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4 01:11
서울, 꽃들의 지하
육교가 사라졌다
고가도로가 사라졌다 난간이 사라졌다 그 말들이 사라졌다
봄이면 난간을 잡고 뛰어내리던 꽃들도 사라졌다
그녀는 그즈음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녀 푸른 혈관을 흐르는 저음처럼
봄아, 오지 마라
죽을힘을 다해 죽을 사람들은 지하로 내려갔다
그녀는 조금 더 밀려났다
덜커덩 덜커덩
머리 위로 굉음이 쏟아져내렸다
지하철이 바로 사람들의 이마 위를 날아다녔다
아기 인형을 갓 낳은 듯한 예쁜 여자들이 지하 위를 걸어 다녔다
지하 곳곳에 발견된 아기 인형들
그들은 죽어서도 푸른 속눈썹을 깜빡였는데
얼굴이 지워진 여자들이 아기 인형을 안고 걸었다
사람들은 낮이면 지하를 걷고 밤엔 반지하에서 살았다
지하의 세계를 섭렵하려고 그녀가 온종일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밤이면 복숭아뼈 터질듯한 물관과 물집들
모르는 입구와 출구 사이에서
출구와 환승 그리고 노선도라는 암호가 생겨나는 지하상가에서 그녀가 잠옷과 내복을 샀다
2024년 <시와정신>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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