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들에게 이 노래를

2006.06.24 20:10

이은재 조회 수:116 추천:23

태극전사들에게 이 노래를
                                                     -Time To Say Goodbye-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이제 작별을 고할 시간이 다가왔어요."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 전주곡 뒤에 오페라 여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의 감미로운 노래가 흐르고 이어서 맹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의 노래가 뒤따른다. 이 노래는 독일 권투선수인 세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헨리 마스케의 은퇴 기념식에 헌정된 노래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헨리 마스케로부터 자신의 은퇴 경기의 오프닝 노래를 의뢰 받고 고민하던 중 이태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Con Te Partiro를 부르는 보첼리의 노래를 듣고 그를 찾아가 함께 노래 부를 걸 부탁하였다. 그런 사연 속에 Con Te Partiro를 영어로 바꾼 노래 Time To Say Goodbye는 헨리 마스케의 은퇴기념식 오프닝 노래로 불리게 되었다. 헨리 마스케는 이날의 은퇴 경기에서 멋진 펀치로 열광하는 펜들에게 승리를 보여줬더라면 아쉬움이 없었을 것을, 그만 판정패로 패하고 말았다. 침울한 모습으로 링에서 내려오는 그를 위해 관중들이 기립하여 Time To Say Goodbye를 불러주어 마스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맹인가수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는 피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를 꿈꾸던 법조인이었다. 그런 그가 성악으로의 도전은 새로운 모험이었다. 그는 수식어처럼 따라 다니는 맹인가수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음악을 통해 역전 드라마적인 인생을 펼쳤다. 악보를 볼 수 없어 피아노 연주를 통해 음률을 익혀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가 음악계에 이룩한 업적은 기적이었다.

1996년에 발표된 Romanza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사라 브라이트만과 함께 부른 Time To Say Good Bye는 세계인들에게 너무도 사랑받는 노래가 되었다. 산레모 가요제 1위, 독일 차트에서 14주간 1위, 프랑스에서 6주간, 벨기에에서는 12주 동안 1위를 지키면서 400만장 이상의 음반이 팔려나가는 등 기록적인 판매량을 세웠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빛을 잃은 시각장애자가 아니었다. 세계의 무대에 우뚝 선 당당한 성악가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가 있었지만 "패배"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친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그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 법학도에서 훌륭한 오페라 가수로 이적하며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대학교 시절부터 피아노 바에서 아리아를 부르며 음악적 감성을 키워왔던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패배할 줄 몰랐던 의지의 청년이었다.

오페라와 팝의 세계를 넘나들며 노래하는 이들에게 붙여진 ‘팝페라(popera)’라는 호칭엔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가 있었다. 이들의 음색은 천상의 목소리처럼 매혹적이다. Time To Say Goodbye를 부르면서 사라 브라이트만이 보첼리에게 가볍게 건네는 스킨십은 정겹기만 하다. 시각장애자에게 보내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흐뭇하다. 사라 브라이트만은 천상의 목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몸짓으로 무대를 감미롭게 연출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발레로 잘 다듬어진 그녀의 모션에 관중들은 더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마스케가 프로로 전향하여 통산전적 31전 30승 1패라는 화려한 경력 속에 단 한 번의 1패는 은퇴식 날 가졌던 경기에서였다고 한다. 눈물을 글썽이는 마스케를 위해 관중들은 뜨거운 격려의 박수와 함께 Time to say goodbye를 불러주어 마스케는 눈물 속에 은퇴를 발표하였다. 그런 사연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Time To Say Goodbye는 내게도 많은 감동을 주었다. 한 운동선수의 은퇴 기념 오프닝 곡으로 선정되었던 이유로도 특별한 감동이었지만, 화려한 경력을 뒤로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고 슬퍼하였을 선수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의 뜨거운 애정이 있어서 더욱 진한 감동을 주었다. 선수와 관중이 하나가 되어 그에게 격려의 노래를 불러주었을 그 날의 은퇴식장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2006 월드컵 축구 열기가 지구촌 곳곳을 휩쓸고 있는 지금, 승자와 패자의 뒷모습은 너무도 극명했다. G조에 편성되었다가 16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토고 선수들의 슬픈 모습을 보며, 실망하는 관중들의 눈빛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한국은 2002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남겼다. 그때 우리가 열광하는 동안 우리에게 쓴잔을 마시고 승자의 뒤편에서 흘렸을 패자의 그 눈물을 이제 우리가 흘릴 차례가 된 것이다. 공평한 세상은 한 사람에게만 계속적으로 승리나 패배를 주지 않는다. 그러기에 세상일에 크게 실망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다.

승자에게 갈채를 보냈다면 패자에겐 더 뜨거운 기립 박수를 보내야 한다. 헨리 마스케가 은퇴 경기에서 패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링에서 내려올 때 관중들이 기립하여 Time To Say Goodbye를 불러준 것처럼 이제는 태극전사들에게 기립 박수를 보내며 노래를 불러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