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좋은시/역삼동 안마사
2006.05.18 09:22
-곽문연, 「역삼동 안마사」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몸에 뭉쳐 있는 아픈 내력들이 슬슬 풀린다
돌아누우세요 사람의 몸이란 참 기특하지요
이 험난한 세상의 어둠을 다 먹어치우니 말이에요
더듬더듬 그녀의 손길이 통증을 짚어낸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알듯 말듯 미소짓는 그녀
차라리 못보고 사는게 행복이죠
내 손길로 뭉친 혈을 풀다 보면
내 눈 속의 어둠이 세상을 읽어요
그녀가 몸에 부황을 뜬다
몸이 몸을 읽는다
독한 것일수록 부드럽게 다스려야 해요
아픈 곳을 다독이면 얽힌 고리가 풀리지요
지그시 누르는 손가락에
내 몸 켜켜이 쌓인 욕심이 지워진다.
―김학철,「떠나 보내기」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은
가을 꽃이 피는 것 때문이 아니다
불꽃 일듯이
화알활 단풍이 타고 있어서가 아니다
낡은 옷솔기마다 네 숨결 묻어두고
너를 보내는 초저녁 어스름
동굴같은 가슴에
울음만 서늘하게 돌아온다는 걸
내가 이미 알기 때문이다
그 저녁을
꽃들이 떨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지명해도
네가 선뜻 나설 것이라는 걸
내가 이미 알기 때문이다
너를 보내는 절망이 깊어질수록
오랜 침잠으로 빠져들 것이고
나의 실어증 또한 깊어질 것이다
너를 위한 말들을 버리고 나면
노래하고 싶은 충동까지도 창연愴然해질 것이다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은
네가 다시 살아서 산소처럼 눈을 뜨리라는 것을
내가 이미 알기 때문이다.
-2006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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