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없는 남자
2006.07.20 20:31
간 없는 남자
행촌수필문학회 유영희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의사에게 묘한 질문을 받으셨다고 한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많이 드십니까?”
목사를 향하여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시느냐는 의사의 도발적인 질문에 목사님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간에 심각한 질환이 있나보다고 멋대로 짐작하며 간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저는 술을 한 잔도 안 마시는데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 비해 간의 크기가 작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아내에게 너무 주눅이 들어 살다보니 간이 작아졌다며 은근히 아내를 향한 구박의 눈짓을 보내셨다. 온 교인들은 요즘처럼 험난한 세상에 간이 작은 목사님 밑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슬픔(?)을 견뎌야 했다.
문득 내 남편의 간은 얼마나 큰지 궁금해졌다. 평소의 행동을 대충 짚어 보아도 결코 작은 간이 아님은 분명하다. 달력에 빨간 글자가 두 개가 이어져 있는데도 감히 자신만의 시간을 멋대로 즐기고 있다. 새벽운동을 간다며 아내가 주무시는데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전화를 걸어댄다. 친정 오빠랑 저녁식사를 하고도 손위 처남이 밥값을 내도록 자리를 지키는 모습도 간이 작은 행동은 결코 아니다. 처가식구들 앞에서 서슴없이 아내의 흉을 보기도 한다. 더우면 더워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등 별의별 이유를 내세우며 술과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기다리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는 아내는 남편의 귀가시간을 제대로 알 턱이 없다.
이 정도면 그래도 간이 보통 크기라고 말할 것이다. 밖에서 시간을 보낼 만큼 다 보내고 나면 아내를 호출한다.
“우리 데이트 좀 해야지? 차 가지고 나와.”
부르는 시간이 빨라야 밤 열한시, 아니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니 자다가 불려 나가는 아내는 간 큰 남자의 행동에 부아가 치민다. 모시러 오기 전까지 귀가하지 않겠다는 숱한 전화협박에, 눈앞에 없는 남자에게 온갖 삿대질을 해대며 대문을 나서면 집 아래 화단에 퍼질러 앉아서 전화번호를 눌러대고 있다. 보통 사람보다 간의 크기가 두 배 이상은 되어야 할 수 있는 행동이 분명하다.
‘토고’와 월드컵 축구 첫 경기가 열리던 날, 간 큰 남자는 친구들과 길거리 응원을 나갔다. 집에서 혼자 축구경기를 봐야하는 아내는 안중에도 없었다. 빨간 티를 꺼내 입고 태극기까지 꺼내서 챙기는가 싶더니 간식으로 족발까지 배달해서 유유히 들고 나갔다.
‘해도 너무 한다. 누군 족발 먹을 줄 모르나? 그리고 그 즐거움을 아내와 나눌 생각은 꿈에도 안 들지?’
간이 작은 아내는 감히 입 밖으로 불만을 표출하지도 못하고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이왕 가는 길 즐겁게 다녀오란 인사까지 바쳤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가는 시각에 전화가 울렸다.
“여보! 여기 고속터미널 앞인데 택시를 도저히 잡을 수 없거든. 차 가지고 빨리 좀 와.”
‘토고’전이 끝난 시간이 도대체 몇 시였던가? 간 큰 남자의 명령 앞에 졸음이 머리 꼭대기까지 찼는데도 차를 몰고 부르는 장소를 향해 달려간다. 혼자도 아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을 전부 집 근처까지 배달(?)해야 한단다. 침묵의 외로운 1인 시위를 하며 아내는 자신의 작은 간만 탓할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의 간 크기에 분명 문제가 있지 싶다. 날마다 하루도 거른 적 없이 아침밥을 챙겨달라고 하질 않나, 음식의 간이 짜다 싱겁다고 투정까지 한다. 우리 목사님처럼 간이 작은 남자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집에선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다. 아내를 혼자 두고 하는 외출에는 허락이나 결재가 필요 없이 통보만 해도 되는 간 큰 남자. 그러면서 본인이 집에 있는 시간 아내가 외출할라치면 누구를 만나며 언제 들어오는지 시시콜콜 묻고 끝내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커질 대로 커져버린 남편의 간. 손이 닿는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크기를 조절이라도 하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난 돈을 들여서 수술로 간의 크기를 줄일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 아닌가.
평생 간 큰 남자와 살며, 간이 작아질 대로 작아져버린 나는 이미 오래 전에 포기한 상태이다. 냉수를 원하는 남자에게 얼음까지 동동 띄운 컵을 내밀며 있는 힘껏 간의 크기를 부풀려 말을 꺼낸다.
“여보! 나는 당신이 너무 부러워. 당신은 어쩌면 그리 복이 많을까?”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아내의 안색을 살피는 남편.
“당신은 뭔 복이 그리 많아서 나 같은 아내를 만났고, 나는 지지리 복도 없어 당신 같은 남편을 만났는지 몰라. 그래서 나는 복 많은 당신이 너무 부러워.”
간 큰 남자는 변명도 못하고 간이 작은 아내가 건네 준 컵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가장 공손한 자세로 물을 마시더니 아주 웃기는 고백을 했다.
“나는 당신이랑 살면서 간이 다 졸아버려서 간이 아예 없는 남자라고.”
행촌수필문학회 유영희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의사에게 묘한 질문을 받으셨다고 한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많이 드십니까?”
목사를 향하여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시느냐는 의사의 도발적인 질문에 목사님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간에 심각한 질환이 있나보다고 멋대로 짐작하며 간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저는 술을 한 잔도 안 마시는데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 비해 간의 크기가 작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아내에게 너무 주눅이 들어 살다보니 간이 작아졌다며 은근히 아내를 향한 구박의 눈짓을 보내셨다. 온 교인들은 요즘처럼 험난한 세상에 간이 작은 목사님 밑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슬픔(?)을 견뎌야 했다.
문득 내 남편의 간은 얼마나 큰지 궁금해졌다. 평소의 행동을 대충 짚어 보아도 결코 작은 간이 아님은 분명하다. 달력에 빨간 글자가 두 개가 이어져 있는데도 감히 자신만의 시간을 멋대로 즐기고 있다. 새벽운동을 간다며 아내가 주무시는데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전화를 걸어댄다. 친정 오빠랑 저녁식사를 하고도 손위 처남이 밥값을 내도록 자리를 지키는 모습도 간이 작은 행동은 결코 아니다. 처가식구들 앞에서 서슴없이 아내의 흉을 보기도 한다. 더우면 더워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등 별의별 이유를 내세우며 술과 친구와 시간을 보낸다. 기다리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는 아내는 남편의 귀가시간을 제대로 알 턱이 없다.
이 정도면 그래도 간이 보통 크기라고 말할 것이다. 밖에서 시간을 보낼 만큼 다 보내고 나면 아내를 호출한다.
“우리 데이트 좀 해야지? 차 가지고 나와.”
부르는 시간이 빨라야 밤 열한시, 아니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니 자다가 불려 나가는 아내는 간 큰 남자의 행동에 부아가 치민다. 모시러 오기 전까지 귀가하지 않겠다는 숱한 전화협박에, 눈앞에 없는 남자에게 온갖 삿대질을 해대며 대문을 나서면 집 아래 화단에 퍼질러 앉아서 전화번호를 눌러대고 있다. 보통 사람보다 간의 크기가 두 배 이상은 되어야 할 수 있는 행동이 분명하다.
‘토고’와 월드컵 축구 첫 경기가 열리던 날, 간 큰 남자는 친구들과 길거리 응원을 나갔다. 집에서 혼자 축구경기를 봐야하는 아내는 안중에도 없었다. 빨간 티를 꺼내 입고 태극기까지 꺼내서 챙기는가 싶더니 간식으로 족발까지 배달해서 유유히 들고 나갔다.
‘해도 너무 한다. 누군 족발 먹을 줄 모르나? 그리고 그 즐거움을 아내와 나눌 생각은 꿈에도 안 들지?’
간이 작은 아내는 감히 입 밖으로 불만을 표출하지도 못하고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이왕 가는 길 즐겁게 다녀오란 인사까지 바쳤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가는 시각에 전화가 울렸다.
“여보! 여기 고속터미널 앞인데 택시를 도저히 잡을 수 없거든. 차 가지고 빨리 좀 와.”
‘토고’전이 끝난 시간이 도대체 몇 시였던가? 간 큰 남자의 명령 앞에 졸음이 머리 꼭대기까지 찼는데도 차를 몰고 부르는 장소를 향해 달려간다. 혼자도 아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을 전부 집 근처까지 배달(?)해야 한단다. 침묵의 외로운 1인 시위를 하며 아내는 자신의 작은 간만 탓할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의 간 크기에 분명 문제가 있지 싶다. 날마다 하루도 거른 적 없이 아침밥을 챙겨달라고 하질 않나, 음식의 간이 짜다 싱겁다고 투정까지 한다. 우리 목사님처럼 간이 작은 남자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집에선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다. 아내를 혼자 두고 하는 외출에는 허락이나 결재가 필요 없이 통보만 해도 되는 간 큰 남자. 그러면서 본인이 집에 있는 시간 아내가 외출할라치면 누구를 만나며 언제 들어오는지 시시콜콜 묻고 끝내 불만스런 표정을 짓는 커질 대로 커져버린 남편의 간. 손이 닿는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크기를 조절이라도 하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엄청난 돈을 들여서 수술로 간의 크기를 줄일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 아닌가.
평생 간 큰 남자와 살며, 간이 작아질 대로 작아져버린 나는 이미 오래 전에 포기한 상태이다. 냉수를 원하는 남자에게 얼음까지 동동 띄운 컵을 내밀며 있는 힘껏 간의 크기를 부풀려 말을 꺼낸다.
“여보! 나는 당신이 너무 부러워. 당신은 어쩌면 그리 복이 많을까?”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아내의 안색을 살피는 남편.
“당신은 뭔 복이 그리 많아서 나 같은 아내를 만났고, 나는 지지리 복도 없어 당신 같은 남편을 만났는지 몰라. 그래서 나는 복 많은 당신이 너무 부러워.”
간 큰 남자는 변명도 못하고 간이 작은 아내가 건네 준 컵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가장 공손한 자세로 물을 마시더니 아주 웃기는 고백을 했다.
“나는 당신이랑 살면서 간이 다 졸아버려서 간이 아예 없는 남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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