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족
이월란 (2018-5)
차려입은 예복마다
바람 없인 결코 보이지 않을
보색의 안감을 품고 있다
오래된 이야기는 언제나
똑같은 열기의 온돌 위에서 시작되었고
똑같은 높이의 지붕 아래서 끝을 맺었는데
각기 다른 계절을 부양하다
고시원에서 이혼서류를 받아든 이와
아틀리에서 본차이나를 굽고 있는 이는
북극과 남극에서 왔다
알토란같은 재산을 끌어안고
하는 거들 봐서,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달려오는 조카들을 우롱했던
홀홀단신 이모는 요양원 유리벽 너머
치매와 나란히 앉아있다
죽은 엄마의 목소리를 그녀는 어디에 숨겼을까
누군가의 살붙이가 웨딩마치를 울리면
청첩장처럼 난데없이 날아온 이들이
방언처럼 어색해진 억양으로
드문드문 모여 앉는 것이다
헤어진 의식을 한번 씩 갖추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