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쳐 버린 생일날

2020.12.21 13:41

구연식 조회 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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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쳐 버린 생일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인간의 생리 구조와 사상 및 감정이 비슷하여 문화의 공유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사는 자연환경과 사회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에 알맞은 것을 생활방식으로 선택하여 문화의 다양성이 나타난다. 동서고금 어느 곳이든지 가족행사 중 생일 축하는 빠뜨리지 않고 챙겨준다. 그래서 생일 축하 의식은 같고 음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우리의 생활풍습에서 산모에게는 미역국을 끓여서 산후조리를 해준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서 식사를 할 때쯤에는 아이에게 미역국을 끓여 생일날 필수 음식으로 챙겨준다. 내가 어렸을 때 생일날에는 모든 죄가 면죄되어 그날만은 부모님이 꾸중을 하지 않고 용돈까지 주셔서 일 년 중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어느 집이든지 연말이나 정초에는 한 해 가정 대소사의 날짜를 달력에 꼼꼼히 표시하여 실행한다. 생일날은 본인보다는 가족들이 챙겨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생일날을 지나쳐 버렸다면 산모였던 어머니와 당사자인 아들에게 서운함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한다.



나의 생일은 음력 11월 26일이고, 아들은 양력 11월 26일이다. 그래서 호적상에는 같은 날이어서 기억하기 쉽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없었다. 내가 사는 전주시 평화동 아파트 방 4곳의 탁상용 달력에는 빨간색 볼펜으로 별 표시를 하여 언제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게 하여 40이 넘은 아들의 생일을 지나쳐 버린 경우가 없었다. 옆 라인에 사는 며느리도 달력은 물론 스마트 폰에도 저장을 해놓고 있다. 그런데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고 양 쪽 집 모두 다 아들 생일을 그냥 지나쳐 버렸으니, 당사자인 아들은 얼마나 서운하고 가족의 의미가 무너졌을까? 아들에게 미안했다.



아들은 인문계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주중에는 야간 특별수업과 윤번제로 돌아가는 기숙사 사감 등으로 집에 빨리 오는 날은 밤 9시가 넘어서다. 그런데 11월 26일에 기숙사 사감 당번을 25일로 바꾸어서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 자체도 별 의미없이 들었다. 26일 지하주차장에서 평상시에는 그런 경우가 없었는데, 아들 차를 오후 5시경에 발견했다. 어제 기숙사 사감 당번이어서 일찍 퇴근한 것으로만 알고 아내한테도 그렇게 전했더니 아내도 별 대꾸 없이 받아들이고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에 기상하여 하루일정을 보기 위해 달력을 보니 아뿔싸! 어제가 아들 귀빠진 날이어서 기숙사 당번도 바꾸고 조금 일찍 퇴근하여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 겸 생일축하를 기대하고 퇴근했는데, 어느 가족 하나 생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으니, 본인은 천하에 고아의 심정으로 지나쳐버린 생일의 허전함을 어떻게 견디고 밤을 새웠는지, 가족의 책임자로서 소홀했음을 반성해 보았다.



아내한테 이야기했더니 아내 역시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키웠고, 산고 끝에 얻은 자식이라 어느 엄마인들 속이 편할 리 만무하여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때 아내는 나한테 버럭 화를 냈다. 연초에는 이방 저 방 달력마다 빨간 글씨로 표시도 잘 해놓고 아들 생일 안 알려 줬다고 나한테 화살을 퍼부었다. 나는 아들이 학교에 도착 무렵에 전화를 하여 미안하다며 위로의 전화를 했다. 아내는 혹시 며느리가 따로 생일 이벤트를 치렀는지 며느리 학교 도착에 맞춰 전화로 살짝 물어보니, 며느리 역시 깜박 잊고 지나쳤다면서 ‘어머님이 아셨으면 전화라도 해 주시지 그러셨어요?’라고 하면서 며느리로서 미안했음을 표시하는 전화 대화는 끝났다.

다음날에야 생일상을 차려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생일 당사자와 가족들의 표정은 여느 때와 같았으나 속마음은 서운함과 미안함으로 겸연쩍게 지나쳐 버린 생일을 뒤늦게 챙겨주었다.



44년 전이다. 모 여고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진통이 심해서 산부인과에 입원했다고 처형의 전화가 왔다. 그 시절만 해도 태아 성별 감식이 없었던 시절이다, 태몽과 산모의 배 모양을 보고 튀어나오면 남자아기, 둥글넓적하면 여자아이 등으로 입증되지 않은 추측만 했었다. 나는 집안의 장손이어서 나중에야 딸을 열을 낳을망정 속으로는 은근슬쩍 사내아기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교무실 전화벨 소리만 나면 받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혹시 나를 찾는지 그 사람을 조바심하여 바라보았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산모는 순산했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단다. 나는 너무 기뻐서 교감선생님께 횡설수설 용건을 전하고 학교에서 500여 m 떨어진 산부인과로 달려갔다. 밖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려 소복이 쌓였다. 산부인과로 달려가서 보니 신발도 안 신고 슬리퍼를 그대로 신고 와서 바짓가랑이는 물론 양말은 흰 눈으로 범벅이 되었다. 2층으로 올라가 아내를 보니 축 처진 몸인데 눈은 말똥말똥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고 "수고했어!" 라고 하니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해서 얻은 아들이다.



지금 그 산부인과는 다른 데로 이전했고, 그 자리에는 상점이 들어섰다. 나는 지금도 군산에 들을 때면 아들을 낳았던 그 산부인과 터를 일부러 지나가면서 아내와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더구나 함박눈이 내려 검정 아스팔트길을 덮어버리면 슬리퍼로 눈길을 토끼처럼 깡충깡충 산부인과로 달려갔던 추억에 잠기곤 한다.



인간이 위로받고 싶을 때는 위로의 내용에 따라서 위로해 주는 사람, 위로해 주는 장소가 한정적일 때 위로가 더더욱 가슴에 절실하다. 생일의 위로는 오붓한 가족의 울타리 속에 가족들의 진심어린 덕담과 정성 들인 따스한 밥 한 끼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헌서(憲書)야, 미안하다. 엄마 아빠가 생일을 지나쳐 버려서. 다음에는 꼭 잘 챙길게~"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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