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수필 - 고목
2020.06.07 19:40
살았을까
죽었을까
고목을 스치는 바람
터진 살결
다칠세라
사알짝 지나간다
들을까
들을 수 있을까
숨 죽여 흐르는
시냇물 소리
여기 한 고목이 있다.
베여 쓰러진 고목.
누군가 밟고 가라며 다리가 된 고목.
버젓한 장롱이 되어 안방 마님 사랑도 못 받고, 반듯이 자라 전봇대도 못된 휘어진 고목.
그는 거름이 되거나 오가는 길손의 다리가 되어 겨우 제 목숨값을 한다.
수령을 세어본들 무엇하리.
두 자리 수?
세 자리 수?
분명 네 자리 수는 아닐 테지.
그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우리 모두 유한한 삶인 걸.
높고 낮은 신분, 재산의 있고 없음, 배움의 유불, 미추의 차이, 지식의 깊이와 넓이.
그게 뭐 그리 대순가.
삶의 질만 사리로 남는 게지.
어떻게 살다 어떻게 죽었는가, 또 죽은 이후에는 어떤 이름으로 어떻게 목숨값을 하는가가 소중할 테지.
사랑하는 이, 혹 길손되어 지나 가면 잠시 숨 고르고 두 손 가슴에 얹을까.
한 때는 그의 푸르름을 사랑했었다고.
재잘대던 잎새의 수다도 즐거웠다고. 깃
을 치던 새들의 노래 사라졌지만,
여기 상념에 잠긴 한 사람 있어, 그의 삶은 헛되지 않았노라 증언하노니-
고목이여!
부디 영생복락 누리시라.
(2020. 5월)
(사진 : 죠앤 정)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868 | 수필-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 서경 | 2020.04.10 | 7 |
867 | 44, 45, 석 줄 단상 - 내 사랑 팜트리 외 1 | 서경 | 2022.06.13 | 7 |
866 | 98. 99. 석 줄 단상 - 가끔은 외 1 | 서경 | 2022.08.13 | 7 |
865 | 포토시 - 고사목 2 | 서경 | 2023.12.28 | 7 |
864 | 포토 에세이 - 겨울 나무 빈 가지 | 서경 | 2020.04.03 | 8 |
863 | 92. 93. 석 줄 단상 - 이런 신부 어떠세요? 외 1 | 서경 | 2022.08.07 | 8 |
862 | 79. 80. 석 줄 단상 - 성 토마스 성당 미사 참례 외 1 | 서경 | 2022.07.15 | 9 |
861 | 12. 석 줄 단상 - 아, 4.29 그날! | 서경 | 2022.05.05 | 9 |
860 | 포토 에세이 - 저마다 제 소임을 | 서경 | 2019.01.26 | 9 |
859 | 수필 - 고양이 돌보기 | 서경 | 2019.09.06 | 9 |
858 | 포토 에세이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 서경 | 2020.02.25 | 9 |
857 | 포토 에세이 - 오리 두 마리 | 서경 | 2020.04.28 | 9 |
856 | 94. 95. 석 줄 단상 - 피장파장 외 1 + | 서경 | 2022.08.07 | 9 |
855 | 5행시 - 퍼즐맞추기 | 서경 | 2017.04.26 | 10 |
854 | 수필 - 멋진 조카 러너들 | 서경 | 2017.06.06 | 10 |
853 | 포토 시 - 어머니와 어머이 | 서경 | 2018.07.03 | 10 |
852 | 포토 시 _ 극락조 + 영역 | 서경 | 2018.07.03 | 10 |
851 | 포토 에세이 - 무지개 핀 마을 | 서경 | 2019.02.15 | 10 |
850 | 수필 - 마흔 살 딸아이 | 서경 | 2020.02.25 | 10 |
849 | 수필 - 딸의 여행 준비 | 서경 | 2020.02.25 |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