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불러서 아름다운 여자
2006.07.25 10:35
배가 불러서 아름다운 여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조 종 영
여성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뜨거운 바람이 거세다. 오직 아름답고 날씬해지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인내와의 전쟁이다. 잃어버린 아름다움, 그리고 더 아름다운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이다. 이런 세상에 배가 불룩하게 나와 가지고서, 어찌 아름답게 봐주기를 기대할 것인가.
예전엔 남자의 배는 재력과 인격의 척도이고, 여자의 살집은 부잣집 맏며느리 감으로서의 필수요소였다. 사람 마음이란 본래가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나도 인간의 후예인지라 사람의 체형에 대한 인식 기준이 슬그머니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배 나온 마누라만 내 눈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요즘 사람들은 배나오는 것을 온 몸으로 거부하는 세상이다. 그것이 건강과 아름다움의 주적이 아닌가.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는 배가 나오고 들어간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라가 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젊은 부부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우선 여자의 배가 불러야 출산을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배가 나와야 할 사람은 안나오고, 안 나와도 될 사람이 배가 나와서 고민들이다. 그러니 지금 배가 나와서 고민하는 배 타령은 진짜 배부른 소리가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나라 가임부부의 출산율이 1.08명이라는 현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가 되었다. 통계청의 인구자료를 보면 매년 신생아 출생이 엄청나게 줄어들고 있다. 1995년도에 72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는데, 작년에는 43만 8천명으로 10년 동안에 약 28만 3천명이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원인으로 해서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일까? 아마, 여성들이 출산을 꺼려하는 데에는 사회적 활동의 제한이나 육아, 교육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게다. 그러나 그 중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욕망도 그 원인의 하나가 아닐까.
정부는 40여 년 전부터 출산억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1966년에 세 자녀 갖기 운동에서 1971년에는 둘 낳기 운동으로 출산기준이 더 줄었다. 그리고 정책의 전위대인 가족계획협회사람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인구팽창으로 지구가 폭발할 지경이니 애 좀 낳지 말라고 설득하고 다녔었다. 그래서 가임부부가 원하면 아예 생식기능이 제 구실을 못하게 수술을 해주기도 했다. 또 예비군훈련 때 그런 수술을 받으면, 그날 훈련까지 면해주었으니 얼마나 극성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이었는지 짐작할만 할 것이다.
그런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정부는 반대로 출산장려정책을 요란하게 내놓고 있다. 제발 애를 낳지 말라던 ‘가족계획 협회’는, ‘인구보건복지협회’라고 이름마저 바꾸었다. 그리고 출산 장려사업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업무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이제 정부는 출산휴가에 육아휴가까지, 그리고 장려금 등등의 혜택을 내세우며 애를 많이 낳으라고 발 벗고 나서게 되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아니 느낄 수가 없다.
요즘에 배 나오는 것이 아무리 아름다움의 적이라 해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배 나오는 것도 나름이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배가 나와서 아름다운 경우도 있다. 어차피 인식의 기준이란 말뚝처럼 꽉 박혀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배 나왔다고 반드시 아름답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엊그제 집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게 되었다. 나는 버스에 타자마자 아주 괜찮은 자리를 잡았다. 내가 북문까지 가려면 한 30분 정도가 걸린다. 요즘에는 자리 양보가 아주 인색한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운 좋게 1인석에 내리는 문도 비교적 가깝고, 또 의자 옆에 붙잡기 좋은 파이프 기둥까지 서있는 최고의 좌석을 잡았다. 그때 나는 속으로 꼬부라진 노인이 내 옆에 오지 않는 한, 절대 자리 양보는 없다고 홀로 선언까지 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두 번째 정거장에 도착해서 승객을 태우기 시작했다. 대여섯 명이 앞문으로 올라오는 것 같더니 한 여자가 내 옆의 파이프를 잡고 서있는 것이었다. 그 기둥처럼 세워진 파이프는 여자들이 의지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앉아있는 내가 옆에 서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여자의 남산만한 배였다. 그것은 보통 배가 아니었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건강의 적인 그런 배가 분명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의 미래가 달린 희망의 배였고, 반드시 보호 받아야 할 아름답고 성스러운 생명의 배였다. 내게 오늘 자리양보란 없다는 자신의 선언은 어느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여기 앉으세요.”
그 배 부른 젊은 여인은 한 번 사양한 뒤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금암동에서 내리며,
“감사 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그 부른 배를 더 내밀며 자랑스레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모습이 진정한 여자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이 떠난 자리에 다시 앉는 내 마음이 괜히 흐뭇했다. 그리고 그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배가 불러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내 눈앞에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의 수정 같은 눈망울을 남기고 갔던 것이다. (2006. 7. 23.)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조 종 영
여성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뜨거운 바람이 거세다. 오직 아름답고 날씬해지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인내와의 전쟁이다. 잃어버린 아름다움, 그리고 더 아름다운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이다. 이런 세상에 배가 불룩하게 나와 가지고서, 어찌 아름답게 봐주기를 기대할 것인가.
예전엔 남자의 배는 재력과 인격의 척도이고, 여자의 살집은 부잣집 맏며느리 감으로서의 필수요소였다. 사람 마음이란 본래가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나도 인간의 후예인지라 사람의 체형에 대한 인식 기준이 슬그머니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배 나온 마누라만 내 눈총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요즘 사람들은 배나오는 것을 온 몸으로 거부하는 세상이다. 그것이 건강과 아름다움의 주적이 아닌가.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는 배가 나오고 들어간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라가 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젊은 부부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우선 여자의 배가 불러야 출산을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배가 나와야 할 사람은 안나오고, 안 나와도 될 사람이 배가 나와서 고민들이다. 그러니 지금 배가 나와서 고민하는 배 타령은 진짜 배부른 소리가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나라 가임부부의 출산율이 1.08명이라는 현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가 되었다. 통계청의 인구자료를 보면 매년 신생아 출생이 엄청나게 줄어들고 있다. 1995년도에 72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는데, 작년에는 43만 8천명으로 10년 동안에 약 28만 3천명이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원인으로 해서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일까? 아마, 여성들이 출산을 꺼려하는 데에는 사회적 활동의 제한이나 육아, 교육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게다. 그러나 그 중에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욕망도 그 원인의 하나가 아닐까.
정부는 40여 년 전부터 출산억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1966년에 세 자녀 갖기 운동에서 1971년에는 둘 낳기 운동으로 출산기준이 더 줄었다. 그리고 정책의 전위대인 가족계획협회사람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인구팽창으로 지구가 폭발할 지경이니 애 좀 낳지 말라고 설득하고 다녔었다. 그래서 가임부부가 원하면 아예 생식기능이 제 구실을 못하게 수술을 해주기도 했다. 또 예비군훈련 때 그런 수술을 받으면, 그날 훈련까지 면해주었으니 얼마나 극성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이었는지 짐작할만 할 것이다.
그런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정부는 반대로 출산장려정책을 요란하게 내놓고 있다. 제발 애를 낳지 말라던 ‘가족계획 협회’는, ‘인구보건복지협회’라고 이름마저 바꾸었다. 그리고 출산 장려사업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업무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이제 정부는 출산휴가에 육아휴가까지, 그리고 장려금 등등의 혜택을 내세우며 애를 많이 낳으라고 발 벗고 나서게 되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아니 느낄 수가 없다.
요즘에 배 나오는 것이 아무리 아름다움의 적이라 해도,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배 나오는 것도 나름이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배가 나와서 아름다운 경우도 있다. 어차피 인식의 기준이란 말뚝처럼 꽉 박혀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배 나왔다고 반드시 아름답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엊그제 집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게 되었다. 나는 버스에 타자마자 아주 괜찮은 자리를 잡았다. 내가 북문까지 가려면 한 30분 정도가 걸린다. 요즘에는 자리 양보가 아주 인색한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운 좋게 1인석에 내리는 문도 비교적 가깝고, 또 의자 옆에 붙잡기 좋은 파이프 기둥까지 서있는 최고의 좌석을 잡았다. 그때 나는 속으로 꼬부라진 노인이 내 옆에 오지 않는 한, 절대 자리 양보는 없다고 홀로 선언까지 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두 번째 정거장에 도착해서 승객을 태우기 시작했다. 대여섯 명이 앞문으로 올라오는 것 같더니 한 여자가 내 옆의 파이프를 잡고 서있는 것이었다. 그 기둥처럼 세워진 파이프는 여자들이 의지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앉아있는 내가 옆에 서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여자의 남산만한 배였다. 그것은 보통 배가 아니었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건강의 적인 그런 배가 분명 아니었다. 그것은 나라의 미래가 달린 희망의 배였고, 반드시 보호 받아야 할 아름답고 성스러운 생명의 배였다. 내게 오늘 자리양보란 없다는 자신의 선언은 어느새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여기 앉으세요.”
그 배 부른 젊은 여인은 한 번 사양한 뒤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금암동에서 내리며,
“감사 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그 부른 배를 더 내밀며 자랑스레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모습이 진정한 여자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이 떠난 자리에 다시 앉는 내 마음이 괜히 흐뭇했다. 그리고 그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배가 불러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내 눈앞에 건강하고 귀여운 아기의 수정 같은 눈망울을 남기고 갔던 것이다. (2006.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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