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2006.07.11 11:08

최정자 조회 수:135 추천:12

신토불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중) 최정자



태풍 ‘에위니아’ 때문에 비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는 월요일이다. 큰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빌며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찾았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인스턴트식품을 좋아하는 요즘아이들과는 달리 옥수수, 고구마, 밤 따위의 자연식품을 좋아한다. 마침 얼마 전에 들여놓은 빨간 감자가 생각나 한 바구니를 삶아 설탕과 묵은 김치를 썰어 아이들과 남편 앞에 내밀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빨간 감자를 보며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묻는다.
"우아! 고구마다. 그런데 고구마가 왜 이렇게 작아요?"
"이건 고구마가 아니고 감자야."
"어? 이상하다. 감자는 이 색깔이 아닌데?"
아이들은 빨간 감자를 낯설어하면서도 나무젓가락에 끼워 설탕을 찍어서 맛있게 먹는다.

빨간 감자는 우리가 흔히 먹었던 감자와 달리 칼로리도 낮고 속살이 노란 밤고구마처럼 포근해서 감자와 고구마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오묘한 맛이 있다. 커피 한 잔을 곁들여 묵은 김치와  함께 싸서 먹는 빨간 감자가 오늘 우리 가족에겐  최고의 만찬이다.

며칠 전  이웃에 사는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언니! 감자 좀 사주라.”
“내가  감자 사서 먹을 일 없는 것 너도 알잖아?”
친정도 감자를 많이 심고 시댁도 넘쳐 나는 게 감자인데 무슨 감자를 사라는 건지…….

속이 상해서 그런다며 후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하루 전날, 시골에 사는 친정어머니께 전화가 왔더란다. 아버지께서 암 수술을 하신지가 얼마 안 되어 논농사는 하실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그래도 살림을 꾸려가자면 돈이 있어야 하기에 밭에 돈이 되는 작물을 심었다고 한다. 일손도 많이 안 들고 수확도 좋은 밭작물을 찾다보니 감자가 제격이었다고 한다. 일반 감자보다 빨간 감자는 귀하며 저장성도 높고 값도 후하게 쳐준다기에 남아있는 땅에 친정 부모님이 빨간 감자를 심었다는 것이다.

이른 봄에 심었던 감자를 며칠 전, 손으로 일일이 캐어 흙도 털고 그늘에 살짝 말린 후 크기별로 선별하여 20킬로씩 박스 포장을 하고는 남의 트럭을 빌려 남원시장 경매장으로 싣고 갔었단다. 수확의 기쁨과 수고한 대가를 기대하면서……. 그런데 올해는 감자가 풍년이라 감자 값이 헐값이더라는 것이다. 경매장에서 20킬로 한 박스에 3,000원을 줄 테니, 팔려면 팔고 아니면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진 친정 부모님은 3,000원에 내놓느니 도시에 있는 자식들이나 실컷 먹이겠다며 다시 집으로 가져오고 말았다. 천덕꾸러기가 된 감자를 집으로 가져오면서 친정엄마는 힘들고, 속상해서 울고 그동안 공들인 정성이 아까워서 울었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밭에 손수 거름을 내고, 잡초도 뽑아주며 기름진 밭을 만드셨다. 그리고 작년에 아껴두었던 씨감자를 삼등분하여 정성들여 밭고랑마다 하나씩 심으며 자식처럼 감자밭을 가꾸셨다. 무성하게 자라는 감자 줄기를 지켜보며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고 용돈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수확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건만 그 땀과 노력의 댓가가 한 박스에 겨우 3,000원이었으니, 포장에 사용한 박스 값과 운반비를 주고나면 손에 쥐어지는 돈은 하루 점심 값도 안 된다. 그런 속내를 후배의 친정어머니는 딸에게 떨어 놨던 것이다.

감자 한 박스에 3,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래가 어디 있냐며 농민들의 수고와 땀을 날로 먹으려 한다며 후배와 나는 울분을 토했다. 도대체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것일까? 나랏일을 하는 윗분들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중간상인들을 원망해야하는지……. 그도 아니면 우리 농산물을 외면하는 소비자들에게 그 화살을 돌려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오신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이 생각나 후배의 말을 듣고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주변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부탁도 하고 강매도 하여 한 박스에 7,000원씩 천덕꾸러기 감자를 다 처리하였다.  

감자를 사신 분들에게는 좋은 감자를 싸게 살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후배 부모님은  천덕꾸러기가  될  뻔했던 감자를  7,000원씩에  팔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더구나 직접 기른 배추며 파, 부추 등 각종 채소들까지 정성스럽게 싸서 보내 주셨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말처럼 우리 몸엔 우리 것이 좋은 거라고 하지 않던가? 수입농산물 값이 싸다는 이유로 우리 농산물이 자꾸만 밀려나니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 우리 농산물은 질이 좋기 때문에 맛 또한 좋고 신선하건만.

외국농산물의 경우. 보통 우리나라까지 세관심사 및 운송 등 기타 여러 과정을 거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신선도도 떨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각종 약품도 살포하기 마련이다. 외국에서는 대량생산하기 때문에 가격이 상당히 싸고 우리는 인건비와 토지비용이 비싸 우리  농산물이 수입농산물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외국농산물의 장점은 단가가 싸다는 것뿐, 우리농산물에 비해 질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뒤떨어지고 혹 질이 좋다 하더라도 유전자 변형식품 등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생명자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값이 조금 비싸다고 우리 부모님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내는 우리 농산물을 외면해서야 되겠는가?
                                                                            
"남의 것을 왜 찾느냐?/ 고추장에 된장, 김치에 깍두기 잊지마라 잊지마 / 너와 나는 한국인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야 //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야"                                            

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자는 인기가수의 노래처럼 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너와 내가  되길 소망해본다. 오늘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우리 것을 지키려고 우리네 농부들은  행여 벼이삭이 쓰러질세라, 논둑이 무너질세라 삽 한 자루를 손에 들고 논밭에서 서성거릴 것이다. 한 톨의 쌀이라도 더 나오게 하려는 농부들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어본다. 올 가을에는 토실토실한 황금물결이 춤을 추면서 내 어머니를 비롯하여 피땀 흘린 농부들의 입가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대접받는 농촌이며 대접받는 우리 농산물이 되었으면 진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