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전쟁

2006.07.07 07:08

박주호 조회 수:93 추천:25

또 다른 전쟁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야) 박주호




우리 인간은 전쟁을 무척 좋아한다. 걸핏하면 전쟁이다. 폭력과의 전쟁, 부동산 투기세력과의 전쟁, 부정 식품과의 전쟁 등 등.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침을 받은 횟수는 자그마치 980회라고 한다. 엊그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6.25기념일이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에서도 전쟁을 하는데, 다혈질이고 남의 것을 탐내기 좋아하는 유럽은 어떠하겠는가.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은 많은 희생이 따른다. 한국전쟁의 희생자만 해도 백오십 만 명에 이른다. 전쟁은 왜 해야 하나?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칙을 신봉하는 것인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동물적 본능을 따르는 것인가. 전쟁의 모든 명분은 정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요즘 월드컵 축구가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약 40억 지구촌 사람들이 열광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히 틀림없을 것 같다. 우리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4년 전에 있었던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준 성적과 응원문화는 이제 세계 여러 나라의 응원을 선도한다. 긍정적인 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팀들이 모두 탈락하고 이제 남은 여덟 개의 국가는 유럽과 남미의 나라들이다. 2002년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들을 따라잡기에 아직은 부족하다.

축구는 전쟁과 다르지 않다. 감독의 전략(戰略)과 전술(戰術)이 적중해야 하고 선수들의 기량이 필수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체력이 강점이라는데 유럽선수들에 비해 과연 그럴까. 조직적인 게임운영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다고 본다. 어찌됐든 축구는 스포츠임에도 군사적인 용어를 쓰고 있다. 수비수, 공격수, 측면공격, 중앙공격, 방어 등등.
이제는 스포츠가 마치 국가 간의 전쟁처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어차피 스포츠 경기는 이기는 팀과 지는 팀으로 나뉜다. 그래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상대편에게 항복을 받아야 이기는 것이다. 승리를 얻으려 하기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는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다행스런 것은 전쟁과는 달리 희생자가 없다. 무력(武力)의 정복 대신 세계 정상의 자긍심과 국가브랜드 가치의 상승작용을 가져온다.

요즘 나는 잡초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 이앙을 한 곳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직파를 한 논은 잡초가 무성하다. 대표적인 것은 피다. 피는 벼와 구분이 쉽지 않다. 뽑아도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 피다. 농사를 어느 정도 지어보고 피와 벼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만이 피를 뽑을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도시로 유학을 갔다 돌아 온 아들에게 논에 가서 피를 뽑으라고 했더니 벼를 죄다 뽑아놓았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피만 골라 죽이는 농약을 줬다. 벼가 약해(藥害)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피를 죽이지 않고는 벼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다. 피만 죽인다고 다른 풀은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온갖 잡초가 논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세 좋게 밀고 나온다. 가급적이면 농약을 하지 않겠다던 당초 다짐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또 잡초만 죽이는 농약을 비싼 값에 샀다. 그것은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분명 친환경 농업과는 거리가 멀다. 어쩔 수 없이 약통을 짊어지고 논으로 들어 갈 수밖에 없다.

원래 이 땅의 주인은 잡초였다고 한다. 잡초는 자기네 땅을 빼앗으려는 인간과의 소리 없는 끈질긴 전쟁을 하고 있다. 뽑아도 나오고 죽여도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도 잡초처럼 살아갈 힘만 길러 준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을 낳아도 잡초처럼 기르라는 말이 진리인 것 같다.
잡초가 꼭 죽여야만 될 해로운 것은 아니다. 산과 들을 덮고 있는 잡초는 폭우를 견디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작은 새들의 보금자리도 되어주고, 열매로서 먹이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 초식동물의 먹이도 된다. 그러나 지금 나의 논밭에는 잡초가 필요 없다. 그들과 싸워 이겨야 하는 전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손으로 뽑아서 안 되면 베어낼 수밖에 없고, 그래도 죽여 없애야 한다면 제초제를 쓴다. 엽록소가 파괴되어 빨갛게 비실비실 죽어가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어야 한다.

옛날에는 논에 피가 많기도 했다. 제초제가 없으니 쉽게 죽일 수도 없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대민 봉사하러 간 곳은 누렇게 벼이삭이 익어가는 넓은 들이었다. 벼이삭보다 키가 더 큰 피가 씨를 맺고 있었다. 뿌리째 뽑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모가지를 잘라 모아 불태웠던 기억이 난다. 피는 벼와 닮았지만 적(敵)이다. 절대로 공생을 할 수 없는 사이다.  벼와 피가 싸우면 벼가 진다. 피에게 점령당하면 피논이 되는 것이다. 게으른 농부는 피농사만 짓게 되어 있다. 농약을 주자니 손쉽기는 하지만 결국 나의 발등을 찍는 일이고, 그렇다고 안 주자니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러니 그게 딜레마인가 필요악인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다면,
“피야! 제발 좀 논에서 나지 말고 강둑이나 밭두렁에서만 살 수 없겠니?” 호소라고 하겠건만, 협상의 여지가 없는 잡초와의 또 다른 전쟁은 과연 언제 끝나려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