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부엌 사이
2019.02.08 07:35
방과 부엌 사이
글자의 행을 나누다 말고
비타민 먹으러 부엌에 나갔다가
비타민은 안 먹고 물만 먹고 방으로 들어왔다.
물만 먹고 온지도 모르고 다시 앉아 한참을 딴짓하는 동안
딴짓이 나를 열심히 바라본다
글자들이 나를 보고 있는 화면에는 초점이 흐려진 글자만 나갔다 들어왔다 바쁘다
방금 부엌과 방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오래도록 나를 우려내는 것을 글자는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나도 나를 주저하다
눈을 잠시 창밖 풍경 속에 잠입시킨다
나를 받아주는 문장들은 눈치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정신에서 딴 정신으로 왕복하는 것을 모른다
어젯밤 꿈이 잠시 떠오르나 싶다니
무언으로 쟁쟁한 눈빛이 보이는가 싶더니
뇌리에 끼어 있는 하얀 기억을 줄기 같은 갈고리가 확 낚아채 간다
생각과 행동을 함께 연결하지 못하고 물만 먹고 들어온 나는
다시 나를 주저하고
너무 더디게 돌아온 내 정신은 지금 쓸데없이 고요하다
글자의 행을 다시 붙인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3 | 이성복의 남해금산 작품 감상 [2] | 정국희 | 2017.01.17 | 412 |
42 | Drive Through | 정국희 | 2017.01.18 | 20 |
41 | 이상의 날개 작품 감상 | 정국희 | 2017.01.21 | 986 |
40 | 한국 현대시 문학사 | 정국희 | 2017.01.26 | 807 |
39 | 김종삼의 시 민간인 감상 | 정국희 | 2017.02.05 | 272 |
38 | 이영광의 버들집 시 감상 | 정국희 | 2017.02.20 | 276 |
37 | 미주시학 '이 계절의 시' '다음생이 있다면' | 정국희 | 2017.02.28 | 82 |
36 | 친정집을 나서며 [2] | 정국희 | 2017.03.05 | 61 |
35 | 정현종의 시 두 편 감상 | 정국희 | 2017.04.06 | 310 |
34 | 자갈치 외 4편 | 정국희 | 2017.04.16 | 94 |
33 | '목줄' 시작 메모 | 정국희 | 2017.04.28 | 61 |
32 | 김수영의 시 '돈' 감상 | 정국희 | 2017.05.05 | 277 |
31 | 배정웅시인의 시 감상 | 정국희 | 2017.10.09 | 103 |
30 | 유목론에서 다양체의 원리 | 정국희 | 2018.01.13 | 492 |
29 | 순환의 힘 | 정국희 | 2019.01.28 | 34 |
28 | 알함브라의 사랑 | 정국희 | 2019.01.29 | 46 |
27 | 왼쪽을 위한 서시 | 정국희 | 2019.01.30 | 43 |
26 | 로스앤젤레스, 천사의 땅을 거처로 삼았다 | 정국희 | 2019.02.03 | 71 |
25 | 늑대의 조시 | 정국희 | 2019.02.08 | 54 |
» | 방과 부엌 사이 | 정국희 | 2019.02.08 | 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