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슬픈 꽃잎
2006.06.07 08:53
너무나도 슬픈 꽃잎
-큰아들 친구의 죽음에 부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중) 이민숙
아깝다. 너무 섧다. 이렇게 안타깝고 가슴이 저릴 수가 있을까. 이제 ‘내일’이 없이 여기서 멈춰버린 너의 그 수정같이 맑고 고귀한 젊음이 이토록 애석할 수 있단 말이냐. 단번에 꺾어져서 ‘과거’만을 안아버린 네 슬픈 스물 하나. 채 피지도 못한 터질듯 영롱한 꽃봉오리를 어찌도 그리 네 스스로 내리쳤단 말이더냐. 너무 아리고 슬퍼서 네가 밉다. 화가 나고 야속하다.
더 참지 그랬어? 아니, 아주 독하게 이를 갈며 참고 이겨내지 그랬니? 아니면 속 시원히 화풀이라도 한 번 하든지. 그래도 정 고통을 참을 수 없었으면 차라리 뛰쳐나오기라도 했었어야지. 왜 널 ‘왕따’로 몰아가는 그런 못된 것들을 그냥 다 놔두고 착한 너만 그 힘든 고통의 멍에를 다 뒤집어 써야 했단 말이더냐?
그런 넌 오죽했으면 그랬겠니? 얼마나 많이 고통을 이겨내려 애썼겠니? 네가 떠나기 전 마지막 날, 그 전날까지도 네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서 엄마 생일에 맞춰 7월에 휴가를 가겠다며 계획을 세우시고 그래 놓고서 엄마 가슴에 꼭 대못을 박아야만 했니? 아니야. 너도 어떻게든 이겨내고 참아보려 했을 거야, 네 엄마가 걱정할까봐 내색도 못하고, 너 혼자만 짐을 지려고 했던 거지? 네 엄마에게 넌 워낙 착한 아들이었으니까.
스물 하나, 너와 같은 꽃 같은 나이에 ‘미혼모’란 이름으로 너를 얻고, 너 하나만 바라보며 의지하고, 온갖 유혹 이겨내면서 지켜온 네 엄마의 인생을 생각해 보았니? 그런 네 엄마가 어떻게 너를 보낼 수 있겠니? 어떻게 너 없이 하루를 버틸 수 있겠니? 오늘은 어떻게 보내고, 또 내일은 어떻게 맞는단 말이냐? 오직 네 엄마의 삶의 전부였고 유일한 목적이었던 네가 아니었더냐?
현충일 오전에 걸려온 어두운 전화는 보너스로 주어진 하루를 계획하려는 내 심장을 잠시 멎게 했었다. 우리 큰아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엄마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윤형 엄마, 이럴 수 있는 거야? Y가 갔어. 죽었대.”
“아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군대 갔다면서?”
아이들은 거의 군에 있거나 서울 등 먼 곳의 대학에 재학 중인데다가 기말시험기간이다. 사실 난 Y의 엄마를 한두 번밖에 본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고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다. 학부형총회 때와 졸업식 때 말고는 기억에 없다. 우리 아이와 친한 것도 아닌데 하도 엄마가 젊고, 사는 방식이 애틋해 주위 엄마들에게서 얘기는 듣고 있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가 애를 반듯하게 키웠더란다. 인물이며 풍채도 기품 있고 당당한데다가 성격도 바르고 밝으며 성적도 상위권이었다고 했다. 그 아들 때문에 자기 인생이 꼬였다고 여기지 않고 좀 여유 있는 친정을 등에 대고서 자기도 열심히 일을 하며 한 번도 결혼을 안 하고 잘 키운 모양이었다. 우리들 기억 속의 모자의 모습이 너무 출중한 인물이어서 더 마음이 애달픈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제 멋대로 하찮은 개망초도 팝콘처럼 꽃망울을 터뜨려 저리도 귀하고 예쁘게 피어나건만. 넌 오직 한 번뿐인 네 고귀한 생명을 소중히 지키지 그랬어?”
Y읍의 국군병원 정문에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서는 네 엄마들의 심정은 아마도 같았을 것이다. 저 정문 앞에서 총을 들고 우리 신분을 확인하는 군인들도 똑 같은 우리의 아들들이라고. 영안실이 가까울수록 더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기 좀 못 미쳐 병동 밖에서 나른한 오후 햇볕을 즐기고 있는 군인들이 몇 보였다. 발이나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Y의 엄마가 저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부러울까 생각하면서 목적지에 차를 멈췄다.
그동안 살면서 장례식장을 가봤어도 오늘처럼 속에서부터 우러나는 아린 안타까움은 없었다. 한 번 죽고, 부검하느라 또 죽고․․․․․․.
사진 속 환히 웃고 있는 막 터질 것만 같은 싱싱하고 고결한 저 모습을 이제 어디에서 다시 찾는단 말인가. 저토록 밝았던 네가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도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처절한 고통 속에서 스러져갔다는 것이 더욱 애절하구나. 눈물이 흘러 차마 더 볼 수가 없었다. 미친 듯 오열하는 그 아이의 엄마를 보자 아이들 대신에 우리가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2학년까지 다니던 같은 과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살아 있는 저 목숨들이 얼마나 부러울까, 그래서 더 슬픔이 배가될 거라 생각했었다. 처음 잡아 본 손이고 몸이건만 그녀는 바로 남 같지가 않았다. 바로 ‘나’일 수도 있고 ‘내 일’이기도 한 것이다. 처음이지만 같은 세대를 사는 아들을 두었단 동질감에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우린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또 울었다.
“다리가 부러져도 좋아. 팔이 부러져도 좋아. 머리가 돌아도 좋아. 그냥 내 곁에 있어만 주면 좋아.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와서 ‘엄마 사랑해!’ 아니, 그냥 ‘엄마!’라고만 불러줘도 좋아․․․․․․.”
예쁘고 착하던 Y야!
너를 여기서 보내야 하는 쓰리고 아까운 이 마음, 우리 모두의 마음이 네 엄마만 하겠느냐만 그만 슬퍼할게. 그만 울게. 바르고 착한 네 성품, 수려하고 고결한 네 풍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가 네가 말한 대로 다음 세상,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활짝 꽃피우렴. 아마도 네가 엄마에게 마지막 남긴 말처럼 엄마도 먼 훗날 네 곁에 항상 있게 될 거야. 그땐 정말로 반듯하고 자상한 아빠도 꼭 같이 있어야 돼. 알겠지?
부디 부디 괴롭힘이 없는 아늑한 세상에서 편히 쉬길 빈다. 잘 가거라. 안녕!
(2006.6.6.)
-큰아들 친구의 죽음에 부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중) 이민숙
아깝다. 너무 섧다. 이렇게 안타깝고 가슴이 저릴 수가 있을까. 이제 ‘내일’이 없이 여기서 멈춰버린 너의 그 수정같이 맑고 고귀한 젊음이 이토록 애석할 수 있단 말이냐. 단번에 꺾어져서 ‘과거’만을 안아버린 네 슬픈 스물 하나. 채 피지도 못한 터질듯 영롱한 꽃봉오리를 어찌도 그리 네 스스로 내리쳤단 말이더냐. 너무 아리고 슬퍼서 네가 밉다. 화가 나고 야속하다.
더 참지 그랬어? 아니, 아주 독하게 이를 갈며 참고 이겨내지 그랬니? 아니면 속 시원히 화풀이라도 한 번 하든지. 그래도 정 고통을 참을 수 없었으면 차라리 뛰쳐나오기라도 했었어야지. 왜 널 ‘왕따’로 몰아가는 그런 못된 것들을 그냥 다 놔두고 착한 너만 그 힘든 고통의 멍에를 다 뒤집어 써야 했단 말이더냐?
그런 넌 오죽했으면 그랬겠니? 얼마나 많이 고통을 이겨내려 애썼겠니? 네가 떠나기 전 마지막 날, 그 전날까지도 네 엄마와의 전화 통화에서 엄마 생일에 맞춰 7월에 휴가를 가겠다며 계획을 세우시고 그래 놓고서 엄마 가슴에 꼭 대못을 박아야만 했니? 아니야. 너도 어떻게든 이겨내고 참아보려 했을 거야, 네 엄마가 걱정할까봐 내색도 못하고, 너 혼자만 짐을 지려고 했던 거지? 네 엄마에게 넌 워낙 착한 아들이었으니까.
스물 하나, 너와 같은 꽃 같은 나이에 ‘미혼모’란 이름으로 너를 얻고, 너 하나만 바라보며 의지하고, 온갖 유혹 이겨내면서 지켜온 네 엄마의 인생을 생각해 보았니? 그런 네 엄마가 어떻게 너를 보낼 수 있겠니? 어떻게 너 없이 하루를 버틸 수 있겠니? 오늘은 어떻게 보내고, 또 내일은 어떻게 맞는단 말이냐? 오직 네 엄마의 삶의 전부였고 유일한 목적이었던 네가 아니었더냐?
현충일 오전에 걸려온 어두운 전화는 보너스로 주어진 하루를 계획하려는 내 심장을 잠시 멎게 했었다. 우리 큰아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엄마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윤형 엄마, 이럴 수 있는 거야? Y가 갔어. 죽었대.”
“아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군대 갔다면서?”
아이들은 거의 군에 있거나 서울 등 먼 곳의 대학에 재학 중인데다가 기말시험기간이다. 사실 난 Y의 엄마를 한두 번밖에 본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고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다. 학부형총회 때와 졸업식 때 말고는 기억에 없다. 우리 아이와 친한 것도 아닌데 하도 엄마가 젊고, 사는 방식이 애틋해 주위 엄마들에게서 얘기는 듣고 있던 터였다. 그런 와중에도 엄마가 애를 반듯하게 키웠더란다. 인물이며 풍채도 기품 있고 당당한데다가 성격도 바르고 밝으며 성적도 상위권이었다고 했다. 그 아들 때문에 자기 인생이 꼬였다고 여기지 않고 좀 여유 있는 친정을 등에 대고서 자기도 열심히 일을 하며 한 번도 결혼을 안 하고 잘 키운 모양이었다. 우리들 기억 속의 모자의 모습이 너무 출중한 인물이어서 더 마음이 애달픈지도 모르겠다.
“길가에 제 멋대로 하찮은 개망초도 팝콘처럼 꽃망울을 터뜨려 저리도 귀하고 예쁘게 피어나건만. 넌 오직 한 번뿐인 네 고귀한 생명을 소중히 지키지 그랬어?”
Y읍의 국군병원 정문에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서는 네 엄마들의 심정은 아마도 같았을 것이다. 저 정문 앞에서 총을 들고 우리 신분을 확인하는 군인들도 똑 같은 우리의 아들들이라고. 영안실이 가까울수록 더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기 좀 못 미쳐 병동 밖에서 나른한 오후 햇볕을 즐기고 있는 군인들이 몇 보였다. 발이나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Y의 엄마가 저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부러울까 생각하면서 목적지에 차를 멈췄다.
그동안 살면서 장례식장을 가봤어도 오늘처럼 속에서부터 우러나는 아린 안타까움은 없었다. 한 번 죽고, 부검하느라 또 죽고․․․․․․.
사진 속 환히 웃고 있는 막 터질 것만 같은 싱싱하고 고결한 저 모습을 이제 어디에서 다시 찾는단 말인가. 저토록 밝았던 네가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도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처절한 고통 속에서 스러져갔다는 것이 더욱 애절하구나. 눈물이 흘러 차마 더 볼 수가 없었다. 미친 듯 오열하는 그 아이의 엄마를 보자 아이들 대신에 우리가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2학년까지 다니던 같은 과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살아 있는 저 목숨들이 얼마나 부러울까, 그래서 더 슬픔이 배가될 거라 생각했었다. 처음 잡아 본 손이고 몸이건만 그녀는 바로 남 같지가 않았다. 바로 ‘나’일 수도 있고 ‘내 일’이기도 한 것이다. 처음이지만 같은 세대를 사는 아들을 두었단 동질감에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우린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고, 또 울었다.
“다리가 부러져도 좋아. 팔이 부러져도 좋아. 머리가 돌아도 좋아. 그냥 내 곁에 있어만 주면 좋아. 한 번만, 한 번만이라도 와서 ‘엄마 사랑해!’ 아니, 그냥 ‘엄마!’라고만 불러줘도 좋아․․․․․․.”
예쁘고 착하던 Y야!
너를 여기서 보내야 하는 쓰리고 아까운 이 마음, 우리 모두의 마음이 네 엄마만 하겠느냐만 그만 슬퍼할게. 그만 울게. 바르고 착한 네 성품, 수려하고 고결한 네 풍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가 네가 말한 대로 다음 세상,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활짝 꽃피우렴. 아마도 네가 엄마에게 마지막 남긴 말처럼 엄마도 먼 훗날 네 곁에 항상 있게 될 거야. 그땐 정말로 반듯하고 자상한 아빠도 꼭 같이 있어야 돼. 알겠지?
부디 부디 괴롭힘이 없는 아늑한 세상에서 편히 쉬길 빈다. 잘 가거라. 안녕!
(200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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