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이월란 (2019-2)
어제로부터 주문한 가발을 쓰고
이역만리 장바구니에 담긴 의자에 앉는다
종일 무의식을 쇼핑했다
잃어버린 분별이 어디선가 되팔리고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삽시간에 포장된 패스워드는
소인에 찍혀 국경을 넘나들고 있었다
여백이 가난해질수록 모니터가 부유해진다
공백이 깊어질수록 로그인이 길어진다
홀로 자라지 못하는
손끝에는 지문 대신 습관성 enter
익명의 아이디를 지나친다
결제되지 않은 계정이 하늘처럼 떠 있어
두 눈에 전원이 꺼진 적이 없다
피를 나눠가진 것처럼 오류조차 혈류가 되었다
뫼비우스의 길을 따라 비장한 회로가 돈다
아랑곳없이 무정한 세상
끈질기게 열리는 팝업창을 따라
길흉을 점칠 수 없는 방향으로 가다보면
뉴스마다 사람들이 죽어있다
바람의 네트워크가 시신을 옮긴다
시신마저 파헤치는 파렴치한 정보들
뭉클한 스릴러가 상영 중이다
손톱만한 버그가 밤새 실어온 얼굴로
걸핏하면 묻는 삭제 하시겠습니까
매일 초기화를 꿈꾸었다
빅데이터마다 구시대의 불안이 쌓인다
자동 분석된 슬픔을 삭제하고
설치된 적 없는 기쁨을 암송한다
한 번의 착오로 수없이 배달되는 표정
온오프의 수정으로 태어난 디지털 베이비가
시뮬레이션 놀이를 한다
혼신에 깃든 습관으로
모니터에 귀를 맞춘 이불을 끌어당긴다
뱀처럼 똬리 튼 전원을 밟고
조작된 세상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