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성산 백두산에 올라
2006.07.16 10:36
겨레의 성산(聖山), 백두산 에 올라
행촌수필문학회 이 종 택
우리 겨레의 성산이자 개국신화의 탯자리인 백두산. 살아 생전에 백두산을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생각은 나의 오랜 염원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애국가의 서막을 장식하는 백두산! 태초부터 그 자리에 우뚝 솟아 반만년 동안 민족의 화합과 분열, 고통과 환희, 전쟁과 휴전의 역사를 묵언(默言)으로 지켜보면서 내려 온 그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은 백두산이란 그 성스러운 이름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강원도 속초에서 뉴 동춘호를 타고 장장 18시간, 뱃속에서 밤을 지샌 뒤 소련 땅 자루노비항구에 도착했다. 세관의 출국수속을 마친 일행은 길림성 연길(延吉)까지 자동차로 4시간, 용정과 이도백하를 거쳐 백두산으로 달렸다. 날씨마저 화창한 5월의 따스한 햇살은 온 천지를 감싸주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연록의 가로수는 산들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밖으로 보이는 들녘의 풍경은 모내기 작업이 한창인지라 여기저기 무논에서는 소를 부려 써레질을 하고 식구들끼리 다랑이 논에 모를 심는 모습은 옛날 내 고향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어느새 숲길로 들어서면 넓디넓은 평원에는 자작나무와 전나무, 미인송이라 불리는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드디어 백두산의 기슭에 이르자 저 멀리 천지대문(天池大門)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산자락에는 천지폭포를 배경으로 호텔과 산장 온천 상가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한쪽으로 크게 자리한 주차장에는 8인 승 찦차 70여 대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천문 봉까지 등반길은 4시간 거리, 젊은이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벌써 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찦차를 타고 15분간 꾸불꾸불한 시멘트 포장도로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기사들의 운전솜씨가 어찌나 과격하던지 금방이라도 차창 밖으로 튕겨져 나갈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백두산 정상의 주차장은 삭막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선가 불어오는 세찬바람이 몸을 가눌 수 없게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무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 하지만 정신을 차려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서 백두산 천문봉 정상에 올랐다.
아!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백두산 연봉들! 발밑 천길 낭떠러지에는 쪽빛 백두산 천지가 보이고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천지가 보인다!”고 크게 외쳤다.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불러온 애국가 가사 속에서 듣던 백두산,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봤던 백두산 천지! 드디어 내가 그 장엄하게 느껴온 백두산에 오른 것이다. 6. 25와 더불어 38선에 철조망이 쳐지고 점점 악화되어 가기만 했던 이념전쟁, 통일이 되기 전, 살아 생전엔 절대 가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해 버렸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백두산, 그 백두산 정상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니 실로 감개가 무량했다.
“신령님이시여,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나는 순간 기쁨이 벅차올랐다. 백두산 천지는 아무 때나 볼 수 없는 곳, 그곳 기상관측소에 따르면 1년 중 청명한 날은 불과 두어 달도 못된다는 것이다. 하늘과 맞닿은 백두산, 해발 2,774m의 백두산, 거기에는 동서남북으로 백운봉, 제비봉, 비로봉, 천문봉 등 16개 연봉에 둘러싸인 채 그 중심부에 검푸른 ‘천지’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장엄하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했다. 주라기 때부터 시작되었을 저 수억 년의 침묵 속에 오늘 우리들의 존재와 인생은 하나의 점이요, 찰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가이드가 소리쳤다.
“저 아래에서 안개가 몰려오고 있어요. 빨리빨리 사진들 찍으세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덕을 부린다는 날씨가 곧 심술을 부릴 모양이라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와 1m 앞도 안 보이지 않은가? 이제 금방 올라온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어찌나 안타까운지 허탈하여 주저앉아 재수타령을 하고 있을 즈음, 다시 바람은 안개를 걷어내고 서서히 천지의 푸른 물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광경은 백두산천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요술이 아닌가 싶었다.
그날 밤 우리들의 숙소는 방금 내려왔던 천문봉의 턱밑에 위치한 백두산 기상 관측소로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내일 아침 백두정상에서 해돋이를 보여주려는 백두산여행사 배 사장의 특별 배려라는 것. 그는 언제 또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오겠냐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잠자리는 편치 않았다. 온 천지를 단숨에 날려버릴 듯 불어닥치는 바람소리와 밤새 덜컹거리는 문짝소리 때문에 우리는 뜬눈으로 밤을 샐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새벽이 열렸다.
“기상, 기상”
인솔자 전 사장이 먼저 일어나 서둘렀다. 어제의 약속대로 우리는 해돋이를 보려고 완전무장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바깥 날씨는 아직도 으르렁대는데 동쪽 하늘에는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주욱 주욱 미끄러지며 오르는 눈 언덕길,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앞서 오른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정 사장은 평평한 자리를 골라 미리 준비해 간 돗자리를 펴고 앉아 목탁을 치며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있는데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관자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의 평화스런 독경소리는 어찌나 근엄하던지, 산천초목도 감복했으리라.
발을 동동 구르고 몸을 움츠리며 기다리는 동안, 드디어 동쪽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면서 휘황찬란한 오색구름 속에서 진홍빛 거대한 태양이 불쑥 솟아 오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거기에 모인 수많은 관광객 모두가 일제히 “해가 뜬다.”고 외쳤다. 실로 환희의 순간이었다.
이번 백두산 기행이야말로 값진 추억으로 기억되리라. 우리 겨레 개국신화의 탯자리를 보는 순간, 그 성스러움에 경탄했고, 또 백두산과 천지를 보는 순간, 그 장엄한 산세와 지세가 말해주는 풍수지리를 예감해 볼 때 언젠가는 우리도 세계의 열강에 끼어 한몫 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백두정상에서 맞이한 해돋이를 보며 받았던 그 정기가 앞으로 내 삶에 오래도록 기쁨과 활력을 주리라 믿는다.
(2006. 6. 7.)
행촌수필문학회 이 종 택
우리 겨레의 성산이자 개국신화의 탯자리인 백두산. 살아 생전에 백두산을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생각은 나의 오랜 염원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애국가의 서막을 장식하는 백두산! 태초부터 그 자리에 우뚝 솟아 반만년 동안 민족의 화합과 분열, 고통과 환희, 전쟁과 휴전의 역사를 묵언(默言)으로 지켜보면서 내려 온 그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은 백두산이란 그 성스러운 이름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강원도 속초에서 뉴 동춘호를 타고 장장 18시간, 뱃속에서 밤을 지샌 뒤 소련 땅 자루노비항구에 도착했다. 세관의 출국수속을 마친 일행은 길림성 연길(延吉)까지 자동차로 4시간, 용정과 이도백하를 거쳐 백두산으로 달렸다. 날씨마저 화창한 5월의 따스한 햇살은 온 천지를 감싸주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연록의 가로수는 산들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밖으로 보이는 들녘의 풍경은 모내기 작업이 한창인지라 여기저기 무논에서는 소를 부려 써레질을 하고 식구들끼리 다랑이 논에 모를 심는 모습은 옛날 내 고향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어느새 숲길로 들어서면 넓디넓은 평원에는 자작나무와 전나무, 미인송이라 불리는 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드디어 백두산의 기슭에 이르자 저 멀리 천지대문(天池大門)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산자락에는 천지폭포를 배경으로 호텔과 산장 온천 상가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한쪽으로 크게 자리한 주차장에는 8인 승 찦차 70여 대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천문 봉까지 등반길은 4시간 거리, 젊은이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벌써 출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찦차를 타고 15분간 꾸불꾸불한 시멘트 포장도로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기사들의 운전솜씨가 어찌나 과격하던지 금방이라도 차창 밖으로 튕겨져 나갈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백두산 정상의 주차장은 삭막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선가 불어오는 세찬바람이 몸을 가눌 수 없게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나무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 하지만 정신을 차려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서 백두산 천문봉 정상에 올랐다.
아!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백두산 연봉들! 발밑 천길 낭떠러지에는 쪽빛 백두산 천지가 보이고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천지가 보인다!”고 크게 외쳤다.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불러온 애국가 가사 속에서 듣던 백두산,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봤던 백두산 천지! 드디어 내가 그 장엄하게 느껴온 백두산에 오른 것이다. 6. 25와 더불어 38선에 철조망이 쳐지고 점점 악화되어 가기만 했던 이념전쟁, 통일이 되기 전, 살아 생전엔 절대 가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해 버렸고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백두산, 그 백두산 정상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니 실로 감개가 무량했다.
“신령님이시여,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나는 순간 기쁨이 벅차올랐다. 백두산 천지는 아무 때나 볼 수 없는 곳, 그곳 기상관측소에 따르면 1년 중 청명한 날은 불과 두어 달도 못된다는 것이다. 하늘과 맞닿은 백두산, 해발 2,774m의 백두산, 거기에는 동서남북으로 백운봉, 제비봉, 비로봉, 천문봉 등 16개 연봉에 둘러싸인 채 그 중심부에 검푸른 ‘천지’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장엄하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했다. 주라기 때부터 시작되었을 저 수억 년의 침묵 속에 오늘 우리들의 존재와 인생은 하나의 점이요, 찰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가이드가 소리쳤다.
“저 아래에서 안개가 몰려오고 있어요. 빨리빨리 사진들 찍으세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덕을 부린다는 날씨가 곧 심술을 부릴 모양이라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와 1m 앞도 안 보이지 않은가? 이제 금방 올라온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어찌나 안타까운지 허탈하여 주저앉아 재수타령을 하고 있을 즈음, 다시 바람은 안개를 걷어내고 서서히 천지의 푸른 물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신비로운 광경은 백두산천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요술이 아닌가 싶었다.
그날 밤 우리들의 숙소는 방금 내려왔던 천문봉의 턱밑에 위치한 백두산 기상 관측소로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내일 아침 백두정상에서 해돋이를 보여주려는 백두산여행사 배 사장의 특별 배려라는 것. 그는 언제 또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오겠냐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잠자리는 편치 않았다. 온 천지를 단숨에 날려버릴 듯 불어닥치는 바람소리와 밤새 덜컹거리는 문짝소리 때문에 우리는 뜬눈으로 밤을 샐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새벽이 열렸다.
“기상, 기상”
인솔자 전 사장이 먼저 일어나 서둘렀다. 어제의 약속대로 우리는 해돋이를 보려고 완전무장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바깥 날씨는 아직도 으르렁대는데 동쪽 하늘에는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주욱 주욱 미끄러지며 오르는 눈 언덕길,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앞서 오른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정 사장은 평평한 자리를 골라 미리 준비해 간 돗자리를 펴고 앉아 목탁을 치며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있는데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관자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의 평화스런 독경소리는 어찌나 근엄하던지, 산천초목도 감복했으리라.
발을 동동 구르고 몸을 움츠리며 기다리는 동안, 드디어 동쪽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면서 휘황찬란한 오색구름 속에서 진홍빛 거대한 태양이 불쑥 솟아 오르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거기에 모인 수많은 관광객 모두가 일제히 “해가 뜬다.”고 외쳤다. 실로 환희의 순간이었다.
이번 백두산 기행이야말로 값진 추억으로 기억되리라. 우리 겨레 개국신화의 탯자리를 보는 순간, 그 성스러움에 경탄했고, 또 백두산과 천지를 보는 순간, 그 장엄한 산세와 지세가 말해주는 풍수지리를 예감해 볼 때 언젠가는 우리도 세계의 열강에 끼어 한몫 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백두정상에서 맞이한 해돋이를 보며 받았던 그 정기가 앞으로 내 삶에 오래도록 기쁨과 활력을 주리라 믿는다.
(2006.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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