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中에서

2007.01.05 12:22

미문이 조회 수:921 추천:21

나이를 먹어 좋은 일이 많습니다.

조금 무뎌졌고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그렇습니다.
이젠, 사람이 그럴수 도 있지.
하고 말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설사 조금 오래 걸려도..
그것이 지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대가 일어날 수도 있고,
비겁한 위인과 순결한 배반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고 꼭 그대를 내곁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

나이를 많이 먹은 지금 나는 고개를 저어봅니다.
잘못된 것이었다 해도 그것 역시 사랑일 수는 없을까요?
그것이 비참하고 쓸쓸하고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현실만 남기고 끝났다 해도,
나는 그것을 이제 사랑이었다고 이름 붙여주고 싶습니다.
나를 버리고..






빗물 고인 거리에 철벅거리며 엎어진
내게 이별도 남기지 않은 채
가버렸던 그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지요.





그가 죽는다는데 어쩌면
그가 나를 모욕하고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렸던 날들만 떠오르다니.

저 자신에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리고 그의 죽음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 역시 진실이었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쉬운 용서의 길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끈질기며 이기적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다만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직 다 용서?수 없다 해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입니다.
우리 생애 한 번이라도 진정한 용서를 이룰 수 있다면,
그 힘겨운 피안에 다다를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이별로
향하는 길이라 해도 걸어가고 싶습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쉬운 용서의 길로
이끌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끈질기며 이기적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때의 그와 그때의 나를
이제 똑같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똑같이 말입니다..





기억 위로 세월이 덮이면
때로는 그것이 추억이 될 테지요.

삶은 우리에게 가끔 깨우쳐줍니다.
머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주인이라고..




공지영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中에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017 문학축제 김종회 교수 강의 원고 미주문협 2017.08.24 256
공지 미주문학 USC 데어터베이스 자료입니다. 미주문협 2017.08.14 235
74 지식인의 말 미문이 2007.10.09 906
73 ‘문학관광’ 시대 활짝 미문이 2007.09.08 908
72 두 편의 시가 주는 의미-성기조 미문이 2007.08.20 947
71 시인 선서(1990년)/김종해 미문이 2007.08.13 975
70 시인과 사랑/정용진 미문이 2007.07.23 1117
69 올해 문학계 ‘대표주자’ 누굴까 미문이 2007.07.03 939
68 밀양 - 허영과 탐욕의 잘못된 만남이 빚어낸 비극 - 미문이 2007.06.06 1186
67 정다혜 시집 '스피노자의 안경' 미문이 2007.05.21 1535
66 시를 쓰려거든 여름 바다처럼 /이어령) 미문이 2007.05.16 939
65 다시 2007년 기약한 고은 시인 "그래도 내 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 미문이 2007.04.25 1009
64 윤동주 3형제는 모두 시인이었다 미문이 2007.04.25 1407
63 문단 대가들 장편 들고 잇달아 귀환… 침체 문학계에 활력소 미문이 2007.04.25 1019
62 이문열 씨! 멋진 보수주의자가 되세요 미문이 2007.04.25 1006
61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살펴보니… 미문이 2007.04.25 1254
60 도대체 순수란 무엇인가? -한국 문학에서 순수의 의미 미문이 2007.03.21 1067
59 미당의 죽음을 통해서 본 '순수문학'의 허구성에 대한 단상(短想) 미문이 2007.03.21 1185
58 순수문학과 대중 미문이 2007.03.21 1198
57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 신선한 활동 미문이 2007.03.07 1132
56 무차별 기형도 따라하기/김진학 미문이 2007.03.07 1112
55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마광수 미문이 2007.02.12 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