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난로 앞에서

2020.12.27 12:00

윤근택 조회 수:19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일곱 번째, 일백 여덟 번째 이야기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07.

  조손(祖孫)은 또 다시 나무난롯가.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느닷없이 질문한다.

  “한아버지, 근데(그런데) 여태껏 나무 이야기를 한아버지를 통해 많이 들어왔는데, 으뜸이가 궁금한 게 딱 하나 있어. 나무랑 풀이랑 차이점은 뭐야?”

  사실 학술적으로 설명하기에도 꽤 까다로운 질문이다. 어느 수준으로 녀석한테 들려주어야 할지?

  “으뜸아, 나무와 풀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온대지방을 기준하여 땅 위에 드러난 줄기가 겨울에 마르지 않으면 나무, 말라버리면 풀. 그러나 풀은 땅 위에 드러난 줄기가 말라버리더라도 그 뿌리가 겨울동안 살아있는 기간에 따라 한해살이풀·두해살이풀·여러해살이풀 등으로 부른단다. 나무는 리그닌(lignin)이란 성분이 있는데 비해, 풀은 그 성분이 없어. 나무는 그 성분으로 된‘부름켜(형성층)’가 있어서 해마다 부피생장을 하는데 반해, 풀은 부피생장을 하지 못해. 나무는 주로 쌍떡잎식물이고, 풀은 주로 외떡잎식물이야. 외떡잎식물은 부피생장을 하지 않는단다. 외떡잎식물은 주로 벼·보리·옥수수·강아지풀·대나무 등 벼과식물이고. 그리고 더 흥미로운 사실은, 외떡잎식물은 처음에 올라오는 굵기로 한평생 산다는 거. 대표적인 사례는 대나무다? 대나무는 야자나무와 더불어 벼과식물에 속하는 ‘아주 특수한 풀’로 취급하기도 해. 대나무는 평생토록 자기가 굵어질 굵기의 대궁을 이미 죽순시절에 다 갖춘다?”

  여기까지 듣고 있던 녀석은 나름대로 요점정리를 한다.

  “한아버지, 매우 복잡하지만, 으뜸이는 이렇게 머릿속에 담아두고 싶어. ‘땅 위 드러난 줄기가 겨울에 마르면 풀. 그렇잖으면 나무.’근데(그런데) 한아버지가 조금 전에 대나무는 자기가 한평생 굵어질 굵기가 이미 죽순 시절에 다 정해져 있다고 했어. 그게 참으로 신기한 일이야. 이 웬 운명예정설? ”

  녀석은 매우 총명하다. 지탄받는 이단자 종교개혁론자 캘빈의 ‘운명예정설’까지 끌어다 붙이다니!

  “으뜸아,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어른들은 늘‘왕대밭에 왕대 나고 시누대밭에 시누대 난다 .’ 혹은 ‘왕대밭에 왕대 나고 쫄대밭에 쫄대 난다 .’고 하셨던가 봐.”

  녀석은 대나무와 관련한 옛 어른들의 말씀을 곰곰 새기려는 듯 그 작은 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묵상에 잠긴다.

  이 외할애비는 나무난로 불문을 열고 장작 하나를 더 보태 넣는다.


  108.

  이번엔 이 할애비가 나무난롯가 맞은편 접의자에 앉아 졸고 있는 외손주녀석한테 어떤 동화의 줄거리를 들려주고 있다.

  ‘어린 왕자는 아주 작은 별에서 살았어. 코끼리 아홉 마리가 있다면 코끼리 위에 또 코끼리를 쌓아야 할 만큼 작은 별이었지. 아주아주 작은 별에 사는 어린왕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오밥나무’싹을 뽑는 일이었어. 싹이 그대로 자라면 나중엔 그 뿌리가 별을 삼켜버릴 수도 있거든.’

  외손주녀석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내 말한다.

  “한아버지, 아하, 한아버지가 환갑진갑 다 넘기도록, 끝까지, 그것도 어른이 다 된 후에야 끝까지 여러 차례 읽어보았노라고 고백하던 유일한 책 한 권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바오밥나무! 근데(그런데) 그 나무는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이럴 줄 알고 지난밤에 인터넷을 통해 녀석 몰래 나름대로 공부를 해두었다는 거 아닌가.

녀석한테 아래와 같은 요지로 들려준다.

 ‘바오밥(Baobab)은 아욱목 물밤나무과 바오밥나무속에 속하는 나무. 그 서있는 모양이 병 같아서 ‘bottle tree’로도 부르는 나무. 태평양·아시아·아프리카의 건조한 지역에 자라며 혹독한 가뭄에도 견딜 수 있도록 몸 안에 물을 최대 10만 리터 저장하는 나무. 줄기 둘레 20미터 넘고 높이 20미터 넘는 거대한 나무. 나무뿌리같이 생긴 수관(樹冠)을 지닌 나무. 자신의 생김새에 불평을 늘어놓자, 신들이 노해 아예 뿌리를 뽑아 거꾸로 심어놓았다는 전설을 지녀,‘신이 거꾸로 심은 나무’라는 별명을 지닌 나무. 너무 물러서 목재로는 쓸 수 없는 나무. 평균수명 3,000년인 나무. 나이가 1,000년이 지나면 나무줄기 안에 동공(洞空;빈 공간)이 생기기에,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는 16명의 죄수를 가둔 감옥으로도 썼다는 기록이 있는 나무. ‘dansonia’란 학명(學名)은 바오밥나무를 연구한 18세기 프랑스 자연학자 ‘미셀 애던슨(Michel Adanson)’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

  이 외할애비가 위와 같이 숨가쁘게 이야기를 이어가자, 녀석이 불평이다.

  “한아버지, 그만하면 됐거든? 오늘밤엔 으뜸이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바오밥나무 검색해 볼 거 거구만. ”

  고놈, 참으로 맹랑하다, 어쨌든, 녀석이 바오밥나무를 연구할(?) 테니 흐뭇하기만 하다.

  산골 외딴 농막에는 또 다시 어둠이 내리고, 나무난롯불은 사위어가고.


  (다음 호 예고)

  조손이 모과차를 나누어 마시며 진달래,도라지, 모란 등에 얽힌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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