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성당 광장에서 외 1편

2006.07.03 08:01

이은재 조회 수:197 추천:28

        (1) 노트르담 성당 광장에서/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영국 워터루 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3시간 20분 만에 프랑스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사락사락 어둠이 내리는 파리의 플랫폼은 활력이 넘쳤다. 파리에 대한 기대를 안고 여독에 지친 우리를 프랑스 현지 가이드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홀리데이 인 호텔’에 여장을 풀고 프랑스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호텔 창문 밖으로 초승달이 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보는 초승달은 더 아름다웠다.

파리 시내를 조망하며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다. 파리 시내는 잘 다듬어진 마로니에 가로수가 8월의 태양 아래 갈색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바캉스를 떠난 도시는 고요하도록 한산한데 도로 갓길 하수도 위로 물이 퐁퐁 솟아올랐다. 도로를 물청소하기 위해 하루에 2번씩 하수도 위로 물이 나온다는 가이드의 얘기를 들으니 얼마나 놀랍던지. 노상 카페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깨끗한 환경 속에 가능했던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위해 서둘러 읽었던 소설 ‘다빈치코드’에서 샹드리 수녀가 살해된 셍쉐리 성당을 지날 때는 알비노 환자인 한 수도사가 성배를 찾기 위해 긴 여정 끝에 숨어 들어간 얘기가 떠올라 잠시 소설 속에 빠져들기도 했다.

유럽 최고 고딕 양식의 결정체로 칭송받는 노트르담 성당은 세느강 시테 섬 자락에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었다. 1163년에 기공해 182년 만에 완성되었고, 나폴레옹을 비롯한 프랑스 국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프랑스 역사가 담긴 성당으로 '노트르담’은 우리들의 귀부인이란 뜻으로 성모마리아에 대한 존칭이다.

정면에는 두개의 종탑과 3개의 문이 있다. 정면에서 왼쪽으로 '성모 마리아의 문’이 있고, 중앙에는 예수님과 12제자의 모습을 조각한 ‘최후의 심판의 문’이, 우측에는 ‘성녀 안나의 문’이 있다. 문 위에는 이스라엘의 왕들을 상징하는 28개 입상의 부조가 정렬되어 있고, 중앙 상단엔 장미창 전면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최후의 심판문에는 심판을 하는 예수님과 천사장 성 미카엘에 의해 한 사람씩 저울에 죄의 무게를 달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는 모습을 담고 있다. 지옥으로 가게된 한 사람이 저울이 잘못된 거 아니냐며 다시 달아줄 것을 항의하는 모습을 보며 내 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반성되기도 했다.

노트르담 성당은 고딕양식이면서도 번잡하지 않고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균형을 이룬 2개의 첨탑이 일품이고, 육면체 첨탑들의 비례가 독창적이며 아름다웠다. 노트르담 성당이 다른 건물과 다른 특징은 앞면보다는 뒷면이나 측면이 더욱 섬세하고 아름답게 건축된 점이다. 성당 내부는 3개의 장미창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걸작이었다. 장미창은 햇빛의 각도와 강약의 변화에 따라 창의 모습이 시시각각 변하며 신비로운 빛깔을 연출한다. 햇살에 아롱지는 장미창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노트르담 성당 앞 광장의 마로니에 가로수는 갈색 빛으로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자유분방하게 광장을 날던 비둘기들은 유색인종 구별 없이 관광객들의 지친 어깨 위로 다가와 재롱을 떠는데 그 틈새에서 오카리나를 연주하는 악사가 있었다. 그 악사는 나폴리 민요 산타루치아, 오 솔레미오 등 주옥같은 이탈리아 가곡을 연주하더니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에 나오는 개선행진곡을 연주하면서 '아이다! 아이다!‘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베르디!' 하며 작곡자를 말하였더니 Good! Good! 하며 내 팔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게 아닌가. 포즈를 취하더니 사진 한 장 찍자고 했다. 그래서 딸애가 엉겁결에 사진을 찍었다.

거리의 악사가 흥에 겨워 불고 있었던 '오카리나(Ocarina)'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거위'라는 뜻으로 흙으로 빚어 구워 만든 악기를 칭한다. 이렇게 흙으로 구워서 만든 악기는 석기시대부터 인간이 주거하던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당시엔 휘파람 소리처럼 한두음 정도 내는 주술적인 악기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오카리나를 연주하던 아즈텍인들의 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로마귀족의 벽돌 굽는 기술자가 그 모양을 흉내 내 장난감용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장난감은 큰 인기를 끌어 유럽의 벽돌 굽는 기술자들에게 알려져 맑은소리가 나는 오카리나를 장난감으로 만들어 시장에 팔아 대중적인 장난감이 되었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휘슬을 불듯 단지 몇 개의 음밖에는 소리낼 수 없었던 오카리나를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고 정확한 옥타브 음계를 갖는 오카리나로 만든 사람은 이탈리아 부드리오에서 살던 당시 17살의 음악가이자 벽돌 굽는 기술자였던 '주세페 도나티‘였다.

우리나라에 오카리나가 알려지게 된 것은 1986년 일본 NHK-TV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대황하”의 배경음악이 오카리나로 연주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배경음악을 담당하고 오카리나를 직접 제작하여 연주한 '노무라 소지로'가 일본 예술인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단독 오카리나 연주회를 가졌으며,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관중은 처음 대하는 악기의 경이롭도록 아름다운 소리에 감동하였다고 한다. 이런 오카리나 연주를 세계최고의 고딕양식으로 일컫는 노트르담 성당 앞 광장에서 들을 수 있어서 너무도 흥분이 되었다.

딸애와 나는 오카리나를 불고 있는 악사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그때 노트르담 성당 종탑에서 종이 울렸다. 그 순간 나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틀담의 꼽추’가 떠올랐다. 꼽추에 얼굴까지 기형인 성당의 종치기 ‘콰지모도’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면서도 바라만 보는 가운데 에스메랄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자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준다. 그리고는 다음 세상에서 사랑을 이어가자며 그녀 옆에 누워 목숨을 끓어 순정을 바친다. 평생 성당의 종만 치다가 귀까지 먹은 종치기 꼽추 콰지모도, 지금 울리는 저 종소리는 그 옛날 콰지모도가 울렸던 종은 아니었을까. 에스메랄다를 향한 콰지모도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종소리에 묻어 흐르는듯 애처롭게 들렸다.

간간이 떨어지던 빗줄기는 후드득 소나기로 변했다. 나폴레옹의 부인 이름을 딴 조세핀 식당에서 달팽이 요리를 먹었다. 포도농사를 망치는 달팽이를 없애기 위해 식용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달팽이 요리와 적포도주를 곁들인 오찬은 훌륭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소나기 내리던 하늘은 맑게 개고 전형적인 가을 날씨처럼 청명했다. 프랑스는 사시사철 푸른 하늘을 보여준다는 가이드의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파리의 여름 하늘은 마냥 푸르렀다.

프랑스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영국에 비해 깨끗한 호텔과 호텔식 음식들이 깔끔했으며 중후한 호텔지배인의 상냥한 미소와 친절이 매력적이었다. 팁 문화가 성행하는 유럽 풍습에 따라 호텔방을 나올 때마다 1달라 지폐와 잘 쉬고 같다는 메모를 남겼다. 나는 한국에서 온 사람이고, 친절한 서비스에 감사하며 아름다운 대한민국에도 꼭 여행해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메모였다.

파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사회가 공존하는 꿈의 도시였다. 전기, 전화선 등 모든 선은 하수도관 속에 들어가 있다. 지상은 물론 보이지 않는 지하에까지 꼼꼼히 신경을 쓰는 프랑스 정부의 도시정책이 부러웠다. 하루에 2번씩 물청소를 한다는 도로,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바퀴에 고무를 씌운 기차, 육교가 없는 인간중심의 도로, 모든 차량은 지하로 통하게 하여 차 없는 거리가 된 신도시 라데팡스…. 울창한 숲 아래 초원엔 붉은 지붕과 흰 벽의 전원주택이 그림처럼 마을을 형성하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들의 여유 속에 목가적인 농촌마을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넓은 초원과 끝없는 해바라기의 물결 속에 예술이 꽃피는 나라 프랑스는 여름날씨 마저도 푸르고 쾌적하여 살고 싶은 나라로 각인되었다.

다음 여정을 위해 테제베(TGV)를 타고 스위스 제네바로 향했다. 스위스로 가는 테제베는 역방향으로 딸애는 드디어 멀미를 시작하고, 아름다운 프랑스가 점점 멀어져가는 아쉬움만 내 마음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하얀 눈과 호수의 나라 스위스로 가는 동안 오카리나의 아름다운 연주 소리가 초원에서 광활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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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바라기의 물결 /행촌수필문학회 이은재



'우크라이나' 평원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을 걷는 소피아 로렌의 우수에 찬 모습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눈에 가득 담긴 눈물이 뚝뚝 떨어져 해바라기 밭을 노란 강물로 만들 것처럼 보였다. 전쟁의 격랑 속에 인생도 폐허가 된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소련에서 촬영했다는 이유로 수입이 금지되었다가 상영되었던 영화 “해바라기(The Sunflower)”…….

결혼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남편 안토니오를 전쟁터로 보내는 아내 지오반나(소피아 로렌)의 슬픔이 시작된다. 남편의 소식이 궁금하던 아내에게 날아온 것은 남편의 전사통지서였다.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남편과 같은 부대에 배속되었던 군인으로부터 남편이 죽음 직전에 부대에서 낙오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이 살아 있음을 확신하며 머나먼 땅 러시아로 남편을 찾아 떠난다.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까지 계속되는 그녀의 여행은 고달프기만 하다. 그녀가 지나가는 우크라이나 들판에는 해바라기 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해바라기 물결 속을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은 너무도 애처롭다. 모스크바 북쪽 변두리 지역에 이태리인들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에 남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찾아간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마을에서 그녀는 러시아 여인 마샤의 집에서 남편 안토니오를 발견한다. 남편은 전쟁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었고, 러시아 여인 마샤와 함께 살면서 아이까지 있었다. 그 먼 땅을 헤매며 남편을 찾아 왔지만 이미 다른 여인의 남편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며 지오반나는 슬픔 속에 그 곳을 떠난다. 다시 이태리 밀라노로 돌아온 지오반나는 남편을 잊으려고 나이 많은 공장 일꾼 에토와 결혼하여 아들까지 둔다.

세월이 흐른 뒤 기억을 되찾은 안토니오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안토니오의 출현으로 흔들리는 지오반나의 슬픔 속에 이들은 다시 재회를 하지만 각자의 삶이 다르게 펼쳐져 있는 현실 앞에서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새롭게 주어진 길을 운명처럼 걸어가야 하는 슬픔만 있었고, 그리고 해바라기 틈새를 지나는 바람소리만 슬픈 간극을 채워주고 있었을 뿐…….

전쟁터에 끌려 나간 남편의 흔적을 좇아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떠도는 여인의 기구한 인생이야기를 더욱 애처롭게 하는 '헨리 맨시니'의 슬픈 배경음악이 묵직하게 깔리고 대형 스크린에 광활한 해바라기 밭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질 때 관람객들의 눈물을 짜내는 소리가 또 하나의 배경음악으로 어우러졌던 영화였다.

인류 역사상 천재란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가로 빈센트 반 고흐를 꼽는다. ‘아를’의 작업실에서 고갱을 위협하던 면도칼로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고 해바라기를 그려 고갱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했던 광기(狂氣)의 화가 반 고흐의 언저리엔 항상 해바라기 그림이 놓여 있었다. 이 사건으로 고갱은 ‘아를’을 떠나고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반 고흐는 밀밭에서 권총자살로 37세의 생을 마감한다.

고흐와 해바라기는 고갱에게 지워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를의 노란집에서 함께 지냈던 고갱과 고흐의 관계는 충돌의 연속이었지만 고갱은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사를 보냈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를 그림으로 묘사하였고, 고흐가 죽은 뒤엔 ‘팔걸이 의자에 놓인 해바라기’를 그려 친구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던 한 고독한 화가의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꽃, 우울증으로 점철된 삶을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한 노란색의 해바라기는 그가 죽은 뒤에 비로소 사랑을 받았다.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아 평생 가난 속에 살았던 반 고흐의 그림은 그가 죽은 뒤에는 고가에 낙찰되고, 그를 기리는 노래“Vincent”도 등장하는 등 화려하게 장식되고 있다. 해바라기를 모티브로 화폭의 세계를 펼쳤던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한 생활 속에 오해 받는 예술가, 정신적으로 균형을 잃은 광기의 화가로 생존시에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불운한 화가였다. 그러나 고흐는 해바라기가 있어서 행복했다.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하고, 그를 진정한 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으니 고흐에게 있어서 해바라기는 어떤 절대자와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영화 해바라기나,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를 통해 보고 싶었던 해바라기 밭, 그 염원은 지난 8월 유럽연수에서 통렬하게 해결되었다. 유럽연합(EU)으로 단일 화폐인 유로를 사용하는 서유럽은 여권 없이도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었다. 광활한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유럽 대륙을 기차나 버스로 횡단하면서 황달 걸린 환자처럼 나는 눈동자가 샛노랗도록 해바라기 밭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로 가는 길목에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은 젊은 날에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해바라기에 대한 그리움을 만족시켜주며 한없이 나를 설레게 했다. 해바라기 밭 속엔 헨리 맨시니의 배경음악도 함께 흐르고 있었다.

서유럽의 농촌은 광활한 옥토였다. 그 넓은 평원에 옥수수 밭과 해바라기 밭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가는 곳마다 푸른 초원에 펼쳐진 노란 해바라기 무대는 장관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을 보며 영화 해바라기에서 우크라이나 평원 한 복판을 걸어가던 소피아 로렌의 우수에 찬 모습이 투영되었다. 불타는 8월의 불볕 속에서 샛노랗게 피어오른 노란 해바라기는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처럼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했다.

태양의 신 아폴로를 사랑한 요정 크리티에가 아흐레 동안 자신이 흘린 눈물만 마시며 태양을 바라보다가 해바라기가 되었다는 신화 때문인지 해바라기들은 일제히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해바라기들은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크라이나 평원 해바라기 밭 한복판을 걸어가는 여인의 슬픈 사랑이야기와, 짧고 격정적인 삶을 살다간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슬픈 인생 이야기를……. 그 많은 물상 중에서 오직 해만 바라보며 산다고 해서 이름도 해바라기, 어둠을 등지고 빛을 따라가는 희망의 꽃, 반 고흐가 해바라기에 혼을 쏟은 것도 이런 매력 때문이었을까. '열정과 그리움'이란 꽃말처럼 해바라기는 그렇게 팔월의 땡볕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그리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유럽여행에서 천편일률적으로 통관하는 유명한 유적지들엔 많은 사람들이 들끓어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워 아쉽기만 했다. 그 빈자리를 나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조금은 멀어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농촌마을에서 만끽했다. 우리가 여행했던 여행사는 각 나라를 기차나 버스로 이동했다. 철길을 달리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리면서 서유럽의 농촌마을 깊숙한 곳까지 섭렵할 수 있었다. 각 나라를 이동하는 거리는 3~5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11일 동안 소요된 시간을 계산하면 많은 시간들을 차안에서 보낸 셈이다. 그런데, 그 많은 시간 동안 차안에서 단 1분도 졸았던 적 없었던 나를 보며 나 스스로도 놀랐다. 창밖을 보면 하나의 그립엽서가 되고 시와 노래가 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어찌 잠이 오겠는가. 지난 유럽연수에서 내가 만난 해바라기 밭은 나를 또 다시 유럽여행을 꿈꾸도록 손짓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