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인이 벌써 회갑이라니

2006.05.08 18:01

김학 조회 수:83 추천:9

  이 시인이 벌써 회갑이라니
                          -이용숙 총장의 회갑에 부쳐-

                                             金 鶴(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 이사장)


  이 시인, 아니 벌써 회갑이라니, 그게 사실이오? 뭐가 부러워서 그렇게 빨리 뒤따라왔단 말이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토끼처럼 세월의 강을 건너오면서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낮잠도 좀 자고, 산천경개를 두루두루 구경하며 느릿느릿 올 일이지 왜 이렇게 서둘러 회갑고개를 넘는단 말이오? 오호통재로고!
이제 회갑고개에 도착해 버린 걸 어쩌겠소? 다시 뒤로 돌아가라고 쫓을 수도 없는 일인 걸. 어찌 됐던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았소. 당신도 이 나이가 되기까지 살아오면서 때로는 그냥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을 터이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이오.
어디 그 뿐이오?
“나는 하필이면 왜 이 시대에 태어났고, 하필이면 왜 이 손바닥만한 한반도, 게다가 전라도 임실군 지사 땅에서 태어났으며, 하필이면 왜 경주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느냐?”고 조물주를 원망할 때도 있었을지 모르겠소. 또,
“나에겐 왜 이 정도의 능력만 주었느냐?”고 불평도 했을지 모르겠구려. 그래요. 그 조물주 영감이 사전에 이 시인과 상의한 뒤 이 세상에 보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절차를 생략하고 멋대로 이 시인을 이곳으로 보낸 것이 불찰이지요. 어디 이 시인만 그런 줄 아시오? 이 지구상의 60억 인구가 모두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조물주는 천하의 장난꾸러기가 분명하지 않소? 아니. 조물주만 탓할 일도 아니려니 싶소이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보내지 않으면 누가 아프리카나 북한 같은 가난한 곳에서 태어나려고 하겠소?
평화롭고 행복한 시대에, 자연자원이 풍부한 넓은 나라에서, 부잣집이나 고관대작의 집안의 무한한 능력을 가진 아들로 태어나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했으니 조물주가 무척 원망스러웠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사실 나도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으니 이 시인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미뤄 짐작해 본 것이오.
그러나 이 시인, 그래도 당신은 조물주가 특별히 선택하여 특혜를 준 인물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오. 생각해 보시구려.
당신에겐 시를 쓸 줄 아는 무한한 능력을 주었소. 게다가 교육자로서의 능력도 주었소. 그랬기에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대학교수가 되었고, 대학총장까지 오르도록 하지 않았소? 이는 조물주의 특별배려임을 항상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 생각하오.
요순시절이 아니라 이 난세에 당신을 전라도 땅에 보낸 것은 오랜 역사를 건너오면서 피해의식을 많이 지닌 전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시심(詩心)으로 다독거리고 어루만져 주라는 사명과, 전주교육대학교 총장을 맡아 무너져가는 교육을 일으켜 세우는데 이바지하라는 깊은 뜻이 아니겠소?
또 경주 이씨 집안에서 태어나게 한 것도 예삿일이 아닌 것 같소이다. 조선왕조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동고 이준경(東皐 李浚慶) 할아버지의 후사를 잇게 하려는 뜻이니 얼마나 영광이오? 당신이 그런 명문거족의 후예로 태어났으니 오늘날 두루두루 존경을 받는 게 아니겠소?
이 시인! 당신이 내 중학교 후배라는 사실을 안 것은 문단에 나온 다음이었다오. 문단에서 내가 당신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고향이 내 고향과 이웃인 임실군 지사면이라는 것도 알았고, 당신의 본명이 ‘용숙’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오.
학창시절에 유명한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본명 따로 필명 따로 갖고 활동했고, 가끔 그게 국어시험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구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시인도 이름은 ‘용숙’이고 필명은 ‘시연’이더군요. 그러니 문단에서는 당신의 본명보다 필명이 더 알려지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이 시인, 이제 4년 임기의 ‘이용숙 총장’이란 짐도 내려놓게 되었으니 홀가분하게 사시구려. 유유자적하며 올곧은 선비의 길을 걸으소서. 총장임무를 수행하느라 그 동안 시인으로서의 못다 이룬 꿈이 있거든 그 꿈을 이루소서. 몇 해 전에 고향에 새로 지은 그 집에 ‘이시연 문학관’이란 문패를 만들어 달고 다시 시심의 촛불을 환히 밝히소서.

*김학 약력
월간문학으로 등단/<아름다운 도전> 등 수필집 9권/한국수필상, 펜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임실문협 회장,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 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현) http://crane43.k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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