎이 있어 철쭉은 더욱 붉게 보인다. SBS방송국에서 매주 목요일 밤에 방송하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란 방송을 즐겨 본다. 그중에는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동물들이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울릉도의 누렁이(개)와 갈순이(갈매기)의 사랑은 차라리 눈물겹다. 경북경주의 아롱이(개)를 따라다니는 스토커 염소이야기, 경기도 남양주의 병아리를 사랑하는 ‘휴’라는 강아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이처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다른 종(種)끼리의 사랑도 있는데, 우리들은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서로 어울려 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 성낸 까마귀들이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포은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 가던 날, 팔순이 가까운 그의 노모가 간밤의 꿈이 흉하니 가지 말라고 문 밖까지 따라 나와 아들을 말리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편 가르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가 보다.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남북으로 갈라져있고, 국내에서도 사사건건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있지 않는가. 그 옛날 당파싸움부터 시작된 편 가르기는 지금까지도 노사대립은 물론 세대간의 갈등 등 도처에서 위험수위를 훨씬 넘기고 있다. 잎과는 같이 존재할 수 없는 봄꽃들처럼 도저히 공생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철쭉에게 상생의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경북 포항 호미곶엘 가면 서로 바라보고 있는 8m나 되는 상생의 손이 있다. 바다 속에 있는 손은 오른손이고 광장에 있는 손이 왼손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불만을 갖고있다. 왜 상생의 손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일까? 두 손이 맞잡고 있어야 상생이 아닐까. 옛말에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였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된다."라고도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살기 힘든 세상 악어와 악어새, 집게와 말미잘처럼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의 시처럼 조금씩만 양보하며 서로를 얼싸안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철쭉이 눈부시게 피어있는 소공원 한쪽, 등나무 넝쿨마다엔 포도송이처럼 탐스런 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서로가 어울려 아름다운 계절을 찬미하는 지금, 우리들도 서로서로 뜨거운 상생의 포옹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06. 5. 3.)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불이야! 불!”
아파트 화단에서 시작된 불은 골목길을 따라 번져나갔다. 큰길 쪽까지 붙은 불은 동네 소공원을 지나 순식간에 온 시내를 삼켜버리고 말았다. 봄만 되면 건조한 날씨에 많은 산들이 화재로 몸살을 앓는다. 지금은 봄비가 내렸는데도 또 다른 불 때문에 온 산이 시뻘겋게 불타고 있다. 그리고 그 불은 기어이 내 가슴까지도 불을 지르고 말았다.
온 천지에 불을 지른 철쭉은 벚꽃처럼 나약하지도 않고, 장미처럼 사치스럽지도 않다. 목련처럼 크지도 않고, 산수유처럼 작지도 않다. 아줌마처럼 강하고 억척스럽다. 봄꽃들은 연초록 잎들에게 쫓겨나지만 철쭉은 꽃보다 먼저 태어난 잎들을 빨간 커튼을 치듯 삼켜버린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핏빛 꽃잎이 하얗게 퇴색될 때가지 꿋꿋하게 살아간다. 철쭉은 뜨겁고 힘이 있다. 철쭉은 정열이 있고 카리스마가 있다. 목련화, 개나리, 벚꽃 같은 봄꽃이 바람에 시달려 사라진 틈을 타 순식간에 대지를 점령한 철쭉은 다른 꽃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라일락, 유채꽃들이 피어있지만 한쪽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철쭉은 피었다하면 혼자는 피질 않는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어마어마한 군락을 이루어 그 힘을 나타낸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철쭉은 아마 여름의 선봉장인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2002년 월드컵 축구 때의 붉은 악마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여름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기전에 철쭉을 보내어 마음부터 미리 달구려는가보다.
다른 봄꽃과는 달리 철쭉은 초록 잎새와 다정하게 어울려 피어있다. 초록 잎이 있어 철쭉은 더욱 붉게 보인다. SBS방송국에서 매주 목요일 밤에 방송하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란 방송을 즐겨 본다. 그중에는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동물들이 사랑을 나누며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울릉도의 누렁이(개)와 갈순이(갈매기)의 사랑은 차라리 눈물겹다. 경북경주의 아롱이(개)를 따라다니는 스토커 염소이야기, 경기도 남양주의 병아리를 사랑하는 ‘휴’라는 강아지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이처럼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다른 종(種)끼리의 사랑도 있는데, 우리들은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서로 어울려 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 성낸 까마귀들이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포은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 가던 날, 팔순이 가까운 그의 노모가 간밤의 꿈이 흉하니 가지 말라고 문 밖까지 따라 나와 아들을 말리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편 가르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가 보다.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남북으로 갈라져있고, 국내에서도 사사건건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있지 않는가. 그 옛날 당파싸움부터 시작된 편 가르기는 지금까지도 노사대립은 물론 세대간의 갈등 등 도처에서 위험수위를 훨씬 넘기고 있다. 잎과는 같이 존재할 수 없는 봄꽃들처럼 도저히 공생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철쭉에게 상생의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경북 포항 호미곶엘 가면 서로 바라보고 있는 8m나 되는 상생의 손이 있다. 바다 속에 있는 손은 오른손이고 광장에 있는 손이 왼손이다. 하지만 나는 항상 불만을 갖고있다. 왜 상생의 손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일까? 두 손이 맞잡고 있어야 상생이 아닐까. 옛말에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였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되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된다."라고도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살기 힘든 세상 악어와 악어새, 집게와 말미잘처럼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의 시처럼 조금씩만 양보하며 서로를 얼싸안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철쭉이 눈부시게 피어있는 소공원 한쪽, 등나무 넝쿨마다엔 포도송이처럼 탐스런 꽃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서로가 어울려 아름다운 계절을 찬미하는 지금, 우리들도 서로서로 뜨거운 상생의 포옹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06.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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