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닷가 그 파도소리
2006.06.04 09:06
그 바닷가 그 파도소리
- 떠나가는 배-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그 바닷가 그 항구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상심의 바다였다. ‘Poco'가 부른 ‘Sea Of Heart Break'처럼 항구의 불빛이 상심의 바다로 표류하는 외로운 바다였다. 먼동이 틀 무렵 유독 어둠이 짙고 봄이 올 무렵 유독 땅이 몸부림치는 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자연의 아픔이었을까. 젊은 날의 사랑은 한없이 밀려왔다가 쏜살같이 달아나버리는 파도와도 같은 것, 검푸른 파도를 헤치고 슬픔을 항해하던 ‘떠나가는 배’의 노래가 오늘 문득 그립다.
- 떠나가는 배 -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오!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임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 슬픔 물결 위로 오!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저 수평선을 향하여 떠나가는 배 오! 설운 이별
임 보내는 바닷가를 넋 없이 거닐면 미친 듯이
울부짖는 고동소리 임이여 가고야 마느냐
변훈 작곡, 양중해 작사 '떠나가는 배'는 1952년 제주도로 피난 갔던 작곡자가 전란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작곡가 변훈 선생은 함흥 출생으로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외교에 꿈을 키웠던 정치학도였으면서도 음악을 사랑했던 음악도였다. 6.25 전쟁이 나자 제주도로 피난하여 제주농업고등학교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매일 한 번씩 피난민을 태운 배가 부산에서 제주항에 닿으면 항구는 통곡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하는 눈물의 사연들을 보면서, 또 이별의 아픔을 보면서 작곡한 것이 ‘떠나가는 배’였다.
한편, 이 노래의 작사자는 당시 작곡가와 같은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서 제주에서 태어난 향토시인이었다. 작사자에게 시인 친구가 있었다. 기혼자로서 피난지 제주에 와 살면서 어느 처녀와 뜨겁게 사랑했다고 한다. 처녀의 부모에게 이 사실이 알려져 처녀의 부모가 찾아와 처녀를 강제로 배에 태워 부산으로 떠나보내던 날, 사랑했던 여인을 실은 배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부둣가에 서서 서러워하는 친구 시인의 슬픈 이별 장면을 읊은 詩라고 한다. 이런 민족사의 수난과 남녀의 아픈 사랑이 있었기에 ‘떠나가는 배'의 노래가 탄생될 수 있었다. 이별의 서러움이나 사랑의 상처는 슬픔으로 끝났다. 그러나 무의미한 아픔이 아닌, 창작의 열풍을 열어주는 효과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음악과 글들은 동병상련의 사람들에게 눈물의 카타르시스(catharsis)가 되어 위로도 주니 희생 위에 핀 눈물 꽃이 아닌가.
누군들 한 번쯤 사랑의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詩가 되고 음악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나 음악가는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겪으면서 성숙한 예술의 혼을 토해내는지도 모른다. 편안하게 세상을 탐닉하다 보면 그 시와 그 음악은 한없이 밋밋할 것이다. 더 많은 고뇌와 아픔을 맞으면서 성숙한 필력이 되고 아름다운 선율을 쏟아낼 수 있으리라. 깊은 암반에서 흐르는 샘물의 맛이 더 시원하고 싱그럽지 않던가.
브람스가 스승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사랑하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불태웠던 음악의 혼은 위대한 사랑의 힘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더 집착하면서 그 속에서 토해내는 용광로는 무쇠도 녹일 만큼 뜨거운 것이었다.
한 때 나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을 그 바닷가에서 떠나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동행했던 대학생이 우연히 불렀던 노래는 변훈 작곡 ‘떠나가는 배’였다. 가뜩이나 상심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떠나가는 배'의 노래는 슬픔을 증폭시켜 주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냈던 그 바닷가에 가면 지금도 유독 파도소리가 깊다. 떠나야할 때를 알고 떠난 사람과의 추억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가끔씩 그리워하게 하고, 눈물에 젖게 한다. 그래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눈에선 항상 눈물이 마르지 않는가 보다.
6.25 전란 중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태운 배가 부산 앞바다와 제주를 연결하는 뱃길을 따라 통한의 바다가 되었을 ‘떠나가는 배’의 노래는 지금도 어떤 것들과의 이별 앞에 서게 되면 불러보고 눈물짓게 한다. 목이 터져라 부르면 슬픔이 배설되고. 그 슬픔을 파도가 삼켜준다. 살면서 누구라도 이런 아픈 노래는 부르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게 다가온 ‘떠나가는 배'는,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란 걸 실천하게 한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으로 고뇌하였던 그 바닷가를 다시 찾았을 때 ‘떠나가는 배’의 노랫소리가 바위에 부딪쳐 들려오는 듯했다. 부산으로 강제 송환되는 여인을 태운 배가 멀어질 때까지 부둣가에 서서 몹시 슬퍼했다던 그 시인의 아픈 사랑이 애틋한 노랫말이 되어 포말로 부서졌다. 백사장엔 주인 없는 무수한 발자국들이 남기고 간 추억들이 쌓여가고, 수평선엔 석양이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데, 외로운 등대를 지나는 파도소리는 깊어만 간다.
- 떠나가는 배-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그 바닷가 그 항구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상심의 바다였다. ‘Poco'가 부른 ‘Sea Of Heart Break'처럼 항구의 불빛이 상심의 바다로 표류하는 외로운 바다였다. 먼동이 틀 무렵 유독 어둠이 짙고 봄이 올 무렵 유독 땅이 몸부림치는 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자연의 아픔이었을까. 젊은 날의 사랑은 한없이 밀려왔다가 쏜살같이 달아나버리는 파도와도 같은 것, 검푸른 파도를 헤치고 슬픔을 항해하던 ‘떠나가는 배’의 노래가 오늘 문득 그립다.
- 떠나가는 배 -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오!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임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 슬픔 물결 위로 오!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끓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저 수평선을 향하여 떠나가는 배 오! 설운 이별
임 보내는 바닷가를 넋 없이 거닐면 미친 듯이
울부짖는 고동소리 임이여 가고야 마느냐
변훈 작곡, 양중해 작사 '떠나가는 배'는 1952년 제주도로 피난 갔던 작곡자가 전란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작곡가 변훈 선생은 함흥 출생으로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외교에 꿈을 키웠던 정치학도였으면서도 음악을 사랑했던 음악도였다. 6.25 전쟁이 나자 제주도로 피난하여 제주농업고등학교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매일 한 번씩 피난민을 태운 배가 부산에서 제주항에 닿으면 항구는 통곡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하는 눈물의 사연들을 보면서, 또 이별의 아픔을 보면서 작곡한 것이 ‘떠나가는 배’였다.
한편, 이 노래의 작사자는 당시 작곡가와 같은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서 제주에서 태어난 향토시인이었다. 작사자에게 시인 친구가 있었다. 기혼자로서 피난지 제주에 와 살면서 어느 처녀와 뜨겁게 사랑했다고 한다. 처녀의 부모에게 이 사실이 알려져 처녀의 부모가 찾아와 처녀를 강제로 배에 태워 부산으로 떠나보내던 날, 사랑했던 여인을 실은 배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부둣가에 서서 서러워하는 친구 시인의 슬픈 이별 장면을 읊은 詩라고 한다. 이런 민족사의 수난과 남녀의 아픈 사랑이 있었기에 ‘떠나가는 배'의 노래가 탄생될 수 있었다. 이별의 서러움이나 사랑의 상처는 슬픔으로 끝났다. 그러나 무의미한 아픔이 아닌, 창작의 열풍을 열어주는 효과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음악과 글들은 동병상련의 사람들에게 눈물의 카타르시스(catharsis)가 되어 위로도 주니 희생 위에 핀 눈물 꽃이 아닌가.
누군들 한 번쯤 사랑의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詩가 되고 음악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나 음악가는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겪으면서 성숙한 예술의 혼을 토해내는지도 모른다. 편안하게 세상을 탐닉하다 보면 그 시와 그 음악은 한없이 밋밋할 것이다. 더 많은 고뇌와 아픔을 맞으면서 성숙한 필력이 되고 아름다운 선율을 쏟아낼 수 있으리라. 깊은 암반에서 흐르는 샘물의 맛이 더 시원하고 싱그럽지 않던가.
브람스가 스승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사랑하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불태웠던 음악의 혼은 위대한 사랑의 힘이었다.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더 집착하면서 그 속에서 토해내는 용광로는 무쇠도 녹일 만큼 뜨거운 것이었다.
한 때 나도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을 그 바닷가에서 떠나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동행했던 대학생이 우연히 불렀던 노래는 변훈 작곡 ‘떠나가는 배’였다. 가뜩이나 상심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떠나가는 배'의 노래는 슬픔을 증폭시켜 주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냈던 그 바닷가에 가면 지금도 유독 파도소리가 깊다. 떠나야할 때를 알고 떠난 사람과의 추억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가끔씩 그리워하게 하고, 눈물에 젖게 한다. 그래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눈에선 항상 눈물이 마르지 않는가 보다.
6.25 전란 중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태운 배가 부산 앞바다와 제주를 연결하는 뱃길을 따라 통한의 바다가 되었을 ‘떠나가는 배’의 노래는 지금도 어떤 것들과의 이별 앞에 서게 되면 불러보고 눈물짓게 한다. 목이 터져라 부르면 슬픔이 배설되고. 그 슬픔을 파도가 삼켜준다. 살면서 누구라도 이런 아픈 노래는 부르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게 다가온 ‘떠나가는 배'는,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란 걸 실천하게 한 아름다운 사랑이었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으로 고뇌하였던 그 바닷가를 다시 찾았을 때 ‘떠나가는 배’의 노랫소리가 바위에 부딪쳐 들려오는 듯했다. 부산으로 강제 송환되는 여인을 태운 배가 멀어질 때까지 부둣가에 서서 몹시 슬퍼했다던 그 시인의 아픈 사랑이 애틋한 노랫말이 되어 포말로 부서졌다. 백사장엔 주인 없는 무수한 발자국들이 남기고 간 추억들이 쌓여가고, 수평선엔 석양이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데, 외로운 등대를 지나는 파도소리는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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