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228
어제:
696
전체:
5,015,140

이달의 작가
2021.08.16 14:38

다섯 개의 비밀

조회 수 11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다섯 개의 비밀

이월란 (2018-7)

 

머리에 뿔이 돋은 건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 소가 될까 사슴이 될까 뾰족한 수가 없을 때마다 두 손으로 뿔을 감싸 쥐고 내달리곤 했다. 머리를 숙일 때마다 누군가를 들이받을 것만 같았다. 산란한 욕기가 굳건히 만져질 때마다 새로운 모자를 사러 다녔다. 뿔을 이고 사는 몸이 네 발 짐승이 되는 건 찰나였다.

 

코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도 탄로난 적이 없다. 밤마다 나무 인형처럼 앉아 작은 끌로 콧대를 밀었다. 피노키오가 되어 진실 뒤로 숨어 다니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차, 기를 죽이지 않고 잠든 다음날 아침에는 내가 나에게 말붙이기조차 힘들었다. 구석진 오만이 으슥해지고 있다.

 

허리춤에는 도톰한 지느러미가 자라고 있다. 나잇살로 자란 러브핸들인가 했지만 물기 촉촉한 비늘마저 덮여 있다. 그래서인가 보다. 땅보다 물이 편했다. 수영모자 속에 금발인지 흑발인지 모를 사람들이 물안경 너머로 매일 흐려지고 있었다. 락스에 바랜 수영복은 살빛이 되어가고 허우적대는 손짓마저 물에 뜨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가슴이 없다는 사실 또한 발설한 적이 없다. 실리콘으로 부풀릴 때마다 심장소리를 찾아 헤매기 일쑤였다. 고온에도 저온에도 견디는 타인의 가슴으로 허황한 눈물을 길어 올릴 때면 오래된 복받침을 억지로 떠올려야만 했다. 거대한 보형물처럼 하릴없이 풍만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뭉클할 일 없는 가슴팍이 조금씩 내려앉는다.

 

()이 뒤바뀌어 버린 것도 입 밖에 내지 못할 일이다. 폐경이나 호르몬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셈족의 문법에서처럼 중성의 언어들만이 입속에 득실거리기 시작했다. 암수의 구별이 없어진 곳이 홍조를 띠며 문란해질 일도 이젠 없다. 골밀도 높은 제3의 성이 네덜란드에서 합법화 되었단다. 국적을 바꿀 때가 되었다. 내일이 모호해지고 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51 애모 이월란 2008.05.07 634
1650 카인의 딸 이월란 2008.05.07 632
1649 야경(夜景) 이월란 2008.05.07 573
1648 제1시집 세월이여 내 사랑만은 이월란 2008.05.07 535
1647 제1시집 의족(義足) 이월란 2008.05.07 519
1646 내 안에 있는 바다 이월란 2008.05.07 568
1645 제1시집 장대비 이월란 2008.05.07 524
1644 약한자여 그대 이름은 이월란 2008.05.07 579
1643 제1시집 그대 내게 다시 올 때에 이월란 2008.05.07 698
1642 제1시집 한글교실 이월란 2008.05.07 436
1641 치병(治病) 이월란 2008.05.07 470
1640 제1시집 푸쉬킨에게 이월란 2008.05.07 508
1639 제1시집 잔풀나기 이월란 2008.05.07 561
1638 제1시집 별리동네 이월란 2008.05.07 444
1637 상사병 이월란 2008.05.07 552
1636 영시 Maturing Love 이월란 2008.05.07 365
1635 어항 이월란 2008.05.07 504
1634 왼손잡이 이월란 2008.05.07 453
1633 제1시집 탑돌이 이월란 2008.05.07 411
1632 제1시집 사명(使命) 이월란 2008.05.07 41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