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신단수 아래에서 등단패를 받고

2006.08.10 18:07

이민숙 조회 수:111 추천:30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서 등단패를 받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중) 이민숙



전주에서 강원도 태백까지는 참으로 먼 천릿길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주위를 빙 돌아가며 먹다 가운데를 남겨두고 조금씩 음미하며 먹듯, 내 마음 깊은 곳에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고 싶었던 곳이 바로 태백이었다.

한겨울이면 눈꽃열차를 타고 환상적인 태백의 눈꽃축제에 참석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만을 위한 시간이 허락되는 날, 그 눈꽃 속에 나를 파묻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雪國)>에서처럼 하염없이 눈이 내려 온 세상이 잠시 멈추어버리고 태백시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때였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한여름 삼복더위 무렵에 수필가로서 등단소식을 들었고, 겨울이 아니라 여름에 내가 가고 싶었던 그 태백에서 신인상 시상식을 갖는다는 초대를 받았다. 겨울에 태백을 찾고 싶었던 나는 10여 시간이나 관광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휘돌아 여름에 태백에 도착했다.

태백, 그곳은 어쩌면 축제를 열려고 존재하는 도시 같았다. 해바라기축제, 태백제, 한강대제, 쿨 시네마, 낙동대제, 눈 축제, 철쭉제 등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그만큼 태백은 철따라 멋진 축제를 벌여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도시였다. 내가 평소에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태백시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인 해발 855미터에 위치한 추전역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기쁨이었다. 다만 겨울이 아니라 여름 한 복판에 찾았던 것이 아쉬웠지만.

태백은 감출 수 없는 과거를 안고 사는 도시였다. 지금은 그처럼 관광지로가 되었지만 한때는 광부들의 옷가지를 세탁하느라 항상 검은 물이 흐른 냇물이 있던 곳이었다. 추전역으로 들어서는 길목의 폐광(廢鑛)에서는 아직도 검은 물이 흐르고 있어 지난날 광부들의 아픈 상처를 보여주고 있었다.

태백의 밤은 벌써 여름이 물러나고 초가을이 차지하고 있었다. 산등성이를 넘어 마중 나온 달과 함께 이미 가을이 다가와 있었다. 하늘의 별들이 머리 위로 마구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밤, 문우들끼리 도란거리며 주고받는 술잔은 낭만과 우정을 실어 나르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이튿날에는 우리나라 3대강(江) 중 두 강의 발원지(發源地)에 들렀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연못과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였다. 특히 검룡소의 물은 명경지수(明鏡止水)였다. 손이 시려 오래 담글 수 없을 정도로 냉기가 도는 맑은 물이었다. 두 손으로 한 움큼 물을 퍼 마시니 더위가 천리만리나 도망가 버렸다.
문득 내 삶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궁금해졌다. 앞으로 나는 어디로 얼마만큼 더 흘러가야 푸른 바다를 만날 수 있을까 헤아려지기기도 했다.
아직 숙성이 덜된 나는 천릿길을 달려가 태백에서 신인상 등단패를 받고 작가로서의 책임을 부여받았다. 나는 이제 멀리 보였던 수필의 길에 한 걸음 더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다. 도도히 흐르는 세월을 디딤돌 삼아 묵묵히 절차탁마(切磋琢磨)해서 더 좋은 작품을 빚는 게 내가
가해야 할 길임을 깨닫는다.

이 밤에도 저렇게 멈추지 않고 만월이 된 저 달처럼 내 앞에 주어진 ‘수필가의 길’을 나도 저 달처럼 묵묵히 걸어 갈 것이다.

(2006.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