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세상 보기

2006.05.05 20:07

정현창 조회 수:75 추천:20

엎드려 세상보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와!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항상 봐오던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내 곁에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뉴턴이 사과가 털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처럼 새롭게 발견한 세상을 보면서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주말 오후, 매주 하던 달리기와 인라인을 못하니 온몸이 찌뿌듯했다. 하던 일을 못하고 집에만 있으려니 온통 짜증만 나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책을 읽으려고 소파에 앉았다. 한참이나 책을 읽고 있으려니 허리가 몹시 아팠다.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있는 베개를 들고 나와 가슴에 깔고 거실 바닥에 엎드렸다.
어린시절 우리 집엔 앉은뱅이책상 하나밖에 없었다. 6남매는 책을 읽을 때나 숙제를 할 때는 엎드려서 하거나 둥근 밥상을 펴고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안방에 죽 엎드려서 공부를 하다가 지루하면 장난을 치곤했었다. 그러나 어릴 때 이후론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다. 엎드려 책을 읽는 일이 처음엔 무척 편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가슴도 답답하고 온몸이 불편해졌다. 그러자 차츰 책을 읽는 것도 뒷전이 되고 엎드린 채 거실바닥을 이쪽저쪽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 때 갑자기 내 눈에 비친 건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문갑 밑에서 기어가는 개미가 보였다. 아니 우리 집에 개미가 살고 있었나? 낮게만 보였던 문갑이 아주 높게 보이고, 안방 문 옆에 서있는 어항은 빌딩처럼 높게 보였다. 창문 틈에 쌓여있는 먼지마저도 새롭게 보였다. 마치 내가 걸리버 여행기 중 거인국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사진은 같은 피사체를 촬영하더라도 촬영하는 카메라의 앵글에 따라 전혀 다른 사진이 된다. 카메라 앵글(camera angle)이라 함은 카메라의 촬영 각도를 말하는 것으로 렌즈의 각도가 위쪽을 향하게 하여 촬영하는 로우 앵글(low angle)과 눈높이로 촬영하는 아이레벨(eye level), 위에서 아래쪽을 내려보고 촬영하는 하이앵글(high angle)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눈높이에서 사물을 인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사람이든, 아니면 동식물을 대상으로 하든 우선은 눈높이에서 보고 사물에 접근한다. 대부분 똑바로 서서 아래를 보거나, 옆에서만 보고 피사체를 촬영하기 때문에 남들이 자주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촬영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촬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낮선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서서만 촬영하지 말고 카메라를 지면 가까이에 놓고 낮은 각도에서 촬영할 대상을 찾는 것도 꼭 해봐야 할 일이다.


비행기를 탈 때는 꼭 창 옆에 앉기를 고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사기밀보호라는 명분으로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는 모든 창을 가렸었지만 지금은 모두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이륙한 뒤에 아래쪽의 점점 작아지는 풍경을 보는 건 아주 흥미롭다. 사람이, 자동차가, 집들이 사라진다. 나중엔 미니어처처럼 조그만 산들과 길들만 보일 뿐이다. 우리는 높아질수록 작은 것부터 한 가지씩 볼 수가 없어진다. 나중엔 자기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높아지려고 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욱 높은 산을 찾아 그곳에서 내려다보려고 한다. 심지어 신발까지 조금이라도 높은 굽을 신는다. 모든 걸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며 잘사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낮으면 불안하고 초초해져서 다른 사람들 의 발목이라도 잡으려 허위사실을 폭로하거나 무고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요즘 같은 선거철이면 더욱 너 죽고 나살자는 식의 폭로전이 기승을 부린다.


어느 어린이교육기관에서 어린이 눈에 맞춰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여 ‘눈높이 교육’이란 신조어가 유행한 일이 있었다. 또 어느 식당에서는 고객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하여 종사원들이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고 있다고 한다.
낮아져야 한다. 높아지려고만 하지 말고 낮아져야한다. 내가 좀더 낮아져 상대방이 나보다 커 보일 때 그들의 아픔이 보이고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닐까. 영원한 성자 마더 테레사와 밥 퍼주는 다일공동체 봉사자들처럼 낮아져야 한다.
내가 우연히 거실바닥에 엎드려 낮아졌을 때 비로소 모든 사물이 커 보이고 보이지 않았던 미물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던가. 지금부터라도 내가 먼저 몸을 낮춰 주위 사람들의 조그만 소리라도 귀를 기우려야 하려니 싶다.
(2006.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