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낙엽

2021.01.06 19:13

구연식 조회 수:14

 노인과 낙엽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 연 식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물의 상징성에서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보기도 한다. 낙엽은 자손을 살리기 위한 어미나무 한 해의 흔적이고, 노인은 자손을 위한 희생의 마지막 일생의 모습이다. 낙엽은 오랜 세월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나무가 선택한 생존전략이다. 노인은 자기 의도와는 무관한 조물주와 세월이 만들어낸 합작이다.

 

 나뭇잎은 떨어지는 순서가 정해져 있지만 노인의 죽는 순서는 없다고 한다. 낙엽은 성장호르몬 분비가 일찍 끝나는 곳부터 낙엽이 진다고 한다. 그래서 아래쪽 가지 안쪽에서 시작하여 위쪽 가지로 이어져 떨어진다. 노인은 성장호르몬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개인의 건강과 관계있는 종합적 함수관계에 달려있다. 이렇게 낙엽은 삶의 끝을 표시하지만, 노인은 삶의 훈장을 표시한다. 낙엽과 노인은 극대 극의 가치관을 표상하기도 한다. 폴란드는 외세의 침입에 망명정부를 유지할 때 국가재정이 파탄되어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천박하고 음울한 정서를 표현한 시구도 있다. 인간 삶을 문자 없이 구비전승으로 계승 유지하며 살았던 아프리카는 노인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노인과 낙엽은 겉 이미지는 같아도 속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나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청년 같은데, 국가기관이 노인의 연령이 되었다고 정년퇴임을 시켰다. 지하철도 경로우대를 허용하고 국공립 유원지나 사찰도 무료입장을 받아준다. 그러니 법적 요건으로 노인이 맞다. 귀밑머리 잔설은 삼복더위에도 녹지 않는 걸 보니 노인이 확연하다. 손자 아이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면서 덥석 안긴다. 시내버스에 오르니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하며 자리를 양보한다. 세월이라는 놈이 노인이라는 색깔을 어느 사이 내 온몸에 도배하고 사라졌다. 이제는 꼼작없이 노인이 되었다.

 

 갈 길이 장 천리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나보고 노인이라니, 화가 치밀어 숨통이 막힌다. 아파트 문을 박차고 나가 오랜만에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학산 숲 속으로 오르니 발밑에 낙엽이 무어라 구시렁거리며 말대꾸를 한다. 노인과 낙엽은 도진개진이라며 비아냥거린다. 보기 싫은 놈 뺨 때리듯 낙엽을 떨쳐버리고 한참을 걸었다. 걷다가 바위에서 잠깐 쉬고 있으니 참나무 낙엽이 나뭇잎 가장자리에 있는 갈고리를 이용하여 양말에 도깨비바늘처럼 달라붙어 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같이 가잔다. 그렇지 않아도 늙은 것이 싫어서 산을 오르고 있는데 낙엽이 가는 족족 속을 뒤집어 놓는다. 삼천갑자 동방삭이가 넘었다는 3년 고개를 찾아서 실컷 뒹굴어야겠다. 그래서 겉은 노인일지언정 속은 청년으로 둔갑을 해서 태산 같은 일을 해야겠다.

 

 갑자기 낙엽에 대해 동정심이 생긴다. 겨울이 없는 항상 성하(盛夏)의 계절이 이어지는 아프리카 등지에는 낙엽이 거의 없다고 한다. 나무가 움직일 수 있다면 낙엽을 생각지 않았을 텐데 마음만 있지 한 걸음도 뗄 수 없으니, 어미나무가 뿌려놓은 씨앗을 이듬해 봄 새싹이 움틀 때까지 자기는 춥지만, 나뭇잎을 모두 다 털어내어 이불로 덮어주고 밑거름으로 내려주었다. 낙엽은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추운 겨울에 어미나무도 살고 자손들도 함께 살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나무는 한자리에서 수 세기 동안 남의 힘 빌리지 않고 자급자족으로 자손을 번창시키면서 우리의 강토를 지켜왔다. 어쩌면 낙엽은 그동안 통한의 눈물 껍데기가 말라서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불평 없이 살아온 나무에 비교한다면 기껏해야 좁쌀만큼 베풀며 살아온 인간들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노인 철학으로 낙엽과 저울질하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모든 과학적 이론의 기저는 자연현상에서 찾아낸 법칙을 체계화하고 세분화하여 학문화시키고 사회생활에 적응시키고 살아왔다. 어쩌면 노인의 개념도 낙엽의 종속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인간은 낙엽만도 못한 밴댕이 속으로 자기 주도적인 삶만 살고 낙엽을 짓밟으며 살고 있다.

 

 낙엽은 자손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헌신하면서 자손의 밑거름으로 숨김없이 생을 마감하고 있다. 노인 대부분은 한평생을 자손을 위해서 낙엽처럼 희생된 삶을 마감하기도 하지만, 혹자는 자손과 사회를 숨겨가며 짐을 지워 놓기도 한다. 참으로 낙엽만도 못한 노인이다. 그러면서도 낙엽을 짓밟고 지나갈 수 있을까 반문하고 싶다. 자기의 그림자는 본인은 잘 보이지 않고 주위 사람들 눈에는 뚜렷이 잘 보인다. 나도 허심탄회하게 낙엽처럼 살았는지 낙엽에게 물어보고 싶다.

 

 하늘에는 싸락눈이 내려 오르던 길 멈추고 아파트로 내려오고 있다, 산비탈 어느 집 솟대 위에 앉은 기러기 등에도 싸락눈이 소복하다. 낙엽이 얼어 살짝만 밟아도 바스락거린다. 낙엽이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그래도 한마디 한다. "노인님, 당신도 언제인가는 땅에 묻히고 그 위를 내가 덮어 줄 테니까 너무 서러워하지 마시오. " 어느 피붙이보다도 임종을 지켜줄 친구인 것 같다. 나 닮은 것 같은 늙고 쓸모없는 것이라고 미워했던 낙엽으르 보며 반성을 한다.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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