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나를 살린다/이대흠
2007.01.08 03:47
-60년만에 한번 핀다는 대나무꽃.
상처가 나를 살린다 / 이대흠
모서리를 돌아서다가 튀어 나온 돌멩이를 보지 못하고
무릎이 찍혔다 아직 손등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는데
몇 방울 피 맺힌 것을 보고 아내는 칠칠맞다고 했다
나는 몸에 큰 흉터 있으면 오래 살 거라던 점쟁이의
말을 들어 다 내가 살아 남으려고 액땜한 거라 말했다
기억의 아슴한 산모롱이를 돌아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몸의 어디건 상처 하나는 가지고 살아왔다.
뒤돌아보면 상처의 길이 아득하다 지나간 희망이나
사랑은 모두 내 몸에 붉은 금을 그었다 아프다 내
오랜 사랑인 그대를 생각하면 세상을 다시 살고 싶어
진다 아픈 것이 어디 내 몸뿐이랴 내 발에 채인 돌은
느닷없는 발길질에 얼마나 놀랐을까 나와 만나 깨어
지거나 버려진 자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나와 만나면
모든 것이 망가졌다 타버린 폐차된 자동차
망가진, 그대
으스러지거나 커다란 흉터가 남은 게 아닌데
작은 상처에 아파했던 것은 죄스러운 일이다
혼자인 밤이면 상처 입은 짐승들이 주위를
가득 채운다
따듯하다
이대흠 - 1968년 전남 장흥 만손리 출생. 서울예전 문예
창작과 졸업. 1994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제암산을 본다」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함. '시힘'동인.
시집'눈물 속에 고래가 산다', '상처가 나를 살린다'등.
이대흠의 시는 현실과 꿈, 집단과 개인, 좌와 우 사이의
터질 듯한 긴장 한가운데 있다. 그의 시만큼 언어의 뼈대와
살점이 고루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시를 나는 근래에 만나보지
못하였다. 그의 시가 휘발유 같은 상상력을 드러낼 때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노련한 장인적 세공 기술을 보일 때 우리의
정신은 서늘해진다. 뭔가 큰일을 저지를 것 같은 시인 한 사람이
출현했다. ―안도현 시인
이대흠 시인은 객체인 대상들을 통해 주체인 나의 허구성을 밝혀
내려 한다. 그는 소외된 채 소멸해가는모든 사물들, 사람들, 시대의
고독과 상처를 냉철하게 읽어내고 거기에 자신의 의식을 투영시켜
뒤섞고는 살짝 비틀어놓는다. 이러한 시작 과정을 통해 그는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거쳐가는 세상 모든 것들의 존재가치와 비극성을
동시에 파헤치려 한다.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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