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반 병아리들의 청 보리밭 나들이

2006.05.04 11:49

박성희 조회 수:88 추천:8

수필반 병아리들의 청 보리밭 나들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박성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반에 등록하고 두 번째 가는 문학기행이다. 목적지는 고창 청보리밭으로 정했다. 처음에 갔다온 군산 주꾸미축제 때는 마음이 푸른 창공을 나는 것처럼 두둥실 떠있었으나 글로 옮겨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음만 답답하여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 했었다. 두 번째 가는 문학기행은  뭔가 특별한 추억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아직은 부끄럽지만  글 쓰기 숙제를 한다는 생각으로 설렘과 행복을 더해 자신을 표현하고픈 욕심이 생겼다. 이것이  열정적으로 가르치신 교수님께 보답하는 길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소풍날을 기다리듯 문학기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여보. 소풍날 용돈 얼마 줄 거예요? "
어이가 없어 바라보던 남편이,
"중이 염불하는 데는 정신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둔다더니, 소풍은 사이다 한 병, 삶은 계란 하나 김밥을 싸가면 훌륭한 거야."
" 잠깐. 거기까지!"
옆에서 내 눈치를 보더니 백 원짜리 동전 한 개를  건네 주면서,
"이거 가지고 가서 아이스케끼나  사먹어." 서로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점심은 거기서 사먹기로 결정 했었는데 사먹는 밥은 진수성찬을 먹어도 어쩐지 속이 허전하다. 논두렁 깡패(농사꾼)의 자존심이 있지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쌀밥에 묵은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먹을 수 있는데 사 먹으면 돈이 너무 아깝다. 역시 나는 가난한 촌부임이 분명하다. 남편은 밥만 좀 하고 풋고추에 된장, 묵은 김치면 되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했다.
"보리밭에 가서 냄새 풍겨가며 고기를 구워먹으면 보리가 욕한다." 고 했다. 아침 일찍부터  빠진 것이 없는지 챙겨주고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니, 나는 세상 부러운 것 없는 행복한 여우다. 이 순간은  영부인이나 여성 국무총리도 부럽지 않았다.

산업도로에서 전주역 쪽으로 가는 길에 피어 있는 갖가지 철쭉들이 나를 위해 피어있는 것 같았고, 오색 꽃가루를 뿌리며  하트 총을  쏘아주며 서 있었다. 철쭉 아래의 꽃잔디들도 철쭉에게 질세라 어깨동무를 하고,

"너는 잘할 수 있어, 농촌출신의 명예를 걸고  끝까지 가는 거야."하며 활짝 웃어주었다
"아! 사랑을 하게 되면 믿을 수 없는 것조차 믿게 된다."는 명언이 생각났다.

  우리 병아리반 친구들에게 이 행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너무너무 아쉽다. 나는 수필반에만 오면 수다쟁이가 된다. 예전부터 나를 잘 알고 지내던 99.9% 사람들은,
"말좀 해라. 네가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비웃는 것 같이 보인다. 너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
말을 안 한다고 나에게 대놓고, "재수없어!"하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핀잔을 줬던 친구들이 수필반 수다쟁이가 된 나를 보면 또 뭐라고 놀려댈까?

  '고창'이란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바람결에 들려오는 보리들의 합창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멀리서 보이는 청 보리밭은 바람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부르스, 자이브, 왈츠, 탱고까지 춤의 향연을 펼치며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나를 감싸 안아주며 함께 춤을 추자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먹는 밥은 돌을 씹어도 맛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치에 된장국을 맛있다고 칭찬까지 해주며 먹는 동안 마음이 뿌듯해졌다. 이런 감정이 진정 학우들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다.

  금상첨화로 미경씨가 집에서 귀한 복분자주를 신랑이 챙겨줬다며 가져 와 우리반 모두를 더 없이 행복하게 해주었다. 병아리반 동급생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순수해서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생각하니 오늘 야외수업의 효과는 서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될 수 있을 것 같다.

  보리밭 사잇길로 들어서니 멀리서 보던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지고 꺽이고 짓이겨진 보리들의 상처가 눈에 띄었다. 아파하는 보리들의 하소연이 들리는 것 같았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인간들의 횡포에 자연의 섭리를 어기며 구경거리로 타락한 보리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지는 않을까?
"대한민국에서 돈과 힘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니?"하는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씁쓸한 미소를 지어야 했다.  농민들의 탄식소리가 들리는 성싶었다. 보리에서 나오는 소출이 있어야 자식들의 등록금도 마련하고 남은 돈으로 여름내내 가용으로 쓰게 되는데 보리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들의 지친 몸이 괴로워 몸부림치는 것을, 나는 어리석게도 보리가 즐거워 춤추는 것으로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출발할 때 즐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있을 때 기초반 총무를 '박꽃'이라 비유하시며 꼼꼼히 메모지에 적어오시어 발표하신 김행모 선생님의 찬사를 받은 남순애 총무가 감사의  뜻으로 아이스케끼 한 개씩을 선물해 답답하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청보리와 싱그러운 바람과 더불어 야외에서 듣는 교수님의 강의주제는  "나는 행복 합니다."였다.  또 부드러운 외모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터프함까지 골고루 갖추고 있는 준비된  회장 오빠, 박꽃같은 총무, 순수한 병아리들의 모임인 기초반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전설로 남게될 것이다. 숨겨진 열정과 끼를 기초부터 다져서 머지않는 장래에 모두 문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던가? 비슷한 또래 다섯이나 태운 차를 운전하는 나는 집까지 무사히 가게될지 심히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성과 미모를 갖춘 품위있는 문학도들답게 숨쉬는 일까지도 교양이 철철 넘쳤다. 비의 노래에 "'태양이 싫어' 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우리들은 해가 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하루해가 너무 짧았다. 헤어지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서로 아껴주는 좋은 친구들을 사랑하기에 그러는 게 아닌가 싶었다.

              ㅡ열정과 끼로 뭉친 병아리반을 위하여 건배!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