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 정비공장에 간다

2006.07.22 13:48

유영희 조회 수:130 추천:25

나는 다시 정비공장에 간다
행촌수필 유영희



인조인간인 나의 왼쪽 무릎부속이 너무 낡았단다. 하긴 1989년도에 삽입한 부속이니 오랜 기간 잘 써먹었다. 올해를 넘기도록 방치하면 위, 아래 모든 부속을 통째로 갈아야하는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해야 한단다. 다행이 부품교환 시기를 적절히 감지해서 간단히 손을 보면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별 지장이 없다고 한다.

처음 교체작업을 시작한 이래 열두 번째의 공장 입고다. 타고 다니던 차가 이렇게 말썽을 부렸다면 진즉 폐차시키고 새 차로 바꿨을 것이다. 살아 숨 쉬는 인조인간은 그 호흡이 끝나는 날까지 폐기처분할 수가 없으니 끊임없이 하자보수를 해야만 한다. 겪어야 하는 본인도 괴롭지만 지켜보는 입장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5월에 단골 정비공장에서 보수 날짜를 잡았었다.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정신을 반쯤 빼놓고 살아온 것 같다. 잠시도 몸과 마음을 가만히 두질 못한 좌불안석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자다가도 눈이 떠지면 잠을 이루지 못하여 밤을 새곤 하였다. 더디 가는 시간을 이기려고 연신 자판을 두드리며 무언가를 써대곤 하였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못 견뎌 끊임없이 사람을 찾아 수다를 떨기도 하였다. 마음을 달달 볶은 결과 지독한 몸살을 앓기도 했었다.

무엇을 생각했던가? 삶을 진정 사랑하며 살아있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겼던가? 수술을 앞두고 기도의 무릎을 꿇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부족함 없는 사랑을 주고받으며,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면서도 왜 마음은 공허로 가득 차 있었을까? 보수할 방법조차 없는  이웃들에 비하면 그것도 다행이거늘 왜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분노! 내 안에서 신을 향한 팽창된 분노가 꿈틀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삶에 대하여 원망이 내 본체 속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원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본체를 내면 깊이 감추어 놓고, 껍데기가 설치고 다녔으니 양은냄비 두드리듯 시끄러운 소리들만 가득할 수밖에……. 신실한 척, 거룩한 척, 입술로는 감사를 말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정작 닥친 현실 앞에서 나는 신을 향해 분을 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숨 막힐 지경인데 하나님의 낯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하는 의구심에 믿음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나를 향한 사랑의 방법이 꼭 이것이어야 했다면 차라리 내 생명의 끈을 놓아 달라고 애원도 했었다.

이제 몸부림을 접기로 했다. 진통제 없이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과, 열두 번째의 수술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피하지 못할 길이 분명한데 더 이상의 몸부림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차라리 원망과 분노도 접어버리고 감사로 이 길을 가련다.
과거의 아픔과 현재의 아픔 그리고 미래의 아픔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나는 용서하련다. 아니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을 때까지 나는 하나님에게 무조건 순응하련다.

이럴 때 경험이 많다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기술자의 아주 작은 실수가 엄청난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도 경험으로 안다. 입고에서 출고까지 모든 과정을 훤히 꿰뚫고 있어 두려움이 더 크다. 그래서 기도를 부탁한다. 나를 담당하는 모든 의료진들의 작은 감각 하나까지도 주장하시어 실수나 착오가 없는 판단을 갖게 해주시라고……. 땅에서 내 소명이 끝나는 그날까지 보수를 받는 인조인간인 나의 다리가 예전보다 더 튼튼한 다리가 되게 해 주시라고…….

나는 또다시 정비공장에 간다. 단골 정비공장에 믿을만한 단골 기술자가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어차피 밟지 않으면 안 되는 길, 이번 하자보수에서는 누구를 만나고 어떤 소득을 얻게 될지 기대를 안고 가리라.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내 보금자리인 이 전주라는 도시의 시민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자보수 날짜를 잡은 날부터 미리미리 모든 준비를 해 놓았으니까……. 급한 결재거리가 있다면 전화로 처리해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