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비밀
이월란 (2018-7)
머리에 뿔이 돋은 건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 소가 될까 사슴이 될까 뾰족한 수가 없을 때마다 두 손으로 뿔을 감싸 쥐고 내달리곤 했다. 머리를 숙일 때마다 누군가를 들이받을 것만 같았다. 산란한 욕기가 굳건히 만져질 때마다 새로운 모자를 사러 다녔다. 뿔을 이고 사는 몸이 네 발 짐승이 되는 건 찰나였다.
코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도 탄로난 적이 없다. 밤마다 나무 인형처럼 앉아 작은 끌로 콧대를 밀었다. 피노키오가 되어 진실 뒤로 숨어 다니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차, 기를 죽이지 않고 잠든 다음날 아침에는 내가 나에게 말붙이기조차 힘들었다. 구석진 오만이 으슥해지고 있다.
허리춤에는 도톰한 지느러미가 자라고 있다. 나잇살로 자란 러브핸들인가 했지만 물기 촉촉한 비늘마저 덮여 있다. 그래서인가 보다. 땅보다 물이 편했다. 수영모자 속에 금발인지 흑발인지 모를 사람들이 물안경 너머로 매일 흐려지고 있었다. 락스에 바랜 수영복은 살빛이 되어가고 허우적대는 손짓마저 물에 뜨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가슴이 없다는 사실 또한 발설한 적이 없다. 실리콘으로 부풀릴 때마다 심장소리를 찾아 헤매기 일쑤였다. 고온에도 저온에도 견디는 타인의 가슴으로 허황한 눈물을 길어 올릴 때면 오래된 복받침을 억지로 떠올려야만 했다. 거대한 보형물처럼 하릴없이 풍만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뭉클할 일 없는 가슴팍이 조금씩 내려앉는다.
성(性)이 뒤바뀌어 버린 것도 입 밖에 내지 못할 일이다. 폐경이나 호르몬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셈족의 문법에서처럼 중성의 언어들만이 입속에 득실거리기 시작했다. 암수의 구별이 없어진 곳이 홍조를 띠며 문란해질 일도 이젠 없다. 골밀도 높은 제3의 성이 네덜란드에서 합법화 되었단다. 국적을 바꿀 때가 되었다. 내일이 모호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