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소리

2006.06.16 21:38

권영숙 조회 수:59 추천:13

풍금소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권영숙



꽃비가 내립니다. 봄은 어느 순간에 화려한 차림으로 다가왔다가 푸른색 여운을 남기며 우리 곁을 떠납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벚꽃의 하얀 꽃잎이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 살포시 내려앉았습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이제 막 돋기 시작한 여린 싹이 아기 병아리 솜털처럼 보드랍게 느껴집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풍금소리에 하늘과 맞닿은 느티나무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났습니다.

내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은 충청남도 예산이었습니다. 부모님 곁을 떠나 그렇게 먼 곳으로 가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간단한 생활필수품을 챙겨들고 함께 가셨던 친정어머님이 집에 돌아오실 때까지 울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들었습니다. 예산은 그렇게 먼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으로 첫 발령을 받고 보니 집에 자주 올 수도 없었습니다. 주말이면 다 떠난 텅 빈 운동장에서 고향생각에 외로움과 그리움을 한 움큼씩 키웠습니다.

면단위 학교, 그 중에서도 작은 학교이다 보니 아이들도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그곳 아이들은 학교에 일찍 오고, 어둑어둑해져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새벽 별을 보며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시는 부모님들을 따라서 나오다 보니 학교에 일찍 올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각 교실마다 풍금이 한 대씩 있었습니다. 발로 구르면 삐그덕 소리를 내는 풍금이었지만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과 신나게 한목소리로 어울릴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였습니다. 풍금 주변에 모여든 아이들과 ‘고향의 봄’ ‘섬 집 아기’ 등을 부르다 보면 그리운 가족과 보고 싶은 친구들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운동장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미루나무의 꼭대기에서 귀가를 재촉하는 까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야 우리들의 노래는 끝이 났습니다. 그래야 아이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갑니다. 풍금 소리는 나의 첫 발령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의 소리입니다.

요즈음은 풍금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CD나 인터넷 음악 사이트에만 가면 쩌렁쩌렁 울려대는 음악이 술술 나오니 힘들이며 풍금을 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과 동요라도 신나게 부르고 싶어 붙잡으려면 학원에 가야할 시간이 늦었다고 헐레벌떡 뛰쳐나갑니다. 풍금은 교실 한쪽으로 밀려나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쉽습니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은은한 풍금소리가 20여 년이 지난 추억을 몰고 왔습니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풍금 소리를 들으면 어떤 추억을 떠올릴까요? 떠올릴 추억 거리가 있기나 할까요?                        (200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