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부엌 사이
2019.02.08 07:35
방과 부엌 사이
글자의 행을 나누다 말고
비타민 먹으러 부엌에 나갔다가
비타민은 안 먹고 물만 먹고 방으로 들어왔다.
물만 먹고 온지도 모르고 다시 앉아 한참을 딴짓하는 동안
딴짓이 나를 열심히 바라본다
글자들이 나를 보고 있는 화면에는 초점이 흐려진 글자만 나갔다 들어왔다 바쁘다
방금 부엌과 방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오래도록 나를 우려내는 것을 글자는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나도 나를 주저하다
눈을 잠시 창밖 풍경 속에 잠입시킨다
나를 받아주는 문장들은 눈치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정신에서 딴 정신으로 왕복하는 것을 모른다
어젯밤 꿈이 잠시 떠오르나 싶다니
무언으로 쟁쟁한 눈빛이 보이는가 싶더니
뇌리에 끼어 있는 하얀 기억을 줄기 같은 갈고리가 확 낚아채 간다
생각과 행동을 함께 연결하지 못하고 물만 먹고 들어온 나는
다시 나를 주저하고
너무 더디게 돌아온 내 정신은 지금 쓸데없이 고요하다
글자의 행을 다시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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