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3 22:43
목련꽃 질 무렵/ 전희진
인천 큰외삼촌은 문간방 툇마루에 걸터앉아 창호지 문을 주먹으로 탕탕 두들겼다
어린 나이에도 술 냄새가 싫어 어스름을 밟으며 집 밖을 맴돌곤 했는데
말 못 하는 마른 북어처럼 엄마는 묵묵히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두들겨도 털어도 죽어도 없는 돈은 나올 생각을 않고
아래채로 내려가는 엄마의 긴 옥양목 치맛단에 환멸의 먼지가 풀썩였다
과자봉지 든 손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막내 고모할머니, 그 손에는 자글자글 햇살 같은 주름살이 모여 살았다
겨우내 조용하던 할아버지가 문지방 위에 젖은 꽃잎처럼 엎질러졌다
내가 약을 먹었노라 죽으려고 약 먹었노라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이 있었다고, 우리는 쉽게 말하고
방 문턱이 반질반질 닳도록 여럿의 젊은 새어머니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2021년 '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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