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변신
2006.06.14 08:02
초록의 변신
- 제다실습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급) 박귀덕
참 아름다운 자연이다. 초록 빛 가로수에 부서지는 햇살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인다. 어제 내린 비로 봄의 생명력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다가온다. 꽃들의 잔치마당이 된 지리산과 그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이 어우러져 매혹적이다. 자연에 취한 황손어르신께서 흥얼흥얼 노래를 하신다. 가수활동을 하셨으니 기분이 좋을 때면 저절로 흥이 나서 노래를 하게 되는가 보다.
양양농협에서 녹차를 만들었다. 차 잎을 따다가 만들기엔 하루로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차 잎 딸 때 주의사항만 들었다. 손톱으로 자르면 손톱 밑에 있는 세균에 오염되기 쉽고, 칼로 자르면 철분이 차 잎에 스며들어 녹차 맛을 흐려놓는다고 한다. 어제 아줌마들이 따다 놓은 차 잎을 보니 사랑스럽다. 차 잎을 덖기 전에 고르기를 했다. 백합과 오대, 쇤 잎, 줄기 등을 골라냈다. 선별된 차 잎을 300℃의 고온에서 초벌을 덖어 무명천에 부어놓고 차 잎이 둥글게 뭉쳐지도록 비볐다. 처녀 젓 가슴을 어루만지듯이……. 작업대의 하얀 천에도 푸르름이 스며든다. 다른 조에서 덖은 것과 비교하니 우리 조에서 덖은 차 잎의 때깔이 더 곱다. 솥에 붙은 차 잎 하나라도 태우게 되면 차 맛을 잃을까봐 정성을 다해 일한 보상이라도 받은 듯이 흐뭇하다. 실장갑 3개를 끼고 작업을 하는데도 손가락이 뜨거웠다. 그 때 옆에 대기하던 사람이 얼른 교대해 주어 흐르는 땀방울을 닦을 수 있었다. 덖은 녹차 잎을 비비고 털어 널기를 세 번 거듭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네 번 덖을 때부터는 170℃에서 건조시키는 작업이었다. 다섯 번 덖을 때부터 차 잎에서 분이 생겨났다. 민들레 홀씨처럼 허공을 맴돌다가 덖어 내는 이의 눈썹과 머리카락에 하얗게 내려앉는다. 목화솜틀 집에서 일하고 온 사람 같다. 덕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녹차의 빛깔이 진해졌다. 차 잎이 솥에 직접 닿도록 털면서 뒤집었다. 너무 높이 들어 올려 털게 되면 차 잎이 식고, 향이 흩어져 좋은 차를 얻지 못한다고 하니 조심스럽다. 차 잎이 부서지지 않도록 실장갑을 벗고 어린아이를 어루만지듯 살살 뒤집었다. 좋은 녹차를 얻으려고 마음을 모아 정성으로 만들었다. 땀도 많이 흘렸다. 차 잎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말로만 듣던 구중구포의 우전을 내 손으로 만들었다. 가슴이 뿌듯하다. 내가 낳은 자식을 보는 것처럼 사랑스럽다. 수제차 우전을 볼 수 있는 안목도 생겼다. 힘든 작업을 체험하고서야 녹차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
곡우 전에 돋아난 연두 빛 어린 새싹이 모두 우전이 되지는 않는다. 300℃의 가마솥에서 뜨거운 고통을 속으로 삼키고 초록 빛 옷을 입더니, 아홉 번이나 몸을 태워 진초록의 솜 털 같은 은빛 우전으로 태어났다. 무쇠가 용광로의 뜨거움을 견디고 농기구로 새롭게 태어나듯, 녹차 또한 뜨거운 가마솥에서 수없이 자기 변신을 거듭한 뒤 좋은 맛과 향기를 지닌 사랑스러운 녹차로 태어났다. 사람들도 평범하게 사는 사람보다 어려운 일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더 생각이 깊고 뜻있는 삶을 살아간다. 어려움을 극복할 때 지혜가 생기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나보다. 존경 받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큰 시련이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았다. 시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진솔한 삶의 의미를 느끼며 향기롭게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오늘 만든 차는 바로 먹지 않고 1주일쯤 숙성시킨 뒤에 우려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식물도 나무에서 뜯겨질 때 스트레스를 받고 뜨거운 가마솥에서 열을 받았으므로 숙성기간을 둔다. 차 잎이 받은 스트레스를 숙성시키지 않고 바로 우려 마시면 그 영향이 사람에게 전해질까 두렵다. 녹차를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이런 이치를 따져 만들어서 마시기 때문인가 보다. 찻잔 속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는 길에 명원 녹차 밭에 들렀다. 그 집의 며느리는 관광객으로 왔다가 차 밭의 매력에 흠뻑 빠져 시집온 새댁이다. 차 잎이 반그늘에서 자라야 좋은 차를 만들 수 있어 7천 평의 녹차 밭에 단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지리산의 맑은 공기, 들꽃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차방, 차나무 정원에서 나눔의 정신이 배어있는 좋은 사람들과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차를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우려 주는 사람의 마음이 찻잔 속에 녹아 그윽한 향을 낸다. 맑은 물에 욕심을 씻어내니 연자 빛깔의 고운 차를 우릴 수 있나 보다. 초록의 변신(녹차)을 음미하며 섬진강 줄기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백합 : 겨울에 차 잎을 싸고 있던 막
*오대 : 차 잎을 받혀주던 잎
- 제다실습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급) 박귀덕
참 아름다운 자연이다. 초록 빛 가로수에 부서지는 햇살이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인다. 어제 내린 비로 봄의 생명력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다가온다. 꽃들의 잔치마당이 된 지리산과 그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이 어우러져 매혹적이다. 자연에 취한 황손어르신께서 흥얼흥얼 노래를 하신다. 가수활동을 하셨으니 기분이 좋을 때면 저절로 흥이 나서 노래를 하게 되는가 보다.
양양농협에서 녹차를 만들었다. 차 잎을 따다가 만들기엔 하루로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차 잎 딸 때 주의사항만 들었다. 손톱으로 자르면 손톱 밑에 있는 세균에 오염되기 쉽고, 칼로 자르면 철분이 차 잎에 스며들어 녹차 맛을 흐려놓는다고 한다. 어제 아줌마들이 따다 놓은 차 잎을 보니 사랑스럽다. 차 잎을 덖기 전에 고르기를 했다. 백합과 오대, 쇤 잎, 줄기 등을 골라냈다. 선별된 차 잎을 300℃의 고온에서 초벌을 덖어 무명천에 부어놓고 차 잎이 둥글게 뭉쳐지도록 비볐다. 처녀 젓 가슴을 어루만지듯이……. 작업대의 하얀 천에도 푸르름이 스며든다. 다른 조에서 덖은 것과 비교하니 우리 조에서 덖은 차 잎의 때깔이 더 곱다. 솥에 붙은 차 잎 하나라도 태우게 되면 차 맛을 잃을까봐 정성을 다해 일한 보상이라도 받은 듯이 흐뭇하다. 실장갑 3개를 끼고 작업을 하는데도 손가락이 뜨거웠다. 그 때 옆에 대기하던 사람이 얼른 교대해 주어 흐르는 땀방울을 닦을 수 있었다. 덖은 녹차 잎을 비비고 털어 널기를 세 번 거듭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네 번 덖을 때부터는 170℃에서 건조시키는 작업이었다. 다섯 번 덖을 때부터 차 잎에서 분이 생겨났다. 민들레 홀씨처럼 허공을 맴돌다가 덖어 내는 이의 눈썹과 머리카락에 하얗게 내려앉는다. 목화솜틀 집에서 일하고 온 사람 같다. 덕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녹차의 빛깔이 진해졌다. 차 잎이 솥에 직접 닿도록 털면서 뒤집었다. 너무 높이 들어 올려 털게 되면 차 잎이 식고, 향이 흩어져 좋은 차를 얻지 못한다고 하니 조심스럽다. 차 잎이 부서지지 않도록 실장갑을 벗고 어린아이를 어루만지듯 살살 뒤집었다. 좋은 녹차를 얻으려고 마음을 모아 정성으로 만들었다. 땀도 많이 흘렸다. 차 잎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말로만 듣던 구중구포의 우전을 내 손으로 만들었다. 가슴이 뿌듯하다. 내가 낳은 자식을 보는 것처럼 사랑스럽다. 수제차 우전을 볼 수 있는 안목도 생겼다. 힘든 작업을 체험하고서야 녹차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
곡우 전에 돋아난 연두 빛 어린 새싹이 모두 우전이 되지는 않는다. 300℃의 가마솥에서 뜨거운 고통을 속으로 삼키고 초록 빛 옷을 입더니, 아홉 번이나 몸을 태워 진초록의 솜 털 같은 은빛 우전으로 태어났다. 무쇠가 용광로의 뜨거움을 견디고 농기구로 새롭게 태어나듯, 녹차 또한 뜨거운 가마솥에서 수없이 자기 변신을 거듭한 뒤 좋은 맛과 향기를 지닌 사랑스러운 녹차로 태어났다. 사람들도 평범하게 사는 사람보다 어려운 일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더 생각이 깊고 뜻있는 삶을 살아간다. 어려움을 극복할 때 지혜가 생기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나보다. 존경 받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큰 시련이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았다. 시련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진솔한 삶의 의미를 느끼며 향기롭게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오늘 만든 차는 바로 먹지 않고 1주일쯤 숙성시킨 뒤에 우려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식물도 나무에서 뜯겨질 때 스트레스를 받고 뜨거운 가마솥에서 열을 받았으므로 숙성기간을 둔다. 차 잎이 받은 스트레스를 숙성시키지 않고 바로 우려 마시면 그 영향이 사람에게 전해질까 두렵다. 녹차를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이 이런 이치를 따져 만들어서 마시기 때문인가 보다. 찻잔 속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는 길에 명원 녹차 밭에 들렀다. 그 집의 며느리는 관광객으로 왔다가 차 밭의 매력에 흠뻑 빠져 시집온 새댁이다. 차 잎이 반그늘에서 자라야 좋은 차를 만들 수 있어 7천 평의 녹차 밭에 단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지리산의 맑은 공기, 들꽃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차방, 차나무 정원에서 나눔의 정신이 배어있는 좋은 사람들과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차를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우려 주는 사람의 마음이 찻잔 속에 녹아 그윽한 향을 낸다. 맑은 물에 욕심을 씻어내니 연자 빛깔의 고운 차를 우릴 수 있나 보다. 초록의 변신(녹차)을 음미하며 섬진강 줄기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백합 : 겨울에 차 잎을 싸고 있던 막
*오대 : 차 잎을 받혀주던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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