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담긴 두 번째 숟가락

2006.07.16 21:25

정현창 조회 수:88 추천:14

정(情)이 담긴 두 번째 숟가락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야) 정 현 창







  “애야! 한 번은 정(情) 없으니 한 숟가락 더 받아라.”
하시며 어머니는 보리밥이 담긴 숟가락을 내게 내밀곤 하셨다. 지지리도 못살던 그 시절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팠다.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6남매는 서로의 밥그릇을 바라보곤 했었다. 그 때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밥그릇이 더 많이 담겨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어머니와 누나들은 자기의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씩 퍼서 우리들에게 주었다. 어머니는 한 번은 정이 없다면서 꼭 한 숟가락씩을 더 퍼주셨다. 배고프고 철없던 그땐, 어머니의 밥그릇에 조금 남아있는 밥만 보였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정이 담긴 두 번째 숟가락 때문에 비어버린 어머니의 밥그릇이 눈이 어른거려 가슴이 아린다. 언제나 나에게 정으로 퍼주셔서 비어버린 밥그릇을 어떻게 채워 드릴 수 있을까.

아내는 무엇을 먹을까 한참이나 생각하다 커다란 양푼을 꺼내 놓고 남은 밥을 몽땅 담았다. 냉장고를 열고 반찬들을 하나씩 꺼내서 양푼에 넣었다. 콩나물 무침, 생채, 열무김치, 상추, 고추장, 어젯밤에 먹다 남은 된장 등을 함께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음식 만드는 게 신이 나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비빔밥을 만들어 작은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아이들이 타지로 나가는 바람에 대개 둘이서만 식사를 한다. 부부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하루 중에 식사시간이 유일하다. 그래서 가끔 삼겹살이라도 구워 놓고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남아 있는 밥은 두 그릇이 채 안되었지만 여러 가지 반찬을 함께 넣은 탓에 그 양이 제법 많아졌다. 아내의 수고에 보답하려고 유명한 음식점에서 사먹는 전주비빔밥보다 열 배는 더 맛있다고 칭찬하며 즐겁게 비빔밥을 먹었다. 배는 무척이나 불렀으나 남길 수가 없어 겨우 다 먹었을 때쯤 아내가 자기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을 퍼주었다. 아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냥 받아 먹으니 아내가 또 한 숟가락을 주면서 말했다.

“여보! 한 번은 정 없으니 한 숟가락만 더 먹어요.”
“아휴 저걸, 그놈의 정 때문에 내가 받아먹는다.”

그날 저녁에 난 아내 몰래 소화제를 먹었다.

어머니는 자기도 배가 고팠지만 아들을 위해서 두 번째 숟가락에 정을 담아 주셨다. 하지만 난, 아내가 배불러 못 먹고 준 두 번째 숟가락을 그놈의 정 때문에 받아먹었다. 어머니가 정으로 주신 두 번째 숟가락 때문에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 때문에 먹었던 아내가 준 두 번째 숟가락 덕분에 그날 밤 삼천둔치에 나가 한 시간을 낑낑대며 달려야 했다. 요즘 어머니들도 아들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자기는 희생하면서도 학원을 여러 개나 보내고, 몸에 좋다는 운동도 시키며, 웰빙 음식들을 억지로라도 먹인다. 아들들이 그렇게 싫어해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어이 어머니들은 아들들에게 두 번째 숟가락을 내밀고 있다. 사랑은 내가 해주고 싶은 걸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늘이 구멍난 듯 장맛비가 퍼부어 서울, 강원도 등 중부지방에 엄청남 피해를 입혔다. 생활 터전을 모두 잃고 통곡하는 수재민들을 보노라니 가슴이 아프다. 우리에겐 비는 꼭 필요하다. 아니 없어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가뭄에 단비가 필요하지 이렇게 쏟아 부으면 재앙일 뿐 무슨 필요가 있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전주에는 집중호우가 비껴가서 며칠째 걱정하던 회사의 침수피해는 없었다. 이제는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장맛비도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랑비만 조용히 내리고 있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비가내리는 날엔 어머니가 주시던 정이 가득 담긴 두 번째 숟가락이 더욱 그리워진다.

                                                                (2006.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