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이 벌었습니까
2006.05.07 11:38
돈 많이 벌었습니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책도 내고, 여기저기서 원고 청탁도 받았으니 돈 많이 벌었지요?" 느닷없는 질문을 받고 나오는 건 헛웃음뿐이었다. 작년 책을 낼 무렵, 글 한편이 어느 공모전에서 입상하면서 매스컴 세례를 받았었다. 덕분에 문학성이 뛰어나지도 못한 처녀 수필집이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하여 많은 홍보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책을 내고 그 대가로 들어 온 수입은 단 한 푼도 없는데 돈 많이 벌었냐는 질문 앞에서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었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한 편의 작품을 발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뒤따른다. 분명 노동을 통하여 생산된 글이니 그 대가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전혀 다른 현실을 설명하며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는 자신이 초라해져 버린다. 아직 등단k지 않은 작가지만 수필의 세계에 발을 내딛은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할 정도면 문학과 거리가 먼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랴.
가족이나 친구들이 내게 철저히 당부하는 것은 돈에 욕심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쓰고 싶어 쓰는 글이니 오로지 그 자체만으로 행복을 누리라고 말한다. 글과 돈을 연결짓는 순간이 내 타락이며 변질이 될 거라고까지 경고한다. 그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책을 내고도, 원고 청탁을 받고도, 돈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고료를 주장할 만큼 빼어난 글 솜씨가 못된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운 고백이다.
내게 수필가라는 이력이 붙기 전에, 누군가의 프로필에 문인이란 호칭이 붙어 있으면 대단한 존경심을 품고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바라보곤 했었다. 고도의 두뇌노동을 거쳐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그 글이 지면에 발표되면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생각도 가졌었다.
막상 문인이란 이름표를 달고 보니 그 세계는 참으로 빈한[貧寒]하기 짝이 없었다. 각 장르마다 등단작가가 넘쳐나고 매달 배달되어 오는 작품집들은 미처 읽을 새도 없이 쌓인다. 쏟아지는 각종 문예지와 잡지를 대하며, 글과 작가의 홍수시대임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동인지며 개인 작품집이 넘쳐나다 보니 돈을 주고 책을 사서 보는 경우가 별로 없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책이 거저 쥐어지니 쓰기의 고충을 아는 작가들도, 책은 사서 본다는 개념보다는 얻는다는 개념이 강하다. 결국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낸 작품집은 집안 잔치로 끝나거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손에서 제대로 읽히지도 못하고 사장되기 일쑤다.
가끔 작가의 서명이 있는 책을 소장하고 싶다며 돈을 보낼 테니 책을 보내달라는 독자도 있다. 내로라할 주제도 못되는데 원하는 독자에게 책값을 받기는 민망한 일이다. 이렇게 특별히 연락을 보내준 독자에겐 더욱 정성스럽게 사인을 하여 거저 책을 보내주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책을 보내고 나면 받았다는 연락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처음 겪을 때는 배신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그마저도 이젠 이골이 난 터이다. 우습게도 책을 보내달라고 말을 꺼내는 사람들 대다수가 글을 쓴다는 축에 속한다. 말만하면 책은 거저 받아도 된다는 생각에 젖어버린 사람들이다. 작가들 스스로 파놓은 함정이니 누굴 탓할 것인가.
요즘은 인터넷의 사이트마다 '불러그'라는 카테고리를 통하여 쓰여 지는 글들도 그 양이 엄청나다. 활자화 된 책이 아니라도 읽을거리는 넘쳐난다. 이렇다보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활자화된 수필집을 돈 주고 사려 들지 않는다. 자연 글의 홍수시대를 살면서도 출판 업계는 불황이라는 고갯마루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다. 책을 사 읽는 독자가 줄어드니 잡지든 문예지든 채택된 원고에 대해 일일이 고료를 챙겨줄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작가에게 베푸는 혜택은 글이 실린 책을 보내주던가, 조금 후한 곳은 1년의 정기구독권을 부여한다.
한 권의 작품집이 출간되어 내 손에 전달되기까지 작가가 겪는 수고를 번연히 알면서, 나 역시도 전해진 책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데 지독히 인색하기만 하다. 겪었던 아픔을 기억하여 잘 받았다는 감사와 격려를 빠트리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그새 잊고 산다. 결국 문인들끼리 용기를 북돋아주기는커녕 제살 깎아먹기 식으로 가치하락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생각이 팽배한 마당에 문학성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주절주절 썼던 글을 모은 처녀 수필집이 돈을 벌었으리란 생각은 너무나 큰 계산착오다.
수필인생을 꿈꾼다면 글로 돈벌기를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탓할 일도 아니다. 나 스스로 세상을 향하여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대가부터 바란다면 그건 파렴치범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여태 글을 쓰면서 단 한 푼 벌은 게 없는 건 아니다. 운 좋게 어떤 공모에 입상하면 적지 않은 목돈을 부상으로 받기도 한다. 하지만 평생에 그런 행운이 몇 번이나 올까? 고료를 받는 일은 신인작가에겐 꿈에 떡을 얻어먹는 것만큼이나 드물다.
작가, 특히 수필작가를 향하여 돈 많이 벌었냐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는 시대와 역사를 향하여 외치고 싶은 목소리를 글로 표현할 뿐이다. 글다운 글을 위해 부단한 투자를 계속하며 돈 버는 일에 질끈 눈을 감아버린 작가를 향하여 "돈 많이 벌었습니까?"하는 질문은 모욕이다. 쓰는 일을 업으로 아는 작가들에게 돈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건만……. 변명하는 나 자신이 구차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게 사실인 걸 어쩔 것인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유영희
"책도 내고, 여기저기서 원고 청탁도 받았으니 돈 많이 벌었지요?" 느닷없는 질문을 받고 나오는 건 헛웃음뿐이었다. 작년 책을 낼 무렵, 글 한편이 어느 공모전에서 입상하면서 매스컴 세례를 받았었다. 덕분에 문학성이 뛰어나지도 못한 처녀 수필집이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하여 많은 홍보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책을 내고 그 대가로 들어 온 수입은 단 한 푼도 없는데 돈 많이 벌었냐는 질문 앞에서 그저 말문이 막힐 따름이었다.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한 편의 작품을 발표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뒤따른다. 분명 노동을 통하여 생산된 글이니 그 대가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전혀 다른 현실을 설명하며 구차한 변명을 하고 있는 자신이 초라해져 버린다. 아직 등단k지 않은 작가지만 수필의 세계에 발을 내딛은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할 정도면 문학과 거리가 먼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랴.
가족이나 친구들이 내게 철저히 당부하는 것은 돈에 욕심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쓰고 싶어 쓰는 글이니 오로지 그 자체만으로 행복을 누리라고 말한다. 글과 돈을 연결짓는 순간이 내 타락이며 변질이 될 거라고까지 경고한다. 그 덕분인지 아직까지는 책을 내고도, 원고 청탁을 받고도, 돈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고료를 주장할 만큼 빼어난 글 솜씨가 못된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운 고백이다.
내게 수필가라는 이력이 붙기 전에, 누군가의 프로필에 문인이란 호칭이 붙어 있으면 대단한 존경심을 품고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바라보곤 했었다. 고도의 두뇌노동을 거쳐 한 편의 글을 완성하고, 그 글이 지면에 발표되면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생각도 가졌었다.
막상 문인이란 이름표를 달고 보니 그 세계는 참으로 빈한[貧寒]하기 짝이 없었다. 각 장르마다 등단작가가 넘쳐나고 매달 배달되어 오는 작품집들은 미처 읽을 새도 없이 쌓인다. 쏟아지는 각종 문예지와 잡지를 대하며, 글과 작가의 홍수시대임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동인지며 개인 작품집이 넘쳐나다 보니 돈을 주고 책을 사서 보는 경우가 별로 없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책이 거저 쥐어지니 쓰기의 고충을 아는 작가들도, 책은 사서 본다는 개념보다는 얻는다는 개념이 강하다. 결국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낸 작품집은 집안 잔치로 끝나거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손에서 제대로 읽히지도 못하고 사장되기 일쑤다.
가끔 작가의 서명이 있는 책을 소장하고 싶다며 돈을 보낼 테니 책을 보내달라는 독자도 있다. 내로라할 주제도 못되는데 원하는 독자에게 책값을 받기는 민망한 일이다. 이렇게 특별히 연락을 보내준 독자에겐 더욱 정성스럽게 사인을 하여 거저 책을 보내주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책을 보내고 나면 받았다는 연락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처음 겪을 때는 배신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그마저도 이젠 이골이 난 터이다. 우습게도 책을 보내달라고 말을 꺼내는 사람들 대다수가 글을 쓴다는 축에 속한다. 말만하면 책은 거저 받아도 된다는 생각에 젖어버린 사람들이다. 작가들 스스로 파놓은 함정이니 누굴 탓할 것인가.
요즘은 인터넷의 사이트마다 '불러그'라는 카테고리를 통하여 쓰여 지는 글들도 그 양이 엄청나다. 활자화 된 책이 아니라도 읽을거리는 넘쳐난다. 이렇다보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활자화된 수필집을 돈 주고 사려 들지 않는다. 자연 글의 홍수시대를 살면서도 출판 업계는 불황이라는 고갯마루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다. 책을 사 읽는 독자가 줄어드니 잡지든 문예지든 채택된 원고에 대해 일일이 고료를 챙겨줄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작가에게 베푸는 혜택은 글이 실린 책을 보내주던가, 조금 후한 곳은 1년의 정기구독권을 부여한다.
한 권의 작품집이 출간되어 내 손에 전달되기까지 작가가 겪는 수고를 번연히 알면서, 나 역시도 전해진 책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데 지독히 인색하기만 하다. 겪었던 아픔을 기억하여 잘 받았다는 감사와 격려를 빠트리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그새 잊고 산다. 결국 문인들끼리 용기를 북돋아주기는커녕 제살 깎아먹기 식으로 가치하락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생각이 팽배한 마당에 문학성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주절주절 썼던 글을 모은 처녀 수필집이 돈을 벌었으리란 생각은 너무나 큰 계산착오다.
수필인생을 꿈꾼다면 글로 돈벌기를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탓할 일도 아니다. 나 스스로 세상을 향하여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대가부터 바란다면 그건 파렴치범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여태 글을 쓰면서 단 한 푼 벌은 게 없는 건 아니다. 운 좋게 어떤 공모에 입상하면 적지 않은 목돈을 부상으로 받기도 한다. 하지만 평생에 그런 행운이 몇 번이나 올까? 고료를 받는 일은 신인작가에겐 꿈에 떡을 얻어먹는 것만큼이나 드물다.
작가, 특히 수필작가를 향하여 돈 많이 벌었냐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는 시대와 역사를 향하여 외치고 싶은 목소리를 글로 표현할 뿐이다. 글다운 글을 위해 부단한 투자를 계속하며 돈 버는 일에 질끈 눈을 감아버린 작가를 향하여 "돈 많이 벌었습니까?"하는 질문은 모욕이다. 쓰는 일을 업으로 아는 작가들에게 돈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건만……. 변명하는 나 자신이 구차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게 사실인 걸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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