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엿보기
2006.05.18 06:06
전주 엿보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조 종 영
내가 전주에 처음 들어서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호남제일문’이었다. 시내에는 천년 고도의 역사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우리 건축양식으로 도시의 미를 가꾼 모습은 그 전통의 멋을 더해주었다. 아마 전주는 그런 오랜 전통에서 서예, 한지공예, 소리문화 등의 다양한 예술과 음식 문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또, 시가지가 넓고 복잡하지 않아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전주가 우리의 전통을 그대로 담아서인지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전과 전주를 오가며 반 주씩 사는 생활도 어느새 1년쯤 된다. 그동안 전주의 겉모습도 제대로 못 본 내가, 감히 전주를 평한다는 것은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미숙한 눈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보지 못한 세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두어 달 전에 가까운 친구 두 가족이 전주를 찾아왔었다. 내가 여기에 있으니 구경삼아 왔지만, 사실 내가 전주에 대해 아는 바는 친구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내 손님인데 안내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날씨가 흐린데다가 쌀쌀하기도 해서 경기전과 한옥마을을 둘러본 뒤, 저녁은 이름난 전주비빔밥으로 해결하고 일찍 숙소에 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덕진광장에 있는 콩나물국밥 집으로 안내를 했다. 그런데 콩나물국밥 한 그릇씩을 비우고 나서는 너나없이 아주 만족해했다. 오히려 비빔밥보다 더 칭찬했다. 그러니 안내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TV 방송에서도 콩나물에는 아스파라긴산이 많이 들어있어 숙취 해소에 최고의 식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콩나물국밥에는 전주 사람의 지혜가 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간단한 식사로 해장국을 즐겨먹는다. 해장국집은 전국 어디를 가나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전주에 와서 해장국집을 찾으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좀 의아하게 생각되었는데, 요즘에야 해장국이 콩나물국밥에 밀려난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전주에 와서 처음 발견한 생소한 간판은 ‘가맥’이었다. 술집이나 구멍가게 같지도 않은데 ‘ㅇㅇ가맥’이라는 간판이 눈에 많이 뜨였다.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뭐하는 집이냐고 물어봤더니 구멍가게 옆에 탁자를 놓고 맥주를 마시는 곳이라고 했다. 나는 그저 동네 구멍가게에 앉아 병맥주 한 잔 마시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어제저녁에 수필 강의를 파하고 교수님과 문우 몇 분이 어울려 가맥 집에 가게 되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담장 곁에 두 가맥 집이 마주보고 있었다. 우리가 찾은 집은 마침 가게 안과 앞의 길가까지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그런데 길 건넛집은 겨우 몇 사람만 있을뿐 휑하니 아주 한산했다. 음식은 손님 많은 집이 잘한다는데, 우리는 앉을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앞 가게로 갔다. 나는 맥주 한 잔 하는데 뭐가 특별해서 한쪽 집으로 사람이 몰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가맥 집은 안주로 나오는 말린 갑오징어와 황태 찍어먹는 양념장이 생명이란다. 나야 처음이라서 아직 비교 가 잘 안 되지만 그 차이가 별것 아니려니 싶었다. 그런데 실제 먹어보니 양념장에 안주 찍어 먹는 맛이 제법이었다. 그리고 갑오징어와 황태는 맥주와 한 통속인지 술과 안주 먹는 양이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생각보다 많은 술을 마시고 말았다. 나는 다음엔 앞집의 양념장 맛이 얼마나 훌륭한지 꼭 한 번 맛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말에는 친구들과 정기모임이 있었다. 내가 금요일 일과가 끝나고 계룡산 동학사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7시 반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내가 앉자마자 한 친구가 전주 막걸리에 대해서 물었다. 어디에서 전주에 막걸릿집이 유명하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도 어느 날, TV에서 전주 막걸릿집을 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직 가보지 않았으니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TV에 소개된 내용이 내 아는 전부라고 솔직히 말하고, 전주에는 그런 막걸리전문집이 꽤 많다는 말만 덧붙이고 지나갔다. 그래서 전주 가면 막걸릿집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아직도 실천에 옮기질 못했다. 그러나 다음 모임 전에는 꼭 한 번 다녀와야 그때 질문에 대답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내 마음 한편에는 어느새 전주 막걸릿집이 새로운 명물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지방마다 자기지역 특성이 담긴 향토적인 상품개발에 온갖 공을 다 들이고 있다. 그러나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런 좋은 상품개발이 어찌 그렇게 쉬운 일인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곧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요즈음 전주비빔밥이 국내를 넘어서 세계적인 음식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본 전주에는 비빔밥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전주비빔밥과 더불어 콩나물국 그리고 막걸리가 함께 어우러지면 아주 훌륭한 조화를 이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가맥’이며 ‘콩나물국밥 집’, ‘막걸릿집’ 등은 오직 전주만의 특징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주에 새로운 토종명품들이 많이 개발되고 유명해져서, 전주문화의 전통이 더욱 빛나기를 기대해 본다.
(2006. 5. 16.)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조 종 영
내가 전주에 처음 들어서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호남제일문’이었다. 시내에는 천년 고도의 역사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우리 건축양식으로 도시의 미를 가꾼 모습은 그 전통의 멋을 더해주었다. 아마 전주는 그런 오랜 전통에서 서예, 한지공예, 소리문화 등의 다양한 예술과 음식 문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또, 시가지가 넓고 복잡하지 않아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전주가 우리의 전통을 그대로 담아서인지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전과 전주를 오가며 반 주씩 사는 생활도 어느새 1년쯤 된다. 그동안 전주의 겉모습도 제대로 못 본 내가, 감히 전주를 평한다는 것은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미숙한 눈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보지 못한 세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두어 달 전에 가까운 친구 두 가족이 전주를 찾아왔었다. 내가 여기에 있으니 구경삼아 왔지만, 사실 내가 전주에 대해 아는 바는 친구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내 손님인데 안내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날씨가 흐린데다가 쌀쌀하기도 해서 경기전과 한옥마을을 둘러본 뒤, 저녁은 이름난 전주비빔밥으로 해결하고 일찍 숙소에 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덕진광장에 있는 콩나물국밥 집으로 안내를 했다. 그런데 콩나물국밥 한 그릇씩을 비우고 나서는 너나없이 아주 만족해했다. 오히려 비빔밥보다 더 칭찬했다. 그러니 안내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TV 방송에서도 콩나물에는 아스파라긴산이 많이 들어있어 숙취 해소에 최고의 식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콩나물국밥에는 전주 사람의 지혜가 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간단한 식사로 해장국을 즐겨먹는다. 해장국집은 전국 어디를 가나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전주에 와서 해장국집을 찾으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좀 의아하게 생각되었는데, 요즘에야 해장국이 콩나물국밥에 밀려난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전주에 와서 처음 발견한 생소한 간판은 ‘가맥’이었다. 술집이나 구멍가게 같지도 않은데 ‘ㅇㅇ가맥’이라는 간판이 눈에 많이 뜨였다.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뭐하는 집이냐고 물어봤더니 구멍가게 옆에 탁자를 놓고 맥주를 마시는 곳이라고 했다. 나는 그저 동네 구멍가게에 앉아 병맥주 한 잔 마시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어제저녁에 수필 강의를 파하고 교수님과 문우 몇 분이 어울려 가맥 집에 가게 되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담장 곁에 두 가맥 집이 마주보고 있었다. 우리가 찾은 집은 마침 가게 안과 앞의 길가까지 손님이 바글바글했다. 그런데 길 건넛집은 겨우 몇 사람만 있을뿐 휑하니 아주 한산했다. 음식은 손님 많은 집이 잘한다는데, 우리는 앉을 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앞 가게로 갔다. 나는 맥주 한 잔 하는데 뭐가 특별해서 한쪽 집으로 사람이 몰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가맥 집은 안주로 나오는 말린 갑오징어와 황태 찍어먹는 양념장이 생명이란다. 나야 처음이라서 아직 비교 가 잘 안 되지만 그 차이가 별것 아니려니 싶었다. 그런데 실제 먹어보니 양념장에 안주 찍어 먹는 맛이 제법이었다. 그리고 갑오징어와 황태는 맥주와 한 통속인지 술과 안주 먹는 양이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생각보다 많은 술을 마시고 말았다. 나는 다음엔 앞집의 양념장 맛이 얼마나 훌륭한지 꼭 한 번 맛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말에는 친구들과 정기모임이 있었다. 내가 금요일 일과가 끝나고 계룡산 동학사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7시 반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내가 앉자마자 한 친구가 전주 막걸리에 대해서 물었다. 어디에서 전주에 막걸릿집이 유명하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몹시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도 어느 날, TV에서 전주 막걸릿집을 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직 가보지 않았으니 대답이 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TV에 소개된 내용이 내 아는 전부라고 솔직히 말하고, 전주에는 그런 막걸리전문집이 꽤 많다는 말만 덧붙이고 지나갔다. 그래서 전주 가면 막걸릿집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아직도 실천에 옮기질 못했다. 그러나 다음 모임 전에는 꼭 한 번 다녀와야 그때 질문에 대답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내 마음 한편에는 어느새 전주 막걸릿집이 새로운 명물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지방마다 자기지역 특성이 담긴 향토적인 상품개발에 온갖 공을 다 들이고 있다. 그러나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런 좋은 상품개발이 어찌 그렇게 쉬운 일인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곧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요즈음 전주비빔밥이 국내를 넘어서 세계적인 음식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본 전주에는 비빔밥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전주비빔밥과 더불어 콩나물국 그리고 막걸리가 함께 어우러지면 아주 훌륭한 조화를 이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가맥’이며 ‘콩나물국밥 집’, ‘막걸릿집’ 등은 오직 전주만의 특징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주에 새로운 토종명품들이 많이 개발되고 유명해져서, 전주문화의 전통이 더욱 빛나기를 기대해 본다.
(2006.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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