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친구에게 이 노래를
2006.06.19 21:30
그리운 친구에게 이 노래를
-스와니 강-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선교사 집안으로 시집간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미국에서 신앙의 터전을 잡고 일가를 이룬 시댁을 따라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갑자기 떠난 고향에 대한 지독한 향수에 시달리면서 한국에 두고 간 부모형제와 친구가 너무도 그리워서 밤마다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불렀다는 노래, ‘스와니 강’…….
머나먼 그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날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정처없이 헤매는 이내 신세
언제나 나의 옛 고향을 찾아가볼까
이 세상에 정처없는 나그네의 길
아 그리워라 나 살던 곳 멀고먼 옛 고향
서울 명문대 출신이었던 친구남편은 미국의 유명한 컴퓨터 회사에 들어갔고, 내 친구는 미국에서 공무원 -그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서 만점을 맞았다고 했다.- 생활을 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 광활한 이국땅에서 어느 정도 명예와 부는 충족되었지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고향에 대한 향수였다고 했다. 너무도 외롭고 그리워서 슬픔을 달래려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우연히 신문에 투고한 글이 인정되어 한 신문사에 고정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한 때 신문기자이셨던 아버지의 필력을 닮아서인지 내 친구는 학창시절부터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잘했던 모범생이었다.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진다는 미국사회에 만족하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의과대학에 보내는 등 자녀교육도 성공적이었다.
불혹을 넘어 인생을 깨닫는 시기가 되자 친구부부는 자기들만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어렵게 사는 이웃에게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명예와 부를 접고 신앙에 귀의하여 상처받은 영혼을 감싸며 보듬어주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살아갈 것을 결심했다. 그렇게 하기까지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친구남편은 처음부터 성직자의 꿈을 가졌지만 내 친구는 남편이 목사가 되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친정아버지를 통해 성직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 고난의 길인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친정아버지가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목사의 길로 나서면서 사회적인 명성과 부를 잃은 뒤의 초라함과 가난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는 남편을 사랑하였기에 남편의 이상을 존중했다. 결국, 훌륭한 내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모든 욕망을 버렸다.
친구남편은 뉴욕에서 제법 큰 장로교회 목사님이 되었고, 내 친구는 사모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한국 유학생들에게 생활터전을 마련해 주고 영어가 부족한 한국인들을 위한 통역과 죽음을 앞둔 불치병환자들을 찾아가 위로와 평안을 주는 호스피스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또 틈틈이 신앙수필과 신문에 칼럼을 쓰며 하루를 25시간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멋진 친구다.
친구 남편은 사랑이 많고 인자한 목사님이다. 나를 ‘천사’라고 부른다. 나를 보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손길이 느껴진다며 높게 평가해 주었다. 그것은 자기 아내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 주고 싶어 하는 사랑이 가득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2002년, 공보관실 법원회보 담당자이셨던 정사무관님의 원고청탁 메일을 받고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원고청탁을 해 준 것이 너무도 감읍하여 그 친구와 우정을 쌓게 된 이야기를 써서 보냈는데 그 글이 12월 법원회보에 실렸고, 처음으로 써본 글이 운 좋게도 그해 법원행정처장 상(버금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그때의 모든 영광을 친구에게 돌렸다. 상패만 내가 간직하고 부상으로 받은 상금 30만 원과 정의의 여신상이 그려진 시계와 법원회보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 남편은 회보에 쓴 글을 읽고,
“여보, 당신의 우정은 너무도 아름답소! 정말 부럽소!”
라며 실제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친구남편은 법원회보에 실린 글을 복사해서 주일 예배 때 성도들에게 한 부씩 나눠주며 아름다운 우정을 그날의 설교제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한인교회에서 우리의 우정 얘기가 소개되었고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발행한 ‘법원회보’도 소개되어 감동적인 주일이었다는 메일을 받고 나도 눈물을 글썽였었다.
‘스와니 강’은 미국 남부 출신의 한 흑인이 고향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니다가 스와니 강가의 고향 사람들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다. 포스터가 25세 때 작곡한 것으로 영국에서 유행하여 세계로 퍼졌다. 이 노래는 크리미아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불렀고, 남북 전쟁 때는 북군, 남군 모두가 애창하였다고 한다. 스와니 강은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작은 강으로 조지아 주에서 흘러와 플로리다를 거쳐 멕시코 만으로 흐르는 강이다. 이 노래의 후광을 등에 업은 플로리다 주가 스와니 강을 주가(州歌)로 지정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로렌스빌에서 출생한 포스터는 짧은 생애 동안 180여 곡을 작곡하여 미국 민요의 아버지, 가곡의 왕으로 불린다. 포스터의 부인은 포스터 곁을 여러 번 떠났지만 착한 포스터는 계속 그녀를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바쳤는데 그 중 하나가 '금발의 제니'다. 포스터는 부유층을 바라보기보다 천대받는 흑인들의 노래에 관심이 많아 그들의 가락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가곡을 작곡하였다. 그의 노래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여 애창함으로써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 흑인노예해방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작곡한 스와니 강, 켄터키 옛집, 금발의 제니, 올드 블랙 조, 오! 수제너 등 주옥같은 그의 노래는 음악교과서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여 마치 우리의 노래인 듯 착각할 정도다.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고 가정생활의 파탄으로 빈곤과 외로움 속에서 홀로 보내던 포스터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뉴욕의 어느 허름한 하숙집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Foster가 숨을 거둘 때 지니고 있던 지갑 속엔 38센트짜리 녹슨 동전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내 친구는 나를 몹시 그리워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친구남편은 노후를 베스트 프렌드와 보내야 되지 않느냐며 오래전부터 내게 이민을 종용했다. 미국으로 오기만 하면 생활터전을 마련해 주고 어려움 없이 살도록 책임져주겠다고 하는데도 나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부담 갖지 말고 여행 삼아 미국에 와서 미국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고 결정하라며 방학 때 가족과 한 번 다녀가기를 간청했지만 그마저도 직장에 오랫동안 휴가 내기가 미안해서 실행하지 못했다.
내 친구가 나를 항상 그리워하며 불렀다는 ‘스와니 강’을 오늘 나도 사랑하는 친구가 목하 그리워 불러본다. 내가 부르는 이 노래는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내 친구의 뜰로 날아가 내 친구의 가슴에 온통 음표를 그릴 것이다. 자유의 여신은 오른손에 횃불을, 왼손에 '1776년 7월 4일'의 날짜가 적힌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지만 내 친구의 가슴엔 내 노랫소리만이 가득 물결칠 것이다.
우린 서로 그리우면 푸른 하늘을 보자고 했다. 너무도 많이 바라본 그리움에 푸른 하늘이 닳아버렸다. 그리운 친구에게 달려가고 싶다. 콜럼버스가 감격하며 발견한 신대륙으로 날아가고 싶다. 유난히 그리움이 많아서 눈물도 많았던 우리, 플로리다 주 스와니 강가를 거닐며 내 친구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를 그날은 언제일까.
"머나먼 그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
노래는 자꾸만 흐르고 있는데…….
-스와니 강-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선교사 집안으로 시집간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미국에서 신앙의 터전을 잡고 일가를 이룬 시댁을 따라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갑자기 떠난 고향에 대한 지독한 향수에 시달리면서 한국에 두고 간 부모형제와 친구가 너무도 그리워서 밤마다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불렀다는 노래, ‘스와니 강’…….
머나먼 그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날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정처없이 헤매는 이내 신세
언제나 나의 옛 고향을 찾아가볼까
이 세상에 정처없는 나그네의 길
아 그리워라 나 살던 곳 멀고먼 옛 고향
서울 명문대 출신이었던 친구남편은 미국의 유명한 컴퓨터 회사에 들어갔고, 내 친구는 미국에서 공무원 -그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서 만점을 맞았다고 했다.- 생활을 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 광활한 이국땅에서 어느 정도 명예와 부는 충족되었지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고향에 대한 향수였다고 했다. 너무도 외롭고 그리워서 슬픔을 달래려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우연히 신문에 투고한 글이 인정되어 한 신문사에 고정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한 때 신문기자이셨던 아버지의 필력을 닮아서인지 내 친구는 학창시절부터 글도 잘 쓰고 공부도 잘했던 모범생이었다.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진다는 미국사회에 만족하며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며 아이들을 의과대학에 보내는 등 자녀교육도 성공적이었다.
불혹을 넘어 인생을 깨닫는 시기가 되자 친구부부는 자기들만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어렵게 사는 이웃에게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명예와 부를 접고 신앙에 귀의하여 상처받은 영혼을 감싸며 보듬어주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살아갈 것을 결심했다. 그렇게 하기까지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친구남편은 처음부터 성직자의 꿈을 가졌지만 내 친구는 남편이 목사가 되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친정아버지를 통해 성직자의 길이 얼마나 힘든 고난의 길인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친정아버지가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목사의 길로 나서면서 사회적인 명성과 부를 잃은 뒤의 초라함과 가난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는 남편을 사랑하였기에 남편의 이상을 존중했다. 결국, 훌륭한 내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모든 욕망을 버렸다.
친구남편은 뉴욕에서 제법 큰 장로교회 목사님이 되었고, 내 친구는 사모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한국 유학생들에게 생활터전을 마련해 주고 영어가 부족한 한국인들을 위한 통역과 죽음을 앞둔 불치병환자들을 찾아가 위로와 평안을 주는 호스피스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또 틈틈이 신앙수필과 신문에 칼럼을 쓰며 하루를 25시간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멋진 친구다.
친구 남편은 사랑이 많고 인자한 목사님이다. 나를 ‘천사’라고 부른다. 나를 보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손길이 느껴진다며 높게 평가해 주었다. 그것은 자기 아내와 가장 친한 친구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 주고 싶어 하는 사랑이 가득한 남편의 모습이었다.
2002년, 공보관실 법원회보 담당자이셨던 정사무관님의 원고청탁 메일을 받고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원고청탁을 해 준 것이 너무도 감읍하여 그 친구와 우정을 쌓게 된 이야기를 써서 보냈는데 그 글이 12월 법원회보에 실렸고, 처음으로 써본 글이 운 좋게도 그해 법원행정처장 상(버금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그때의 모든 영광을 친구에게 돌렸다. 상패만 내가 간직하고 부상으로 받은 상금 30만 원과 정의의 여신상이 그려진 시계와 법원회보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 남편은 회보에 쓴 글을 읽고,
“여보, 당신의 우정은 너무도 아름답소! 정말 부럽소!”
라며 실제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친구남편은 법원회보에 실린 글을 복사해서 주일 예배 때 성도들에게 한 부씩 나눠주며 아름다운 우정을 그날의 설교제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한인교회에서 우리의 우정 얘기가 소개되었고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발행한 ‘법원회보’도 소개되어 감동적인 주일이었다는 메일을 받고 나도 눈물을 글썽였었다.
‘스와니 강’은 미국 남부 출신의 한 흑인이 고향을 떠나 방랑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니다가 스와니 강가의 고향 사람들이 그리워 부르는 노래다. 포스터가 25세 때 작곡한 것으로 영국에서 유행하여 세계로 퍼졌다. 이 노래는 크리미아 전쟁에 참가한 병사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불렀고, 남북 전쟁 때는 북군, 남군 모두가 애창하였다고 한다. 스와니 강은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작은 강으로 조지아 주에서 흘러와 플로리다를 거쳐 멕시코 만으로 흐르는 강이다. 이 노래의 후광을 등에 업은 플로리다 주가 스와니 강을 주가(州歌)로 지정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로렌스빌에서 출생한 포스터는 짧은 생애 동안 180여 곡을 작곡하여 미국 민요의 아버지, 가곡의 왕으로 불린다. 포스터의 부인은 포스터 곁을 여러 번 떠났지만 착한 포스터는 계속 그녀를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바쳤는데 그 중 하나가 '금발의 제니'다. 포스터는 부유층을 바라보기보다 천대받는 흑인들의 노래에 관심이 많아 그들의 가락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가곡을 작곡하였다. 그의 노래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여 애창함으로써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 흑인노예해방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작곡한 스와니 강, 켄터키 옛집, 금발의 제니, 올드 블랙 조, 오! 수제너 등 주옥같은 그의 노래는 음악교과서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여 마치 우리의 노래인 듯 착각할 정도다.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고 가정생활의 파탄으로 빈곤과 외로움 속에서 홀로 보내던 포스터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뉴욕의 어느 허름한 하숙집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Foster가 숨을 거둘 때 지니고 있던 지갑 속엔 38센트짜리 녹슨 동전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내 친구는 나를 몹시 그리워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친구남편은 노후를 베스트 프렌드와 보내야 되지 않느냐며 오래전부터 내게 이민을 종용했다. 미국으로 오기만 하면 생활터전을 마련해 주고 어려움 없이 살도록 책임져주겠다고 하는데도 나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부담 갖지 말고 여행 삼아 미국에 와서 미국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고 결정하라며 방학 때 가족과 한 번 다녀가기를 간청했지만 그마저도 직장에 오랫동안 휴가 내기가 미안해서 실행하지 못했다.
내 친구가 나를 항상 그리워하며 불렀다는 ‘스와니 강’을 오늘 나도 사랑하는 친구가 목하 그리워 불러본다. 내가 부르는 이 노래는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내 친구의 뜰로 날아가 내 친구의 가슴에 온통 음표를 그릴 것이다. 자유의 여신은 오른손에 횃불을, 왼손에 '1776년 7월 4일'의 날짜가 적힌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지만 내 친구의 가슴엔 내 노랫소리만이 가득 물결칠 것이다.
우린 서로 그리우면 푸른 하늘을 보자고 했다. 너무도 많이 바라본 그리움에 푸른 하늘이 닳아버렸다. 그리운 친구에게 달려가고 싶다. 콜럼버스가 감격하며 발견한 신대륙으로 날아가고 싶다. 유난히 그리움이 많아서 눈물도 많았던 우리, 플로리다 주 스와니 강가를 거닐며 내 친구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를 그날은 언제일까.
"머나먼 그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
노래는 자꾸만 흐르고 있는데…….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314 | 서민영웅들을 배출한 내 고향 장수 | 고강영 | 2006.07.02 | 102 |
| 313 | 빗속의 연가 | 이은재 | 2006.06.29 | 114 |
| 312 | 대나무의 마디처럼 | 정현창 | 2006.06.28 | 80 |
| 311 | 태극전사들에게 이 노래를 | 이은재 | 2006.06.24 | 116 |
| 310 | 내가 겪은 6. 25(4) | 이기택 | 2006.06.20 | 116 |
| » | 그리운 친구에게 이 노래를 | 이은재 | 2006.06.19 | 128 |
| 308 | 다림질 | 권영숙 | 2006.06.18 | 97 |
| 307 | 풍금소리 | 권영숙 | 2006.06.16 | 59 |
| 306 | 감옥에서 온 편지 | 고강영 | 2006.06.14 | 62 |
| 305 | 초록의 변신 | 박귀덕 | 2006.06.14 | 65 |
| 304 | 너무나도 슬픈 꽃잎 | 이민숙 | 2006.06.07 | 76 |
| 303 | 내가 격은 6.25(3) | 이기택 | 2006.06.05 | 71 |
| 302 | 해바라기를 닮은 그녀 | 염미경 | 2006.06.05 | 82 |
| 301 | 그 바닷가 그 파도소리 | 이은재 | 2006.06.04 | 79 |
| 300 | 나는 행복합니다 | 김학 | 2006.06.03 | 130 |
| 299 | 황진이, 그녀는 진정 자유인이었다 | 이기택 | 2006.06.03 | 80 |
| 298 | 청 보리, 그 추억의 여섯 마당 | 김행모 | 2006.06.03 | 84 |
| 297 | 보리수 익는 계절에 | 이은재 | 2006.05.30 | 100 |
| 296 | 수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 정현창 | 2006.05.25 | 70 |
| 295 | 인터넷에서 흐르는 사랑의 온기 | 조은숙 | 2006.05.25 | 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