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피천득, 김승우, 김효자

2005.12.3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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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수필가 피천득 선생-因 緣-모스크바大 한국학 센터 82세 김승우 교수 부부

피천득 선생, 1975년 경영난 겪던 金교수에 100만원 쾌척 金교수,  최근 러시아어로 ‘인연’ 번역해 ‘30년만의 報恩’

폭설이 쌓인 고국에 러시아로부터 노부부가 찾아왔다. 우리나라 최고령 현역 문인인 수필가 피천득(95) 선생에게 30년 만에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부소 장 김승우(82) 교수, 그리고 그곳에 연구교수로 있는 김효자(73) 부부다. 30년 전의 중년 부부는 이미 노인이 됐고, 그들 손에는 피 선생의 대표 작품인 수필집 ‘인연’의 러시아어판 (‘Kapma’)이 들려 있었다.
“그때 피 선생님이 정말 많이 도와 주셨지요. 이 책이 작은 보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세 노인의 사연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승우씨는 ‘수필문학’이란 월간 문예지를 창간하고 피 선생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아사코라는 일본 여인을 일생에 세 번 만난 사연이 담긴 명작수필 ‘인연’이 처음 발표됐던 지면도 월간 ‘수필문학’(1974년)이었다. 이듬해 창간 3주년을 맞은 ‘수필문학’은 제1회 수필문학상을 제정하고, “우리나라 수필을 예술문학으로 정립한 최초의 작가에게 드린다”며 피 선생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당시로서는 큰돈인 100만원을 상금으로 책정했지만, 피 선생은 “젊은 문학도들의 장학금으로 쓰라”며 다시 돌려주었다.
재정 압박에 시달리던 김 교수 내외는 피 선생의 마음 씀씀이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세 사람 사이의 두터운 친분이 시작됐다. 문예지 ‘수필문학’은 어려운 환경에도 10년을 버티던 끝에 1982년에 문을 닫는다. 다시 시간은 20년이 흐르고 2001년 4월 김승우씨는 덕성여대에서 수필강의를 하다가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로 건너간다. “50년 동안 우리 문학이 소개되지 못했던 나라에 우리 문학을 번역하고 지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경기대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 아내도 그해 9월 모스크바대의 연구교수로 남편과 합류했다.
“저는 함경도 영흥 출신인데 8•15 해방되고 월남하기 전 공산당으로부터 모스크바대에 유학을 권유받은 적이 있고, 아내는 1996년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대학에 교환교수로 머물렀던 인연이 있습니다.”(김승우)
이들은 피 선생의 은혜를 잊을 수 없었다. 곧바로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에 출판부를 신설하고, ‘인연’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초벌번역은 같은 대학의 정인순 교수, 윤문은 카사트키나 일리나 교수가 맡았고, 출판부 주간인 김 교수 내외는 편집•교정•출간을 진행했다. 그리고 2000부를 찍은 러시아어판 ‘인연’이 나오자마자 귀국, 서울 반포에 있는 피 선생 댁을 찾았다. 큰 선물을 받은 듯 피 선생은 조크를 던지며 손을 잡았다.
“참으로 반갑소. 책 이름처럼 대단한 인연이에요. 이제 프랑스에서도 번역된다고 하니 노벨문학상을 주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소? 하하.”
다 합하면 250세가 되는 세 노인이 최고의 세밑 선물을 주고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입력 : 2005.12.27 02:46 52' / 수정 : 2005.12.27 02:48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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