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2006.05.25 16:33
수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어느 날 수행중인 젊은 스님이 큰스님을 찾아왔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소?”
“나는 그동안 열반경을 읽었지만 모르는 것이 많아서 가르침을 받고자 왔습니다.”
“음~ 하지만 난, 글자를 모르오.”
“아니, 글자를 모르면서 어떻게 글자 속에 담긴 진리를 알 수 있습니까?”
“진리란 글자와는 무관한 것, 이는 마치 하늘의 달과 같소. 그리고 문자는 우리들의 손가락과 같소.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수는 있어도 손가락 자체가 달은 아니오. 달을 볼 때 반드시 손가락을 거쳐야 하는 건 아니잖소?”
KBS스페셜 ‘선(禪)이야기’에서 ‘꽃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이야기다. 이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내용으로 손가락은 달을 보게 하는 하나의 이정표일 뿐 우리가 바라보아야할 대상은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라는 이야기다. 난, 방송을 보면서 문득 그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를 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것이었구나 하며 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작년 6월 27일에 ‘울트라마라톤’이란 글을 쓰고 수필에 입문한지 꼭 11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160편 가까운 습작품을 썼고, 수필창작을 배우면서도 수필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었다. 왜 수필은 겨울나무처럼 간결해야 하는가? 도리어 화려하고 미사여구(美辭麗句)가 많아야 잘 써진 수필이 아닐까. 수필을 신변잡기(身邊雜記)라고 비하(卑下)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울수록 이어지는 의문에 항상 소화되지 못한 위장처럼 더부룩했었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대한 방송을 보고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난, 방송을 보면서 생각했었다. 달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主題)’이고 가리키는 손가락은 적절한 소재(小題)로 이루어진 수필이 아닐까. 가리키는 손가락을 통하여 달을 보듯, 독자들은 수필을 통하여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주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필은 주제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주먹을 쥐거나 허공을 가리키면 독자들이 주제를 찾지 못할 게 아닌가. 그렇게 주제를 가리키지 못하는 수필을 보고 신변잡기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또한 손가락에 필요 없는 치장을 하거나 화려한 반지라도 끼면 독자들을 현혹시켜 주제로 인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쳐다보게 만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수필은 군더더기가 없이 겨울나무처럼 간결해야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손가락이 너무 무미건조하거나 흥미를 끌지 못하면 독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그러면 독자들은 그 수필을 외면하여 작가가 원하는 주제로 인도할 수 없기에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재미있고 세련된 손으로 꾸며야 한다고 본다. 독자들은 아름답고 멋진 손가락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주제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하여 수필을 읽는 보람을 만끽하게 되고 그 작가가 쓴 수필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피천득/수필)
“수필에 있어서의 멋과 묘미는 화려하다거나 사치스러운 것, 또는 요란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수수하면서 소박하고, 은근하면서도 조용하며, 은은한 향취가 풍겨오고, 삶의 진솔한 모습이 꾸밈새 없이 담겨져 있는 것이 수필에 있어서의 참된 멋과 묘미이다.” (이철호/수필의 멋과 묘미)
이렇듯 주제로 인도하는 손가락인 수필은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고, 수수하고 간결하지만 독자를 이끌만큼 청자연적이나 학처럼 고고하고 세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수많은 수필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만큼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퍽 고무적이다. 하지만 달을 가리키지 못하는 손가락이 많이 있다. 아예 주제는 없고 손가락 자랑만 늘어놓는 그야말로 신변잡기에 그치는 글들을 너무 많이 본다. 그동안 내가 써온 많은 습작들도 달을 가리키지 못하는 손가락이 아니었을까. 손가락을 치장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쌍가락지를 끼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나의 습작품을 통해 바라본 달은 독자들에게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찾아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을까. 오늘도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수필을 쓰면서, 달을 가리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손가락이 되리라 다짐해본다.
(2006. 5. 26.)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어느 날 수행중인 젊은 스님이 큰스님을 찾아왔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소?”
“나는 그동안 열반경을 읽었지만 모르는 것이 많아서 가르침을 받고자 왔습니다.”
“음~ 하지만 난, 글자를 모르오.”
“아니, 글자를 모르면서 어떻게 글자 속에 담긴 진리를 알 수 있습니까?”
“진리란 글자와는 무관한 것, 이는 마치 하늘의 달과 같소. 그리고 문자는 우리들의 손가락과 같소.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수는 있어도 손가락 자체가 달은 아니오. 달을 볼 때 반드시 손가락을 거쳐야 하는 건 아니잖소?”
KBS스페셜 ‘선(禪)이야기’에서 ‘꽃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이야기다. 이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내용으로 손가락은 달을 보게 하는 하나의 이정표일 뿐 우리가 바라보아야할 대상은 손가락이 아니라 달이라는 이야기다. 난, 방송을 보면서 문득 그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를 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것이었구나 하며 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작년 6월 27일에 ‘울트라마라톤’이란 글을 쓰고 수필에 입문한지 꼭 11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160편 가까운 습작품을 썼고, 수필창작을 배우면서도 수필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었다. 왜 수필은 겨울나무처럼 간결해야 하는가? 도리어 화려하고 미사여구(美辭麗句)가 많아야 잘 써진 수필이 아닐까. 수필을 신변잡기(身邊雜記)라고 비하(卑下)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울수록 이어지는 의문에 항상 소화되지 못한 위장처럼 더부룩했었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대한 방송을 보고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난, 방송을 보면서 생각했었다. 달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主題)’이고 가리키는 손가락은 적절한 소재(小題)로 이루어진 수필이 아닐까. 가리키는 손가락을 통하여 달을 보듯, 독자들은 수필을 통하여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주재를 깨닫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필은 주제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주먹을 쥐거나 허공을 가리키면 독자들이 주제를 찾지 못할 게 아닌가. 그렇게 주제를 가리키지 못하는 수필을 보고 신변잡기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또한 손가락에 필요 없는 치장을 하거나 화려한 반지라도 끼면 독자들을 현혹시켜 주제로 인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쳐다보게 만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수필은 군더더기가 없이 겨울나무처럼 간결해야 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손가락이 너무 무미건조하거나 흥미를 끌지 못하면 독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그러면 독자들은 그 수필을 외면하여 작가가 원하는 주제로 인도할 수 없기에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재미있고 세련된 손으로 꾸며야 한다고 본다. 독자들은 아름답고 멋진 손가락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주제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하여 수필을 읽는 보람을 만끽하게 되고 그 작가가 쓴 수필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피천득/수필)
“수필에 있어서의 멋과 묘미는 화려하다거나 사치스러운 것, 또는 요란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수수하면서 소박하고, 은근하면서도 조용하며, 은은한 향취가 풍겨오고, 삶의 진솔한 모습이 꾸밈새 없이 담겨져 있는 것이 수필에 있어서의 참된 멋과 묘미이다.” (이철호/수필의 멋과 묘미)
이렇듯 주제로 인도하는 손가락인 수필은 장미처럼 화려하지는 않고, 수수하고 간결하지만 독자를 이끌만큼 청자연적이나 학처럼 고고하고 세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수많은 수필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만큼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퍽 고무적이다. 하지만 달을 가리키지 못하는 손가락이 많이 있다. 아예 주제는 없고 손가락 자랑만 늘어놓는 그야말로 신변잡기에 그치는 글들을 너무 많이 본다. 그동안 내가 써온 많은 습작들도 달을 가리키지 못하는 손가락이 아니었을까. 손가락을 치장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쌍가락지를 끼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나의 습작품을 통해 바라본 달은 독자들에게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찾아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을까. 오늘도 쓰면 쓸수록 어려워지는 수필을 쓰면서, 달을 가리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손가락이 되리라 다짐해본다.
(2006.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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