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랭이질

2020.01.26 12:31

전용창 조회 수:134

그랭이질

                                                                    전용창

                                               

 언젠가 독서동아리에서 영주에 있는 ‘부석사’를 답사했다. 일행 중 건축을 전공한 회원이 해설했다. 이곳의 많은 사찰 중에 지금 관람하고 있는 ‘무량수전’ 건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서 국보 제18호라고 했다. 이 건물의 특징은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허리 부분이 기초에 닿은 부분이나 상단보다 굵은데 이렇게 만든 기둥을 ‘배흘림기둥’이라고 했다. 긴 기둥의 굵기를 같게 하면 멀리서 바라볼 때 허리 부분이 가늘게 보이는 착시현상이 생기는데 이런 현상을 교정하고 안정감을 주려고 허리 부분이 볼록하다고 했다. 이 건물이 고려 시대에 건축되었다 하니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얼마나 탁월한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모두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 사진 찍기에 바빴다. 어떤 사람은 기둥 옆에 나란히 서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기둥을 껴안은 포즈를 취했다. 나는 단체 사진 한 컷만 찍고는 기둥을 아래에서 위로 찬찬히 바라다보았다. 허리는 통통하고 다리와 상체는 날씬한 게 팔등신 미인처럼 보였다. 그런데 옥에 티라고 할까, 기둥을 받쳐주는 주춧돌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4각으로 납작하게 다듬어 놓은 주춧돌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울퉁불퉁 막돼먹은 돌을 그대로 둔 것이다. 상단이라도 평평하게 다듬어서 기둥을 세웠으면 쉬웠을 텐데 못생긴 돌을 그대로 두고 나무 기둥을 힘들게 다듬어서 돌에 맞춰 세웠다.

 마치 개울에서 덤벙대며 물장구치는 아이같이 보여 ‘덤벙 주초’라고 했을까? 성질이 거친 덤벙 돌은 그대로 두고 나무를 돌 모양에 맞추어 세워놓은 것이다. 얼마나 정성을 들여 다듬었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과 나무가 한 몸이 되었을까? 해설가는 설명했다. 오래된 목조건축물은 대부분 주춧돌은 다듬지 않고 나무 기둥을 다듬었다고 했다. 나무를 막 된 돌 위에 올려놓고 본을 뜨고는, 얼마나 다듬고 연마를 했으면 둘이 하나가 되었을까? 나무 기둥의 접합부는 오랜 시간 장인의 손에서 조각되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짜 맞춰지는데 그런 과정을 ‘그랭이질’이라고 했다. 나무와 돌은 서로 소재가 다른 객체이다. 그 두 객체가 연단 과정을 거쳐 서로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연단이 있었기에 오래된 목조 건물이 태풍이 불어와도, 지진으로 지축이 흔들려도 어긋나지 않고 처음 모습 그대로 천년을 버티고 있다.

 

 우리 속담에 배은망덕한 사람을 비유하여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건물에도 배은망덕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했나 보다. ‘울퉁불퉁 막 된 돌’은 본디부터 그곳에 있었으니 그대로 두고 기둥에 쓰일 ‘금강송’은 깊은 산속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왔기에 새색시가 이곳에 적응하도록 ‘그랭이질’을 했다. 마음씨 착한 새색시는 철모르고 덤벙대는 아이에게 맞추어 한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날마다 ‘그랭이질’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부부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 지붕 아래서 산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이 땅의 여인들은 자존심도, 체통도 숨긴 채 한평생을 시댁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신혼 초에 아내에게 말했다.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당신도 그렇게만 참고 살아가면 그 뒤부터는 평생을 호강시켜줄게.”라고 했는데 한 가정의 부부 삶이라는 게 6년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더구나 아내는 무남독녀다. 힘들 때 돌봐줄 사람도 없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뒤에는 장모님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을 돌봐주셨다. 한 달이면 절반가량을 수고하셨는데 그러기를 15년이나 지속하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을 바라보며 살아온 아내도, 장모님도 얼마나 많은 날을 애간장이 녹아나는 아픔을 겪으셨을까? 어느새 내 나이도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들었다. 뒤늦게나마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아내는 일생을 여자의 숙명이라 생각하고 ‘그랭이질’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나는 이제야 아내를 생각하며 서툴게 따라 하고 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그것도 ‘그랭이질’이라고 비웃지는 않을까? 시어머니와 동생들과 한 집에 살며 네 자녀를 키운 아내의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그런 와중에도 장애아들까지 밝게 키웠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틀렸어도 상대방이 다듬어져서 자기에게 맞춰 주기를 바란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랭이질’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천년만년 대대로 살아갈 집이기에 어렵고 힘들게 ‘그랭이질’을 하며 돌과 나무가 한 몸이 되도록 한 것이다. 대문을 들고 날 때마다 마루와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주초를 본다. 서로가 하나가 되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우리 국민이 이념의 갈등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진영논리에 빠져 상대방은 받아들이지 않고 이적단체인 양 서로가 양분되었다. 언제까지 상대방 탓만 하고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나무 기둥과 주춧돌이 ‘그랭이질’을 통하여 하나가 된 것처럼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며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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