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3 22:43
목련꽃 질 무렵/ 전희진
인천 큰외삼촌은 문간방 툇마루에 걸터앉아 창호지 문을 주먹으로 탕탕 두들겼다
어린 나이에도 술 냄새가 싫어 어스름을 밟으며 집 밖을 맴돌곤 했는데
말 못 하는 마른 북어처럼 엄마는 묵묵히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두들겨도 털어도 죽어도 없는 돈은 나올 생각을 않고
아래채로 내려가는 엄마의 긴 옥양목 치맛단에 환멸의 먼지가 풀썩였다
과자봉지 든 손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막내 고모할머니, 그 손에는 자글자글 햇살 같은 주름살이 모여 살았다
겨우내 조용하던 할아버지가 문지방 위에 젖은 꽃잎처럼 엎질러졌다
내가 약을 먹었노라 죽으려고 약 먹었노라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이 있었다고, 우리는 쉽게 말하고
방 문턱이 반질반질 닳도록 여럿의 젊은 새어머니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2021년 '외지'에서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58 | 무서운 속도로 귀가 자라는 집 | jeonheejean | 2025.06.09 | 46 |
| 57 | 경계인 | 전희진 | 2025.02.22 | 335 |
| 56 | 서울, 꽃들의 지하 | 전희진 | 2024.09.14 | 128 |
| 55 | 이방의 봄 | 전희진 | 2024.09.14 | 125 |
| 54 | 모나크나비의 꿈속에 있었네 | 전희진 | 2024.01.19 | 98 |
| 53 | 프리지아 멜랑꼴리아 | 전희진 | 2024.01.19 | 70 |
| 52 | 옛집에 샹들리에를 두고 왔다 | 전희진 | 2023.10.22 | 72 |
| 51 | 누구나 슬픈 져녁 하나 쯤 갖고 있겠죠 | 전희진 | 2023.10.18 | 73 |
| 50 | 바깥이 궁금한 사람에게 | jeonheejean | 2023.08.09 | 71 |
| 49 | 빗소리를 담는 버릇이 있다 | 전희진 | 2023.08.08 | 66 |
| 48 | 네모난 창/전희진 | 전희진 | 2023.02.07 | 100 |
| 47 | 이사/전희진 | 전희진 | 2023.02.07 | 77 |
| 46 | 환절기 | 전희진 | 2023.02.07 | 74 |
| » | 목련꽃 질 무렵/전희진 | 전희진 | 2022.05.03 | 125 |
| 44 | 장례식장에서 | 전희진 | 2022.04.26 | 108 |
| 43 | 오월이 오는 길목 [2] | 전희진 | 2022.04.25 | 144 |
| 42 | 새 | 전희진 | 2022.03.31 | 101 |
| 41 | 밀접 접촉자 | 전희진 | 2021.02.19 | 163 |
| 40 | 무모한 사람 | 전희진 | 2021.02.19 | 128 |
| 39 | 폐업 | jeonheejean | 2020.12.17 | 1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