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려거든 여름 바다처럼 /이어령)
2007.05.16 09:02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그 운(韻)은 출렁이는 파도에서 배울 것이며
그 율조(律調)의 변화는 저 썰물과 밀물의 움직임에서 본뜰 것이다.
작은 물방울의 진동(振動)이 파도가 되고
그 파도의 진동이 바다 전체의 해류(海流)가 되는
신비하고 신비한 무한의 연속성으로 한 편의 시(詩)를 완성하거라.
당신의 시(詩)는 늪처럼 썩어가는 물이 아니라,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詩)의 의미는 바닷물고기처럼 지느러미와
긴 꼬리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뭍에서 사는 짐승과 나무들은 표층(表層) 위로
모든 걸 드러내 보이지만 바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작은 조개일망정 모래에 숨고, 해조(海藻)처럼 물고기 떼들은
심층(深層)의 바다 밑으로 유영(遊泳)한다.
이 심층 속에서만 시(詩)의 의미는 산호처럼 값비싸다.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바다는 대기(大氣)처럼 쉽게 더워지지 않는다.
늘 차갑게 있거라. 빛을 받아들이되 늘 차갑게 있거라.
구름이 흐르고 갈매기가 난다 하기로, 그리고 태풍이
바다의 표면(表面)을 뒤덮어 놓는다 할지라도
해저(海底)의 고요함을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고요 속에 닻을 내리는 연습을 하거라.
시(詩)를 쓴다는 것은 바로 닻을 던지는 일과도 같은 것이니….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바다에는 말뚝을 박을 수도 없고, 담장을 쌓을 수도 없다.
아무 자국도 남기지 않는다. 바다처럼 텅 비어 있는
공간(空間)이야말로 당신이 만드는 시(詩)의 자리이다.
역사(歷史)까지도, 운명(運命)까지도 표지(標識)를 남길 수 없는 공간….
그러나 그 넓은 바다가, 텅 빈 바다가 아주 작은 진주(眞珠)를 키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초승달이 자라나고 있듯이
바다에서 한 톨의 진주가 커 가고 있다.
시(詩)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한 방울의 눈물을 티운다.
그것을 결정(結晶)시키고 성장(成長)시킨다.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 바다처럼 하거라.
바다는 무한(無限)하지는 않지만 무한한 것처럼 보이려 한다.
당신의 시(詩)는 영원(永遠)하지 않지만 영원한 것처럼 보이려 한다.
위대(偉大)한 이 착각(錯覺) 때문에 거기서 헤엄치는 사람은
늘 행복(幸福)하다.
- 문학세계사 발행. '말'에서 -
('유봉희 문학서재'에서 퍼옴)
그 운(韻)은 출렁이는 파도에서 배울 것이며
그 율조(律調)의 변화는 저 썰물과 밀물의 움직임에서 본뜰 것이다.
작은 물방울의 진동(振動)이 파도가 되고
그 파도의 진동이 바다 전체의 해류(海流)가 되는
신비하고 신비한 무한의 연속성으로 한 편의 시(詩)를 완성하거라.
당신의 시(詩)는 늪처럼 썩어가는 물이 아니라,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詩)의 의미는 바닷물고기처럼 지느러미와
긴 꼬리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뭍에서 사는 짐승과 나무들은 표층(表層) 위로
모든 걸 드러내 보이지만 바다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작은 조개일망정 모래에 숨고, 해조(海藻)처럼 물고기 떼들은
심층(深層)의 바다 밑으로 유영(遊泳)한다.
이 심층 속에서만 시(詩)의 의미는 산호처럼 값비싸다.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바다는 대기(大氣)처럼 쉽게 더워지지 않는다.
늘 차갑게 있거라. 빛을 받아들이되 늘 차갑게 있거라.
구름이 흐르고 갈매기가 난다 하기로, 그리고 태풍이
바다의 표면(表面)을 뒤덮어 놓는다 할지라도
해저(海底)의 고요함을 흔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고요 속에 닻을 내리는 연습을 하거라.
시(詩)를 쓴다는 것은 바로 닻을 던지는 일과도 같은 것이니….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바다처럼 하거라.
바다에는 말뚝을 박을 수도 없고, 담장을 쌓을 수도 없다.
아무 자국도 남기지 않는다. 바다처럼 텅 비어 있는
공간(空間)이야말로 당신이 만드는 시(詩)의 자리이다.
역사(歷史)까지도, 운명(運命)까지도 표지(標識)를 남길 수 없는 공간….
그러나 그 넓은 바다가, 텅 빈 바다가 아주 작은 진주(眞珠)를 키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초승달이 자라나고 있듯이
바다에서 한 톨의 진주가 커 가고 있다.
시(詩)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한 방울의 눈물을 티운다.
그것을 결정(結晶)시키고 성장(成長)시킨다.
시(詩)를 쓰려거든 여름 바다처럼 하거라.
바다는 무한(無限)하지는 않지만 무한한 것처럼 보이려 한다.
당신의 시(詩)는 영원(永遠)하지 않지만 영원한 것처럼 보이려 한다.
위대(偉大)한 이 착각(錯覺) 때문에 거기서 헤엄치는 사람은
늘 행복(幸福)하다.
- 문학세계사 발행. '말'에서 -
('유봉희 문학서재'에서 퍼옴)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2017 문학축제 김종회 교수 강의 원고 | 미주문협 | 2017.08.24 | 311 |
공지 | 미주문학 USC 데어터베이스 자료입니다. | 미주문협 | 2017.08.14 | 287 |
74 | 지식인의 말 | 미문이 | 2007.10.09 | 927 |
73 | ‘문학관광’ 시대 활짝 | 미문이 | 2007.09.08 | 916 |
72 | 두 편의 시가 주는 의미-성기조 | 미문이 | 2007.08.20 | 959 |
71 | 시인 선서(1990년)/김종해 | 미문이 | 2007.08.13 | 999 |
70 | 시인과 사랑/정용진 | 미문이 | 2007.07.23 | 1129 |
69 | 올해 문학계 ‘대표주자’ 누굴까 | 미문이 | 2007.07.03 | 949 |
68 | 밀양 - 허영과 탐욕의 잘못된 만남이 빚어낸 비극 - | 미문이 | 2007.06.06 | 1197 |
67 | 정다혜 시집 '스피노자의 안경' | 미문이 | 2007.05.21 | 1555 |
» | 시를 쓰려거든 여름 바다처럼 /이어령) | 미문이 | 2007.05.16 | 963 |
65 | 다시 2007년 기약한 고은 시인 "그래도 내 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 | 미문이 | 2007.04.25 | 1019 |
64 | 윤동주 3형제는 모두 시인이었다 | 미문이 | 2007.04.25 | 1423 |
63 | 문단 대가들 장편 들고 잇달아 귀환… 침체 문학계에 활력소 | 미문이 | 2007.04.25 | 1029 |
62 | 이문열 씨! 멋진 보수주의자가 되세요 | 미문이 | 2007.04.25 | 1015 |
61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살펴보니… | 미문이 | 2007.04.25 | 1266 |
60 | 도대체 순수란 무엇인가? -한국 문학에서 순수의 의미 | 미문이 | 2007.03.21 | 1084 |
59 | 미당의 죽음을 통해서 본 '순수문학'의 허구성에 대한 단상(短想) | 미문이 | 2007.03.21 | 1194 |
58 | 순수문학과 대중 | 미문이 | 2007.03.21 | 1215 |
57 |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 신선한 활동 | 미문이 | 2007.03.07 | 1140 |
56 | 무차별 기형도 따라하기/김진학 | 미문이 | 2007.03.07 | 1120 |
55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마광수 | 미문이 | 2007.02.12 | 10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