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흐르는 사랑의 온기

2006.05.25 08:24

조은숙 조회 수:94 추천:16

인터넷에서 흐르는 사랑의 온기
                                  전북대학교평생 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조은숙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에 서둘러 음악의 볼륨을 낮추고 비디오폰을 통해 나만의 공간에 무례하게 침투한 방문자를 확인했다. 이웃들과 비슷한 시기에 입주하여 5년 이상 같이 살아온 아파트이지만, 외출하여 가스 불을 끄고 나왔는지 헷갈릴 때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확인을 부탁할 절친한 친구 한 명 없으니 분명 낯선 방문자일 것이다.

바야흐로 동호회 시대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같은 운동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취향끼리 어울린다. 수영 동호회, 영화감상 동호회, 사진 동호회 등등. 마른사람들 동호회처럼  신체조건이 같은 사람들끼리의 동호회도 있다. 동갑내기 동호회나, 아줌마동호회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이와 성별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 아이와 같은 학년 엄마를 만나 취미가 무엇인지, 가족사를 나누는 절차가 복잡할 뿐더러 하루 종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녁 무렵 밀려오는 허탈감에, 흉허물이 없어지는 만큼 사생활에 침해를 받는다. 그래서일까,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면서 내게 맞는 동호회에 가입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검색창을 통해 마늘장아찌 담그는 방법을 배운다.

동호회 홈피를 통해 글로써 내 안의 이야기도 끌어내고 동호회원들의 안부도 묻는다. 댓글을 통해 말 그대로 즉시 대꾸하는 글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한다. 나의 경우만 봐도 두 개의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해 있어 전국 어느 곳이나, 미국 일본 소련에까지 동호회의 지인이 있다.

최근 회원이 500여 명이나 되는 전국 규모의 마라톤동호회 한 회원인 M님이  최근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1년에 한두 번두 번의 정기모임에서 만나고 대부분 인터넷 홈피에서 친분을 쌓아가는 사이들이다. M님은 이 동호회의 첫 정기모임을 평창 금당계곡에서 주관하며 이 동호회의 끈끈한 우정의 모태가 되신 분이었다. 나 역시 3년여 동안 활동하면서 그 동호회 회원이 살고 계신 평창 펜션으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M님의 신세를 진 적도 있다.

내가 평창에 가기 전 단 한 번 뵈었을 뿐인데 우리 가족을 마치 친 동기간처럼 반겨 주시며 펜션 테라스에 술과 고기 여러 음식을 미리 준비해 놓고 계셨다.  그날 밤 남편과  M님은  ‘백두대간종주’라는 같은 공감대로 거나하게 마시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간해서 곁을 주지 않는 남편도 ‘M선배님’이라고 호칭을 바꿔 부르며, 전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떠나올 때는 감자 한 박스를 미리 사놨다가 차에 실어 주고, 금방 딴 옥수수를 사 주신다며 한사코 따라 나서 배웅해 주셨다.

그리고 최근  몇 달간 동호회 홈피에서 뵐 수 없더니, 별안간 홈피에 M님은 병원에서  길어봐야 한 달의 시한부 선고를 받고, 강원도의 한 요양원으로  들어 가셨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맞아. 작년 여름 만났을 때 달리기하면 옆구리가 결려서 요즘엔 산행만 조금씩 한다고 하셨는데, 그때 혈색이 어떠셨더라? 우리 부부가 권한 술이 병세를 더 악화시킨 건 아닌지……. 나는 심한 죄책감이 들었다.

동호회 회원들은 며칠 동안 긴박하게 움직였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요양원을 어렵게 찾아 서울의 문턱 높은 병원에 입원 시키고 10%의 회생 가능성에 기대하며 수술날짜를 잡았다. 성금 모금 공지가 떴고 며칠 동안 150명이 넘는 동호회원이 참가하여 천 오백여만 원의 성금이 입금되었다. 서울 지역동호회원은 간병 팀과 위문 팀, 진료 팀으로 나눠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꼭 M님을  살리자는 글이 올라오고 130개가 넘는 댓글들은 하나하나 모두가 간절한 기도문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시는 M님은 지금 신촌 세브란스병원 병실에서 동호회원들에게 폐만 끼치고 갈 수 없다며 생의 끈을 움켜쥐신 채 투병중이시다. 당장 가 볼 수 없는 형편이라  급한 마음에 몇 푼의 성금만을 입금하고, 동호회 홈피에 댓글로 간절한 염원을 담았을 뿐이다.

愛走(동호회에서의 나의 닉네임): M님이 작년에 사 주신 감자도 올해 새싹을 틔웠습니다.이렇게 보내 드릴 수 없어요.

사각의 틀에 갇힌 인터넷 동호회에서 단 며칠사이에 만들어낸 잔잔한 감동. 온라인 세상 역시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적절히 병행해야 끈끈한 정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터넷 동호회 홈피에는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한다.
글이란 게 원래 ‘너는 노래만 잘한다.’ ‘너는 노래도 잘한다.’처럼 조사 하나로도 내용이 달라질 수 있어서인지, 글은 쉽게 사람을 친근해지게도 하지만 흔히 온라인상에서 글로 인해 오해도 많이 생기고 서로 상처를 주거나 받는 일이 간혹 생긴다. 그러나 오프라인 상에서 충분한 교감이 있어 글쓴 이의 진심을 읽어낸다면 오해나 상처보다는 친근감의 표시로 읽을 것이다.

  세상이 컴퓨터로 인해 삭막하게 변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컴퓨터는  편리한 하나의 수단일 뿐, 우리가 로봇이 되지 않는 한 완벽한 온라인화는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니터 밖에서 우리를 반겨주던 따스한 M님의 손길과 미소를 더 기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