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뜸 같은 친구
2006.07.17 10:49
쑥뜸 같은 친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한애근
1년 6개월 전부터 수지침을 배우고 있다. 손에 오장육부가 있어서 손만 잘 다스리면 병이 낫거나 건강해진다는 이치다. 웃고 왔다가 울고 간다는 수지침이라고 하지만 발병했던 병이 낫거나 증상이 완화되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렵게 공부한 보람도 느낀다.
병을 다스리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고 그에 따르는 재료 또한 많은데 그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재료가 바로 쑥뜸이다. 뜸에 불을 붙여 손바닥 위에 올려 놓으면 은은하고 향긋한 쑥 냄새가 나면서 빨갛게 타는데, 그 열기로 손이 따뜻해진다. 추운 겨울에 뜸을 뜨면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이 따뜻해지면서 하얀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듯 온 몸이 훈훈해진다. 요즘같이 날씨가 끈적끈적한 장마철에 뜸을 뜨면 습한 기운이 사라지고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지면서 마음까지 상쾌하고 개운해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몸이 따뜻한 사람은 질병에 잘 안 걸린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도 손발이 차가운 나는 잔병치레가 많다. 수지침을 배우고 뜸을 뜨면서 몸도 많이 건강해졌고 이제는 쑥뜸 예찬론자가 되었다. 이렇게 웬만한 잔병은 주로 뜸으로 치료를 한다. 나는 나의 건강지킴이 1순위로 쑥뜸을 꼽는데 망서리지 않는다.
몸의 건강은 대부분 마음이 주관한다고 한다. 마음에 병이 들면 육체도 따라서 병이 든다고 하니 아무리 웰빙음식을 먹고 열심히 운동하며 쑥뜸을 뜬다한들 건강이 제대로 지켜지겠는가? 천국과 지옥도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어디 이 마음이 호락호락한가?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농부가 장마철에 풀과 치르는 전쟁이 어렵다고한들 이보다 더 어려울까. 마음이 시리고 원기도 없으며 피가 뭉쳐서 혈액순환도 안 되고 담도 들어서 결리는 아픈 마음이 쉽게 천국으로 건너가지겠는가? 이 마음이라는 곳에도 뜸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아픈 마음에 뜸을 떠주는 내 마음의 건강지킴이 1순위인 친구가 있다. 이름은 촌스럽고 몸매는 멋지지도 않고 얼굴도 그다지 예쁘지 않지만 그 몸 속에 감춰진 마음은 양귀비보다도 더 아름답고 쑥뜸처럼 신비스런 친구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만나 지금까지 35년여를 거의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친구가 서울에서 살면 나도 서울에서 살게 되고, 내가 고향에서 살면 그 친구가 고향으로 내려왔다. 작정한 바도 아닌데 돌아보니 실과 바늘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의 세월을 함께 한 친구이니 보통 인연은 아닌 듯하다. 그것도 멀리 떨어지지도 못하고 지척에 살면서 희로애락을 서로 나누고 살았으니 말이다.
아이들, 친정이나 시댁일, 세상일로 속상하고 상처받으면 그 친구에게 모두 풀어 놓는다. 남편한테 화가 났을 때도 친구는 남편이 되어 내 못된 화풀이를 다 받아주고,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전화를 해도 귀찮아 하기는 커녕 오히려 나보다 더 속상해하며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어 슬픔도 속상함도 나눠 갖고 격해진 마음을 다독여주기도 한다. 또한 친정엄마가 되어서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서 가져오고 미싯가루나 생선, 반찬거리 등 새로운 것이 있으면 다 가져다 준다. 맛있는 거 혼자 먹어도 걸리고 좋은 곳을 혼자 가도 걸린다고 하니 친구에게 나는 영락없는 시집간 딸이다. 그래서 나는 친정엄마가 둘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 어머니에게 친정엄마라고 부른다. 묘한 관계다. 전생이란 것이 있다면 친구와 나는 자매사이였던가 아니면 모녀사이였던가 그랬을 것 같다
친구는 맘이 무척 여려서 아들이 입대영장을 받은 날부터 부대배치를 받을 무렵까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얼굴이 야위어갔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아들 이름만 나와도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안타깝기만 할 뿐 제대로 위로하지도 못했다. 직장일, 남편과 시댁일로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저 들어주기만 할 뿐 별달리 해 준 것이 없다. 마음으로도 물질로도 친구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기에는 나는 영 부족한 것 같아 늘 미안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가 하는 말이 이제는 너와 헤어져 살아라 하면 못살 것 같다고 하니 나도 친구에게 쑥뜸의 역할을 하기는 하는가 보다.
고사성어에 관포지교(管鮑之交)란 말이 있다. 중국 제 나라에 관중과 포숙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관중이 아무리 잘못을 하여도 그를 이해하고 믿어 주었다고 한다. 관중이 포숙을 가리켜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뿐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포숙의 마음이 바로 친구의 마음이고 관중이 한 말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믿어주고 이해해줄 사람!
내가 좋아하는 쑥뜸처럼 은은한 향기와 온열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이런 친구 덕분에 손끝부터 온몸으로 번지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친구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머니의 은혜는 저승까지 가서도 못 갚는다 했는데 나는 친구에게 입은 은덕을 벗어서 그 친구에게 아무리 입혀도 이승에서 다 못 벗고 저승까지 가져가야 할 것 같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이제야 철이 들어 친구와의 인연을 고마워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도 친구의 마음에 쑥뜸을 놓아줄 날이 있을 것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달라고 이야기하며 가끔이라도 찾아가 손에 놓는 뜸이라도 정성들여 떠 주어야겠다.
오늘도 친구는 항아리에서 노랗게 익은 된장을 퍼주면서 먹고 모자라면 더 가져가라고 한다. 들고 오는 된장보따리에서 된장 냄새가 아닌 향긋한 쑥 향이 퍼져 오르면서 마음속까지 훈훈해져 왔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한애근
1년 6개월 전부터 수지침을 배우고 있다. 손에 오장육부가 있어서 손만 잘 다스리면 병이 낫거나 건강해진다는 이치다. 웃고 왔다가 울고 간다는 수지침이라고 하지만 발병했던 병이 낫거나 증상이 완화되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렵게 공부한 보람도 느낀다.
병을 다스리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고 그에 따르는 재료 또한 많은데 그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재료가 바로 쑥뜸이다. 뜸에 불을 붙여 손바닥 위에 올려 놓으면 은은하고 향긋한 쑥 냄새가 나면서 빨갛게 타는데, 그 열기로 손이 따뜻해진다. 추운 겨울에 뜸을 뜨면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이 따뜻해지면서 하얀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듯 온 몸이 훈훈해진다. 요즘같이 날씨가 끈적끈적한 장마철에 뜸을 뜨면 습한 기운이 사라지고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지면서 마음까지 상쾌하고 개운해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몸이 따뜻한 사람은 질병에 잘 안 걸린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도 손발이 차가운 나는 잔병치레가 많다. 수지침을 배우고 뜸을 뜨면서 몸도 많이 건강해졌고 이제는 쑥뜸 예찬론자가 되었다. 이렇게 웬만한 잔병은 주로 뜸으로 치료를 한다. 나는 나의 건강지킴이 1순위로 쑥뜸을 꼽는데 망서리지 않는다.
몸의 건강은 대부분 마음이 주관한다고 한다. 마음에 병이 들면 육체도 따라서 병이 든다고 하니 아무리 웰빙음식을 먹고 열심히 운동하며 쑥뜸을 뜬다한들 건강이 제대로 지켜지겠는가? 천국과 지옥도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어디 이 마음이 호락호락한가?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농부가 장마철에 풀과 치르는 전쟁이 어렵다고한들 이보다 더 어려울까. 마음이 시리고 원기도 없으며 피가 뭉쳐서 혈액순환도 안 되고 담도 들어서 결리는 아픈 마음이 쉽게 천국으로 건너가지겠는가? 이 마음이라는 곳에도 뜸을 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아픈 마음에 뜸을 떠주는 내 마음의 건강지킴이 1순위인 친구가 있다. 이름은 촌스럽고 몸매는 멋지지도 않고 얼굴도 그다지 예쁘지 않지만 그 몸 속에 감춰진 마음은 양귀비보다도 더 아름답고 쑥뜸처럼 신비스런 친구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만나 지금까지 35년여를 거의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다. 친구가 서울에서 살면 나도 서울에서 살게 되고, 내가 고향에서 살면 그 친구가 고향으로 내려왔다. 작정한 바도 아닌데 돌아보니 실과 바늘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의 세월을 함께 한 친구이니 보통 인연은 아닌 듯하다. 그것도 멀리 떨어지지도 못하고 지척에 살면서 희로애락을 서로 나누고 살았으니 말이다.
아이들, 친정이나 시댁일, 세상일로 속상하고 상처받으면 그 친구에게 모두 풀어 놓는다. 남편한테 화가 났을 때도 친구는 남편이 되어 내 못된 화풀이를 다 받아주고,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전화를 해도 귀찮아 하기는 커녕 오히려 나보다 더 속상해하며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어 슬픔도 속상함도 나눠 갖고 격해진 마음을 다독여주기도 한다. 또한 친정엄마가 되어서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서 가져오고 미싯가루나 생선, 반찬거리 등 새로운 것이 있으면 다 가져다 준다. 맛있는 거 혼자 먹어도 걸리고 좋은 곳을 혼자 가도 걸린다고 하니 친구에게 나는 영락없는 시집간 딸이다. 그래서 나는 친정엄마가 둘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 어머니에게 친정엄마라고 부른다. 묘한 관계다. 전생이란 것이 있다면 친구와 나는 자매사이였던가 아니면 모녀사이였던가 그랬을 것 같다
친구는 맘이 무척 여려서 아들이 입대영장을 받은 날부터 부대배치를 받을 무렵까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얼굴이 야위어갔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아들 이름만 나와도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안타깝기만 할 뿐 제대로 위로하지도 못했다. 직장일, 남편과 시댁일로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저 들어주기만 할 뿐 별달리 해 준 것이 없다. 마음으로도 물질로도 친구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기에는 나는 영 부족한 것 같아 늘 미안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가 하는 말이 이제는 너와 헤어져 살아라 하면 못살 것 같다고 하니 나도 친구에게 쑥뜸의 역할을 하기는 하는가 보다.
고사성어에 관포지교(管鮑之交)란 말이 있다. 중국 제 나라에 관중과 포숙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관중이 아무리 잘못을 하여도 그를 이해하고 믿어 주었다고 한다. 관중이 포숙을 가리켜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뿐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포숙의 마음이 바로 친구의 마음이고 관중이 한 말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믿어주고 이해해줄 사람!
내가 좋아하는 쑥뜸처럼 은은한 향기와 온열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이런 친구 덕분에 손끝부터 온몸으로 번지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친구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머니의 은혜는 저승까지 가서도 못 갚는다 했는데 나는 친구에게 입은 은덕을 벗어서 그 친구에게 아무리 입혀도 이승에서 다 못 벗고 저승까지 가져가야 할 것 같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이제야 철이 들어 친구와의 인연을 고마워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도 친구의 마음에 쑥뜸을 놓아줄 날이 있을 것이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달라고 이야기하며 가끔이라도 찾아가 손에 놓는 뜸이라도 정성들여 떠 주어야겠다.
오늘도 친구는 항아리에서 노랗게 익은 된장을 퍼주면서 먹고 모자라면 더 가져가라고 한다. 들고 오는 된장보따리에서 된장 냄새가 아닌 향긋한 쑥 향이 퍼져 오르면서 마음속까지 훈훈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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