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2006.05.14 18:09

정현창 조회 수:63 추천:7

징검다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도갑사 앞 냇물은 정말 맑았다. 물속엔 이름모를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노닐고 있었고, 돌 틈에서는 다람쥐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도선국사 비각을 지나 억새밭으로 가는 등산로엔 습지생태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어제 내린 비로 더 이상 깨끗해질 수 없도록 맑은 공기가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심호흡을 하여 가슴 가득 공기를 마시면  마치 탄산음료를 마신 것처럼 가슴이 싸했다. 화창한 초여름 햇빛이 스며들 수 없을 만큼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월출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나 있었다. 마음은 이미 몸을 떠나 한걸음에 천왕봉에 오를 듯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유리처럼 맑은 물속 바윗돌 위에서는 도롱뇽이 기어 다니고, 돌 밑엔 가재들이 쉬는 계곡이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원한 계곡물소리에 세파의 모든 시름들이 깨끗이 씻겨져 내렸다. 오늘 하루, 세상 짐 다 내려놓고 신선인 양 이 길에서 노닐다 가고 싶으나 관광버스 출발시각은 내 등을 떠밀어 도갑사 주차장 쪽으로 산악 마라톤을 시켰다.

  처음 동참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문학기행은 전남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를 돌아보고 월출산 도갑사를 거쳐 광주 포충사와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참배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 의병의 선봉장으로 싸우다가 전사한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 등 3부자와 유팽로, 안영 등 5위의 선열을 모시는 사액사당이다. 전국의 각종 사당이 그렇듯 넓은 장소에 잘 가꾸어진 화단과 사당, 유물관 등 몇 동의 건물이 있었다. 학생시절 시험을 위해 억지로 역사책 한 페이지를 읽어 내렸듯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국립5.18묘역은 내가 꼭 가보고 싶은 장소였다. 518민주항쟁 26주년을 며칠 앞두고 조문할 수 있어 의미가 컸다. 큰 규모와 우뚝 선 탑, 잘 가꿔진 묘역을 보면서 성숙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보는 듯하였다. 그러나 지하에 전시되고 있는 피 흘리며 죽어가는 당시의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면서는 아직 미완성된 민주항쟁의 통곡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저렇게 죽어갔는가. 아직도 풀지 못한 그 당시 주역들의 처리 등 수많은 숙제들은 내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짓눌렀다. 화창한 초여름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구구절절 한(恨)맺힌 비문(碑文)들을 읽었다. 그러나 은빛 찬란한 비석에서 피눈물로 쓰다가 다 쓰지 못하고 숨져간 사람들의 슬픈 일기장이 마치 금박물로 장식한 최고급 표지를 서둘러 입혀놓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1980년 10월 3일에 결혼한 나는 그해 5월은 결혼준비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광주폭도들이 전주까지 쳐들어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며칠 만에 겨우 진압되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세상일이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정읍 황토현에서 동학혁명기념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회에 참가했었는데 올해는 불참했다. 동학운동  뿐만 아니라 부패한 정권에 대항하다 희생된 사람들은 너무 많다. 요즘 재조명되는 제주4.3항쟁과 4.19학생운동, 광주민주항쟁 등 수많은 항쟁이 있어 우리의 민주주의가 생존해 왔고 민초들의 인권이 지켜질 수 있지 않았던가. 또한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유별나게 외세의 압력을 받아온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지켜온 것은  포충사에 모셔진 분들 외에 전국 방방곡곡에 잠들어있는 순국선열들이 뿌린 애국애족의 뜨거운 피 때문일 것이다.

  삼천자연생태정화사업을 하면서 많은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아침마다 서부신시가지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징검다리를 건너 학교를 오가고 있다. 전주 천변에 살던 어린시절에는 매일 징검다리를 건너 시내에 다녔었다. 메뚜기처럼 팔딱팔딱 뛰어 건너던 징검다리를 건너기는 그저 재미가 있었다. 내가 건널 때마다 발밑에서 물에 젖지 않게 바쳐주고 있는 디딤돌의 고마움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저 그 돌들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겠지 생각했었다. 도리어 징검다리를 건널 때마다 흔들거리거나 못생긴 돌들 때문에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지나 않을까 원망하며 건너다녔었다.

  역사의 물결이 도도하게 흐르는 물가에서 오늘도 우리는 도갑사에서 마신 맑은 공기처럼 아무 대가도 없이 한없는 자유를 누리며 산다. 3만 달러 시대의 행복한 꿈을 꾸면서 살 수 있는 것도 역사의 어느 한 구석에서 자기 한 몸 기꺼이 던져 징검다리의 디딤돌이 되어준 그분들을 밟고 서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없이 많은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이루어진 징검다리를 밟고 오면서도 그분들의 한 맺힌 통곡을 듣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문학기행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위해 기꺼이 징검다리가 되어준 고마운 분들을 생각나게 한 뜻 깊은 여행이었다. 또한 함께 수필공부를 하는 문우이면서 서로 얼굴조차 알지 못했던 분들과 많은 정배주를 나누며 행복에 취한 잊지 못할 하루였다.
                                                    (2006.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