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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4시집
2025.05.17 12:00

Mother'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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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s Day / 이월란

 

  

엄마, 우린 평생 여덟 마리의 거미를 삼킨대요

주로 잠든 동안이겠지요, 꾸다 만 꿈처럼 말예요

가슴이 간질간질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건

어둠을 끌고 들어간 거미 탓일 거예요

 

(거미의 길 끝에 놓인 예쁜 두 개의 입술을 꼭 닫고 주무세요)

 

암거미가 수거미를 잡아먹던 시절

실기둥이 엉키며 건설해 낸 늑막 아래 빈집

바람 불면 흔들리는 은빛 그물이 보이나요

바람 불어야 어딘가에 닿을 수 있었죠

 

엄마의 가슴을 한 입 베어 먹고 한 뼘 자랐을 때

거미줄에 걸린 날 많이 아팠어요

머리가슴이 붙어버린 절지동물이었어요

머리와 가슴 사이에 가느다란 병목이 끄덕이는 날도 올까요

한동안 땅속에 살았어요

다리가 생겨나고 끈끈이로 연명하다 보면 엄마의 몸속이었어요

 

엄마의 비밀계좌를 알고 있어요

내게 손찌검했던 날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이체되었는지

거짓말은 조막만 한 세상을 수도 없이 구원했어요

아흔아홉 개의 정답보다 한 개의 오답에 목을 매던 엄마

난 그날 거미줄에 목을 매었지요

 

사진을 올릴 때마다 거미 한 마리씩 기어 나와요

당신과 나의 하나님은 방백 같은 두 개의 기도를 듣지요

몽상의 화법이 가득한 책갈피에 단풍잎처럼 엄마를 끼웠어요

죽은 말들만 꺼내먹고 사는 엄마가 이제 무섭지 않아요

참담한 산란기를 견디느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난산의 경계가 드리워진 사이

끈끈한 기억의 벌레를 잡아먹고 통통히 살이 올라요

오선지에 걸린 음표처럼 똑똑 따먹으며 노래도 부르지요

암수한몸인 희망과 절망에 몸을 담가요

서로의 자폐를 앓고 있네요

꽃과 꽃 사이에 거미줄을 치는 날이죠

 

날개를 사러 가요

당신 안에 있는 거미를 잡아먹을 차례예요

, 입을 벌리세요

오늘은 한 마리만 꺼내 드릴게요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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