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에 대하여

2020.12.19 23:13

황복숙 조회 수:13

열정에 대하여

은빛 수필 창 작반 황 복 숙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어 압력솥에 넣었다. 압력밥솥 추가 보글보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밥솥은 팽팽한 열기로 김을 뿜어 올린다. 한 그릇의 밥이 되기 위해 열정을 다하고 있다. 밥알 한 알 한 알에는 열정이 담겨져 있다. 열정이 가득한 사람의 얼굴은 윤기가 흐르고 품성도 바르고 인격은 구수한 냄새를 품고 있다. 밥이 되고자하는 쌀알의 꿈도 있다. 밥을 하면서 생각과 그 꿈을 만난다. 자화상, 해바라기 연작,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 고흐는 짧은 생을 살고 갔지만 한 평생 별을 많이 사랑한 화가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의 그림속의 별이 밝게 빛나며 움직이는 듯하다.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늘 차갑다고 느꼈던 나 이었는데 고흐의 별은 따뜻해 보였다. 37년 살면서 일생을 불꽃같은 정열로 살았기에 별에게도 정열의 색으로 표현 하였나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슴에 어떤 감정이 함께 했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빛깔도 달라지는 것 같다. 오늘 TV조선 미스트롯 2를 보았다. 9살 여자어린이의 구성진 목소리로 열정을 다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어정쩡하고 삶의 열정과는 거리가 먼 나를 발견 하였다. 노래를 시작한지 4년 이라고 하니까 인생의 반을 노래에 바친 셈이다. 다른 이의 열정에는 열정의 박수를 보내지만 나는 열정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의욕이 없고 어부정한 성격이다 보니 삶의 열정과는 거리가 멀다. 열정이란 감정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 되어 버린다.

언제부터인가 가스는, 수도는, 전기는 문단속은, 가물거리기 시작하고 외출 하려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 확인하는 횟수가 많아 졌다. 현관문에 눈에 번쩍 뜨일 정도로 크게 가스, 수도, 전기, 문단속을 써서 붙여 놓았다. 처음에는 가스만 써서 붙여 놓았더니 전기와 수도 현관문이 걱정 되었다. 다시 더 크게 전기, 수도, 가스, 문단속을 써 붙였다. 외출할 때마다 확인을 하니 안심이 되었다. 작년 겨울 대낮에 도둑이 담을 타고 베란다 문고리를 부수고 들어와 집을 뒤져 도둑을 맞은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실감나게 주의 안내 글을 읽으며 지켰다. 도둑맞은 날 그날은 죽은 꽃비가 간절하게 떠올랐다. 꽃비가 있을 때는 깜박하고 창문을 열고 외출한 날이 종종 있었다. 도둑을 맞을 거라는 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꽃비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도둑이 다녀갔다. 진돗개 꽃비는 우리 집 안심 지킴이 역할을 다해 주었던 것이다. 도둑이 다녀간 일 년은 불안하고 무서웠다. 꼭 도둑이 들어와 창고 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환상에 시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글자가 문의 무늬처럼 보여 졌다. 차츰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자는 그대로 있는데 보이지 않는 현상, 이것이 내 삶의 속성 이었다. 열정 없이 사는 나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나이가 드니 더 시들해지고 녹아 사라진 슬픔인지도 모른다. 올해는 코로나 19의 해, 코로나 19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생활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코로나 19로 많이 예민해져 있다. 감염 위험도가 커 외출 할 때는 마스크를 써야한다. 그래서 문단속 글귀 밑에 써 넣었다. 마스크 꼭 이라고, 오늘 아침에도 문에 붙어 있는 글귀를 크게 눈을 뜨고 읽으면서 단단히 확인을 하고 외출을 했다. 12년을 안전하게 지켜준 꽃비가 생각난다. 빨래를 하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마당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면서도 꼭 마당에 꽃비가 있는 듯하다. 잊고 창문 열어 놓고도 안심하고 볼일을 보았던 도둑걱정 없었던 날들이 그립다.

밥솥의 추가 세차게 돌아가고 국을 끓이느라 가스레인지의 파란 불꽃이 흔들린다. 파란색은 차가운 색이라고 생각 했는데 진한 파란색이 가스의 가장 높은 온도에서 나오는 색깔이라는 것을 평생 사용 하면서도 그동안 알지 못했다. 오늘 지금에서야 눈에 들어왔다. 정열이란 겉모습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밥과 국을 떠 식탁에 놓으니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점점 식어지는 밥과 국을 한 수저 한 수저 먹는다. 온 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진다. 딸 아들 다 결혼 하고나니 다시 맞는 혼자만의 오붓함이랄까, 수필을 한 그릇의 밥이라며 섬기겠다던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외출에서 돌아와 외출옷을 벗고 오늘은 꼭 반찬을 만들어 저녁밥을 먹어야지 맘먹고 쌀 씻으려고 쌀을 물에 담그면 퇴근한 남편이 들어온다. 급하게 지은 밥을 동시 반찬으로 저녁을 먹는다. 수저로 밥을 떠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감명 깊게 읽은 동시를 낭송해 주면 가득한 밥이 점점 비워져 간다. “ 그 반찬 맛있어” 라며 식사를 끝낸다. 몇 년을 동시 반찬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몇 년이 지난 요즈음에는 그 반찬 오래 먹어 맛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반찬을 바꾸었다. 수필이라는 반찬으로 수필 반찬은 길어 식사를 다하고 후식 또 차를 마신다음에야 끝난다. 수필 지루하니 동시로 바꾸자고 하면 그래도 수필이 좋다고 말해주는 남편이 고맙다. 어정쩡한 내 삶에 열정을 돋우어 주는 수필을 섬기고 있다.

2020년 12월 19일

빈 센트 빌럼 반 고흐 (1853년3월 30일~ 1890년7월29일)(37세)

네덜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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