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월란 (2020-4)
그녀는 논두렁에 ‘나’를 버린 적이 있다
먼저 두려워보고 먼저 속아본 탓일까 늙은 엄마 대신 내 등을 밀어주며 땀방울처럼 그녀를 흘리곤 했다 방울방울 쓸어 모은 그녀는 실어증에 걸린 가을과 마주앉아
슬픔보다 더 긴 손가락으로 한 옥타브 더 올라간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떨어지는 눈동자 따라 하나 둘 버려지는 세상을 두드려보곤 했는데
인연은 폭력적이야
땋아 내린 머리를 풀어 내릴 때쯤이던가 자두꽃 만개할 때 뿌린다는 제초제를 삼키고 자두꽃이 되고 싶었지
아픈 손들이 식도에서 타오를 때쯤 가을은 재가 되고 뒤돌아보던 얼굴은 흑백사진으로 남고 싶었을까 인드라의 구슬 반지를 끼고 타국의 공주처럼 국경을 넘어오던 여자
버려본 적 있니?
안개가 독처럼 퍼져나가는
논둑길 발자국 사이로 그녀가 소문처럼 걸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