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익는 계절에
2006.05.30 12:24
보리수 익는 계절에
이은재(행촌수필문학회)
그 친구 집 울타리는 대나무와 보리수나무로 사각사각 바람이 불었다. 보리를 타작할 무렵이면 울타리 가지마다 보리수가 송알송알 빨갛게 농익어 갔다. 유월의 바람에 향기 오른 보리수 곁을 지나다가 문득 옛 친구가 생각나 보리수처럼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보리수 익는 계절에 친구를 생각하며 나직이 불러보던 노래, ‘보리수’…….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 온 나무 밑
오늘밤도 지났네 보리수 곁으로
캄캄한 어둠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흔들려서 말 하는 것 같이
그대여 여기 와서 안식을 찾아라
가난과 질병 속에서 마지막으로 작곡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의 詩에 곡을 붙인 것으로 전부 24곡의 가곡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 ‘보리수’는 널리 애창되는 곡이다. 이 연가곡 이야기는 실연당한 나그네가 눈보라치는 겨울에 정처없이 여행을 떠나 방황하며 겪은 체험을 노래로 구성하고 있다. 전체적 곡 분위기는 절망적인 쓸쓸함으로 일관되며 종반으로 갈수록 점점 어두워져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 당시 어려운 생활을 보내고 있던 슈베르트 자신의 불우한 삶을 자화상처럼 투영시켜 놓았다.
보리수 그늘 아래에서 단꿈을 꾸고 나뭇가지에 사랑의 말을 새겨두었던 나그네가 찬바람 부는 겨울에 실연의 아픔으로 방랑할 때 보리수 나뭇가지는,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고 속삭이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샘물이 흐르는 고요한 밤, 바람에 스쳐가는 보리수 잎의 수런거림이 상처받은 나그네의 마음을 묘사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유난히 친구 집 울타리에 보리수가 많았다. 그 친구는 당진으로 시집간 내 소꿉친구다. 벌써 오래전, 그 친구는 고층 아파트에서 누군가에 떠밀려 전라의 모습으로 죽었다. 남편의 폭력이 짓밟고 달아나면서 친구의 인생도 세상에서 사라졌다. 친구 부모님이 진상을 조사한다고 쫓아갔지만 손자들을 보는 순간 그만 두었다고 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친구의 남편을 의심했지만, 그렇게 해서 범인으로 밝혀진다면 이미 엄마를 잃은 아이들에게 아빠마저 잃게 할 수 없어서 그냥 자살로 묻어두기로 했다고 한다. 손자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던 친구 부모님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만약에 범인이 남편이었다면 어쩌면 고인이 된 내 친구의 바람도 아이들을 위해 남편의 단죄를 바라지 않았을까.
"한 번 만나자.”
하면서도 한 번 만나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동창모임이 있는데 그때 만나자며 그 친구는 흥분에 들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 전화가 내게 들려준 마지막 목소리였다. 대전역에서 만나 서울에 같이 가기로 약속해 놓고선 보리수 열매가 농익는 어느 날 훌쩍 가버렸다. 그 친구를 못 만난 지 20여 년이나 되었기에 우린 서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꼭 만나야할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은 당장 만났어야 했나보다. 세월은 마냥 기다려 주는 끈기 있는 녀석이 아니었기에.
들녘에 보리가 익어가고 담장에 보리수가 빨갛게 물들어갈 때면 비명에 간 친구의 환영이 떠올라 나도 몰래 눈물이 나곤 한다. 언젠가 계룡산에서 보리수를 팔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는 가슴이 아렸다. 한 봉지 사서 손에 드니 친구의 웃음처럼 빛깔이 고왔다. 친구를 닮은 보리수를 차마 먹을 수 없어 바라만 보면서 산에 올랐다. 초록빛 바람이 산비탈을 더듬고 지났다. 어린 시절 보리수 잎을 스쳐가던 바람소리였다. 바람에 흐느끼는 보리수의 속살거림이 친구의 환영(幻影)처럼 슬프게 다가왔다. 치맛자락에 보리수를 한 아름 따서 빨간 보리수가 다 터져 입술에 피멍이 들도록 친구와 먹었던 추억의 편린들이 슬프게 투영되었다.
고향에 가던 어느 날, 친구 집에 가 보았다. 빨간 보리수가 익어가던 울타리엔 시멘트 담장이 신열을 토하며 버티고 서 있었다. 친구의 죽음으로 친구 어머니는 정신이상을 일으키다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화병으로 돌아가시니, 폐가였다. 바람소리만 정적을 쌓는 폐가엔 인적도 끊기고 아직도 울타리 한켠에 남아 있는 대나무 숲만 쓸쓸히 빈 집을 지키고 있었다. 옛 친구 집에 오랜만에 찾아온 나를 보고 대나무는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이는 듯했다.
보리수를 부를 때마다 먼저 간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처연하던 내 모습만큼이나 가곡 보리수는 나그네를 가장한 슈베르트가 마지막 생의 끈을 놓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다. 슈베르트는 ‘보리수’에 그토록 깊은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겨울나그네’를 완성한 이듬해 1828년에 영원한 안식을 찾아 떠났다. 31세의 청춘이었다. 한편 뮐러는 슈베르트가 ‘겨울나그네’를 완성한 1827년에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 음악가와 시인은 어떤 교감을 가졌던 것일까. 31세와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할 운명을 공유하고 있었던 사람들. 노래의 행간엔 젊은 나이에 인생의 고뇌를 맛보며 예술혼을 불태웠던 슈베르트의 비애스런 삶이 깊은 우수로 묻어 있다. 두 예술가의 혼이 살아 있는 ‘보리수’는 먼저 떠나간 친구에 대한 아쉬움으로 내게도 특별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보리수 아래서 공기놀이도 하고, 숙제도 하고, 나뭇가지로 달려가 보리수를 따먹으며 즐거웠던 유년의 기억들이 보리수 익는 계절이 오면 나를 참을 수 없는 그리움 곁으로 끌고 가곤 한다.
그 날 울타리를 돌다가 기적처럼 소생하고 있는 보리수 한 그루를 보았다. 수많은 가지를 뻗고 진녹색 잎이 무성한 보리수는 친구의 못다한 삶을 대신하고 있는 듯 나를 보며 정답게 팔랑거렸다. 나는 내 친구가 어떤 사랑의 말이나 희망의 말을 보리수 나뭇가지에 걸어 놓지 않았을까 나뭇가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실연당한 나그네가 방황하며 눈보라치는 겨울밤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 때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고 속삭였던 그 바람소리가 내게도 들려오는 듯했다. 주인 잃은 빈 집엔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공허한 바람만 쓸쓸히 불고 있는데, 보리수가 송알송알 익고 있던 울타리에 서서 나는 친구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보았다.
"사랑하는 친구여~!"
"여기 와서 안식을 찾아라.”
이은재(행촌수필문학회)
그 친구 집 울타리는 대나무와 보리수나무로 사각사각 바람이 불었다. 보리를 타작할 무렵이면 울타리 가지마다 보리수가 송알송알 빨갛게 농익어 갔다. 유월의 바람에 향기 오른 보리수 곁을 지나다가 문득 옛 친구가 생각나 보리수처럼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보리수 익는 계절에 친구를 생각하며 나직이 불러보던 노래, ‘보리수’…….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 온 나무 밑
오늘밤도 지났네 보리수 곁으로
캄캄한 어둠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흔들려서 말 하는 것 같이
그대여 여기 와서 안식을 찾아라
가난과 질병 속에서 마지막으로 작곡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서정시인 ’빌헬름 뮐러‘의 詩에 곡을 붙인 것으로 전부 24곡의 가곡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 ‘보리수’는 널리 애창되는 곡이다. 이 연가곡 이야기는 실연당한 나그네가 눈보라치는 겨울에 정처없이 여행을 떠나 방황하며 겪은 체험을 노래로 구성하고 있다. 전체적 곡 분위기는 절망적인 쓸쓸함으로 일관되며 종반으로 갈수록 점점 어두워져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 당시 어려운 생활을 보내고 있던 슈베르트 자신의 불우한 삶을 자화상처럼 투영시켜 놓았다.
보리수 그늘 아래에서 단꿈을 꾸고 나뭇가지에 사랑의 말을 새겨두었던 나그네가 찬바람 부는 겨울에 실연의 아픔으로 방랑할 때 보리수 나뭇가지는,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
고 속삭이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샘물이 흐르는 고요한 밤, 바람에 스쳐가는 보리수 잎의 수런거림이 상처받은 나그네의 마음을 묘사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유난히 친구 집 울타리에 보리수가 많았다. 그 친구는 당진으로 시집간 내 소꿉친구다. 벌써 오래전, 그 친구는 고층 아파트에서 누군가에 떠밀려 전라의 모습으로 죽었다. 남편의 폭력이 짓밟고 달아나면서 친구의 인생도 세상에서 사라졌다. 친구 부모님이 진상을 조사한다고 쫓아갔지만 손자들을 보는 순간 그만 두었다고 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친구의 남편을 의심했지만, 그렇게 해서 범인으로 밝혀진다면 이미 엄마를 잃은 아이들에게 아빠마저 잃게 할 수 없어서 그냥 자살로 묻어두기로 했다고 한다. 손자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았던 친구 부모님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만약에 범인이 남편이었다면 어쩌면 고인이 된 내 친구의 바람도 아이들을 위해 남편의 단죄를 바라지 않았을까.
"한 번 만나자.”
하면서도 한 번 만나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동창모임이 있는데 그때 만나자며 그 친구는 흥분에 들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 전화가 내게 들려준 마지막 목소리였다. 대전역에서 만나 서울에 같이 가기로 약속해 놓고선 보리수 열매가 농익는 어느 날 훌쩍 가버렸다. 그 친구를 못 만난 지 20여 년이나 되었기에 우린 서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꼭 만나야할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은 당장 만났어야 했나보다. 세월은 마냥 기다려 주는 끈기 있는 녀석이 아니었기에.
들녘에 보리가 익어가고 담장에 보리수가 빨갛게 물들어갈 때면 비명에 간 친구의 환영이 떠올라 나도 몰래 눈물이 나곤 한다. 언젠가 계룡산에서 보리수를 팔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는 가슴이 아렸다. 한 봉지 사서 손에 드니 친구의 웃음처럼 빛깔이 고왔다. 친구를 닮은 보리수를 차마 먹을 수 없어 바라만 보면서 산에 올랐다. 초록빛 바람이 산비탈을 더듬고 지났다. 어린 시절 보리수 잎을 스쳐가던 바람소리였다. 바람에 흐느끼는 보리수의 속살거림이 친구의 환영(幻影)처럼 슬프게 다가왔다. 치맛자락에 보리수를 한 아름 따서 빨간 보리수가 다 터져 입술에 피멍이 들도록 친구와 먹었던 추억의 편린들이 슬프게 투영되었다.
고향에 가던 어느 날, 친구 집에 가 보았다. 빨간 보리수가 익어가던 울타리엔 시멘트 담장이 신열을 토하며 버티고 서 있었다. 친구의 죽음으로 친구 어머니는 정신이상을 일으키다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화병으로 돌아가시니, 폐가였다. 바람소리만 정적을 쌓는 폐가엔 인적도 끊기고 아직도 울타리 한켠에 남아 있는 대나무 숲만 쓸쓸히 빈 집을 지키고 있었다. 옛 친구 집에 오랜만에 찾아온 나를 보고 대나무는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이는 듯했다.
보리수를 부를 때마다 먼저 간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처연하던 내 모습만큼이나 가곡 보리수는 나그네를 가장한 슈베르트가 마지막 생의 끈을 놓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다. 슈베르트는 ‘보리수’에 그토록 깊은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겨울나그네’를 완성한 이듬해 1828년에 영원한 안식을 찾아 떠났다. 31세의 청춘이었다. 한편 뮐러는 슈베르트가 ‘겨울나그네’를 완성한 1827년에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 음악가와 시인은 어떤 교감을 가졌던 것일까. 31세와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할 운명을 공유하고 있었던 사람들. 노래의 행간엔 젊은 나이에 인생의 고뇌를 맛보며 예술혼을 불태웠던 슈베르트의 비애스런 삶이 깊은 우수로 묻어 있다. 두 예술가의 혼이 살아 있는 ‘보리수’는 먼저 떠나간 친구에 대한 아쉬움으로 내게도 특별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보리수 아래서 공기놀이도 하고, 숙제도 하고, 나뭇가지로 달려가 보리수를 따먹으며 즐거웠던 유년의 기억들이 보리수 익는 계절이 오면 나를 참을 수 없는 그리움 곁으로 끌고 가곤 한다.
그 날 울타리를 돌다가 기적처럼 소생하고 있는 보리수 한 그루를 보았다. 수많은 가지를 뻗고 진녹색 잎이 무성한 보리수는 친구의 못다한 삶을 대신하고 있는 듯 나를 보며 정답게 팔랑거렸다. 나는 내 친구가 어떤 사랑의 말이나 희망의 말을 보리수 나뭇가지에 걸어 놓지 않았을까 나뭇가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실연당한 나그네가 방황하며 눈보라치는 겨울밤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 때 '여기 와서 안식을 찾으라.'고 속삭였던 그 바람소리가 내게도 들려오는 듯했다. 주인 잃은 빈 집엔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공허한 바람만 쓸쓸히 불고 있는데, 보리수가 송알송알 익고 있던 울타리에 서서 나는 친구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보았다.
"사랑하는 친구여~!"
"여기 와서 안식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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